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분이 지혜(智慧)에 대해, 물어 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찌 그분이 지혜가 무엇인지 모르셨겠습니까? 아마 세상이 지혜가 모자라 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울까 하는 생각에서, 널리 지혜를 알리자는 뜻으로 물어 오셨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럼 지혜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지혜는 특별한 능력이나 특성이 아닙니다. 대신, 그것은 모든 사람이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고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지혜를 향상 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원불교의 교법 중, 삼학 수행이 있습니다. 수양(修養), 연구(硏究), 취사(取捨)의 세 가지이지요.

첫째, 정신 수양입니다.

우리가 가진 본래 마음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몸을 안 씻으면 때가 끼듯,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때는, 비우기, 버리기, 녹이기, 지키기, 길들이기 등의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리 연구입니다.

판단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빠르게, 바르게 판단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지혜는, 사리 연구, 공부하기, 깨닫기, 대화하기, 궁글리기, 찾아보기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셋째, 작업 취사입니다.

실천력을 길러 원만한 마음과 행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잘 조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취사에는, 습관, 계율, 중도 실천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삼학을 수행하면 지혜는 물론 원만한 인격을 기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평소 사리 연구에 치중하는 것이지요.

사리 연구는 “천조(天造)의 난측(難測)한 이치와 인간의 다단한 일을 미리 연구하였다가 실생활에 다 달아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여 알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리 연구 공부를 오래 오래 계속하면, 천만 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이 생겨 결국 연구력을 얻을 것입니다.

사리 연구는 오래 계속하는 공부입니다.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제 잘했다고 오늘 일이 자연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주의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의 일을 운전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 천만 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데,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힘은 단순한 경험 지(經驗智)만이 아닙니다. 경험 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 지(根本智)에 근원 하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사리 연구의 공부를 정성스럽게 하면, 온갖 상황에 적합한 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힘이 연구력입니다.

대소 유무의 이치가 진리요 사실입니다. 한 생각 이전의 분별할 것이 없는 자리가 진리의 실상이고 또한 그 한 생각 이전 자리에서 역력히 드러나는 변화의 현상과 작용이 실제 사실입니다.

소태산(少太山) 새 부처님께서 최상 지혜에 밝혀주신 법문이 있습니다. 《대종경(大宗經)》 <불지품(佛地品> 10장의 말씀이지요.

「공부가 최상 구경(究竟)에 이르고 보면 세 가지로 통함이 있나니, 그 하나는 영통(靈通)이라,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천지 만물의 변태(變態)와 인간 삼세의 인과보응을 여실히 알게 되는 것이요,

둘은 도통(道通)이라,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에 능통(能通)하는 것이요, 셋은 법통(法通)이라, 천조의 대소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니, 이 삼통(三通) 가운데 법통만은 대원정각(大圓正覺)을 하지 못하고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도통과 법통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에 능통하는 것이지만, 도통은 대소유무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통은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 한, 시비이해의 건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대각여래위(大覺如來)의 부처님도 이 도통과 법통으로, ‘천만 방편(千萬方便)과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大義)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는 연구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마 이 정도로 지혜를 얻는 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더위 잡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어서 어서 삼학 수행으로 세상사는 지혜를 얻어, 세상을 평화롭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923년, 원기 108년 4월 7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