“아버지 제사를 드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몇 년 전, 부친상을 막 치른 민이가 내게 물었다. 민이는 몇 장 없는 유년 시절 사진 중에 단둘이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 유일한 친구다. 나는 그의 아버지를 잘 안다. 역무원이신 그분을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학교 바로 앞이 걔네 집이어서 자주 놀러 갔다. 장례 때는 성남까지 따라가 민이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관을 들어드렸다.

[서울=연합통신넷] 안데레사기자= 어찌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렸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꼴통 목사는 아니다. 반면 원칙은 지키려는 신앙인이다. 잠시 고민 끝에 단호히 대답했다.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죽은 사람 생일 챙기는 건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아버지도 그런 걸 원치 않으실 거라고.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쳤다. “넌 아직 부모님 모두 살아 계셔서 내 마음 몰라.”

 

*부모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아들. JTBC 드라마 <밀회> 중에서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바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쌩한 분위기를 눈치챈 다른 친구 녀석이 화제를 돌렸다.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사과할 수 있었는데, 괜찮다고 다 잊었다고 했다.

내 대답은 민이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태도는 그가 기대한 태도가 아니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헛헛한 마음에 그리움 둘 곳 없어서, 살아생전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 마음 가눌 길 없어서, 고민 고민 끝에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40년 지기 친구 목사 놈한테 위로받을까 싶어 물어본 건데, 대답하는 꼬라지가 그 모양이었다. 나는 종교적으로 나의 정확한 대답을 찾았을 뿐, 인간적으로 그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율법 학자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에게 물었다.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쓰여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시비를 걸었다. 그때 예수는 대답했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하나 떠나고 여자만 남았다. 그리고 예수가 여자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기독교의 하나님은 범죄 여부만 따지는 정죄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죄인의 연약한 심정부터 짚어보는 사랑의 제사장이다.

최근 벌어진 동성애 논쟁을 보니 실수를 하는 기독교인이 나만은 아닌가 보다.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이웃의 아픔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봤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예수가 봤다면, 그게 죄인가 아닌가보다 먼저 그를 사랑하냐 아니냐에 관심을 뒀을 것이다.

내일 아침 민이는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이민을 가는 것이다. 지난주에 만나 작별 인사는 나눴지만 그래도 가기 전날 마지막으로 목소리 한 번 더 들으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휴대폰을 해지시켜 놔서 연결이 안 됐다. 사실 잘 가라는 말보다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속 좁은 종교인이 되지 않겠다고, 교리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조만간 외아들 떠난 아버지 영정 앞에 국화 꽃 한 송이 놔드려야겠다.

남오성(일산은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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