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월호 vol.62] 특별코너: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1라운드 탈락 실망스런 성적표

​[글 박성은, 사진 Pixabay, Pexels, 이수민 제공]= 약 3개월 전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같은 조에 속했던 국가는 호주, 체코와 일본. 대회 시작 전 일본과 한국의 2라운드 진출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지만 한국은 그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현실은 잔혹했고, 한일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한국 야구가 제자리에 머무는 동안 비슷한 신장, 비슷한 체구의 일본은 미국,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등 야구의 중심에 있는 아메리카 대륙 팀들과 견줘 밀리지 않는 전력을 구축한 모습이었다. 약 10년 전 우리를 설레게 했던 '미라클 코리아'는 더 이상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저변의 차이'를 그 이유로 꼽는다. 일본은 야구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구 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역시 야구의 저변과 직결되는 어린 선수들의 유입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다. 국가 대항전 부진과 여러 논란으로 점철된 프로야구의 위기를 실감하며 올해 역대 네 번째 800만 관중 돌파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 지금의 인기를 당연시하고 안주해선 안 된다. 관람 스포츠로서 여전히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구지만, 선수층이 얇아지면 국제 무대에서도 국내에서도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프로 선수뿐만 아니라 그 전 단계에서 성장통을 겪는 '학생 선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다시 스포츠에 열광하기 시작한 올해, 시스붐바가 여름맞이 <특별코너>에 학생 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변화된 KBO의 신인 선발 규정

많은 이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KBO 리그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몇 해 전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 선수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20 시즌을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신인 선수 지명권 트레이드’ 규정을 신설한 것. 더욱 활발한 전력 보강이 가능하도록 트레이드에 신인 지명권을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kt 위즈 대신 전체 28번 지명권을 행사한 롯데 자이언츠를 시작으로, 각 구단은 쏠쏠한 선수를 영입하는 데 지명권 트레이드를 적극 활용하며 향후 있을 드래프트에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더했다. 올가을 진행될 2024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주목받는 팀은 바로 키움 히어로즈(이하 키움)다. 두 건의 트레이드를 통해 3라운드까지 전체 9, 16, 19, 24, 29 순위 지명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키움 고형욱 단장은 4월 말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 비해 올해 선수층이 훨씬 좋다'며 30위 내 유망주 5명의 선발 카드를 쥐게 된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얼리 드래프트’ 제도도 새롭게 도입됐다. 한국 프로스포츠 종목 가운데 축구와 농구, 배구에서 시행 중인 신인 선수 선발 규정을 야구에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얼리 드래프트 시행으로 대졸 선수뿐만 아니라 4년제 대학의 2학년 학생들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자연스럽게 고교 선수들의 대학 진학 의욕을 고취하고 대학 선수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자립은 힘들다.

하지만 KB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학생 선수들이 활약하는 아마야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2022년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이하 신세계 이마트배)' 신설로 이전보다 고교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었지만, 대학야구는 예외였다. 2022 대학리그 대회 중 최장기간 최다 경기를 치른 ‘KUSF(대학스포츠협의회, 이하 KUSF) 대학야구 U-리그’ 기간 동안 네이버 또는 유튜브를 통해 중계된 경기의 비율은 전체의 10% 내외였다. 230 경기 중 26 경기. 그마저도 왕중왕전 비중이 높았고 예선 중계율은 더 처참했다. KUSF가 온라인 채널(네이버, 유튜브) 중계를 시작한 2013년 이래, 현재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2017년도 중계 영상부터 쭉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각 종목의 중계 추이를 보면 야구는 매년 대학스포츠 종목 가운데 최저 중계율을 기록 중이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대학 리그의 현실. 한 번의 좌절을 겪은 선수들에게 대학 진학은 곧 실패라는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상황이다. 대중의 관심 밖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린 대학야구에 현재 가장 필요한 건 시설 확충도, 장비 지원도 아닌 숨은 진주를 위한 '기회의 장'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신세계 이마트배는 2회 대회만에 고교야구 메이저 대회로 자리 잡으며 그동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던 아마야구를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 수 있는 발판임은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야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유명한 신세계 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첫 시즌 직접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아마야구는 기존의 포맷만으로 대중적 관심을 유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제는 보다 가시적인 변화를 위해 탄탄한 고정 팬층을 보유한 프로 구단의 노력과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 고교 vs 대학 올스타전 개최

프로야구와 아마야구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프로야구의 부흥을 위해서는 아마야구가 발전해야 하고, 아마야구의 발전은 곧 한국야구의 저변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한 프로 구단의 주최로 유의미한 대회가 그 시작을 알렸다. 현충일이었던 6월 6일, 2023 제1회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배 고교 vs 대학 올스타전이 개최됐다. 전면 드래프트 시행으로 연고지 개념이 옅어지면서 프로 구단들의 시야가 전국 단위 유망주로 넓어진 게 기획 배경이다. 한화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이하 KBSA)가 공동 주최하고 KBSA가 주관, 한화가 후원사로 나섰다. 각급 지휘봉은 JTBC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출연 접점이 있는 충암고등학교 야구부 이영복 감독과 동의대학교 야구부 정보명 감독이 잡았다. 한화는 이날 경기를 구단 자체 유튜브 채널 ‘이글스TV’를 통해 생중계했다. 올스타로 선발된 각 팀 25명, 총 50명의 선수들은 자교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본인의 존재와 소속을 각인시켰고 동시에 자연스러운 학교 홍보 효과도 나타났다.

​다른 것보다 프로 구단이 직접 나서서 아마야구의 부흥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고교와 대학의 핵심 자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마추어 올스타전이 장기 이벤트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한화를 비롯한 타 구단들의 관심을 끌 만한 꾸준한 유망주 배출이 관건일 것이다. 제2의 문동주와 김서현(이상 한화), 그리고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쇼케이스 무대. 결국 해답은 선수 육성, 더 나아가 저변 확대에 있다. 

공부와 야구 중 선택의 기로. 미국은 어떨까?

한국의 엘리트 학생 선수에게 야구는 동반자의 개념보다 ‘올인, 아니면 포기’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에 가깝다. 초등학교 저학년쯤부터 야구를 시작할 때, 대개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실력과 유망성을 인정 받은 소수만이 프로 세계에 진출하는 만큼 필연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엘리트 선수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프로 선수가 아니면 실패. 10%의 바늘구멍을 뚫어야만 10년의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다. ​

그렇다면 야구의 종주국이자 세계적인 선수들이 한데 모이는 미국은 어떨까?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생 선수들이 ‘야구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소위 말해 ‘엘리트 학생 선수’와 ‘아마추어 학생 선수’의 개념 구분이 없다. 모두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선수이자 학생인 것이다. 전미대학스포츠협회(이하 NCAA)에 속한 1,100여 개 넘는 학교는 Division Ⅰ, Ⅱ, Ⅲ의 3개 리그로 분류돼 매년 리그별 대회를 치른다. 프로 선수는 대체로 1부 리그에서 많이 배출되지만 2부와 3부 리그에서도 메이저리그에 입단하는 선수들이 나온다. 각 학교는 팀의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리그를 옮기며 팀을 재정비한다. 리그 구분은 실력순이 아닌 해당 학교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정도에 따라 나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학 선수에게 운동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미국은 한국 대학에 비해 입학 단계에서 요구하는 학업 수준부터 높다. 학생 선수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NCAA eligibility center(자격센터)가 제시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고교 과정의 주요 과목 이수, 일정 수준 이상의 GPA(Grade Point Average: 평균 학점), 그리고 대입 표준시험 성적(SAT 합산 점수 또는 ACT 합계 점수)을 만족해야 입학이 가능하다. 3부 리그의 경우 학교마다 적용 기준이 다르고, 1부와 2부 리그 학교들 가운데도 정해진 것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 시스템을 구성하는 10개 대학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UC 버클리의 경우, 학생 선수 입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수준의 학업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대학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의 폭도 넓다. 대개 한국은 스포츠 또는 체육 관련 학과로 제한되는 반면, 미국 대학은 학생 선수들의 전공 선택이 더 자유로운 편이다. 스포츠와 거리가 먼 전자공학, 물리, 패션 등 학생 선수는 본인이 원하는 다양한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NCAA에 속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도 2년제 대학에 입학해 교양 위주의 수업을 들은 뒤 4년제로 편입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2년제를 마치고 프로에 재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1부 리그에 속한 학교에서 메이저리그 입성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선수들도 야구에만 목매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들은 야구 선수 외에도 다양한 진로를 꿈꾼다. 어릴 적부터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그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살아온 선수들에게 둘 모두는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자부심이다.​

전환의 용기, 경력과 학업은 반의어가 아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에 진학할 나이쯤이면 학생 선수들의 야구 경력은 10년 내외가 된다. 말톰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무엇이든 하루 3시간 이상, 10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스포츠 참여를 통해 기른 여러 자질은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되는 강점이자 역량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 선수들은 자신의 경험이 상당히 경쟁력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한다. 아직 프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 선수들에게 대학 생활은 프로 입단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운동에 ‘올인’해야 하는 천금 같은 시간에 가깝다. 그에 비해 학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학생 선수는 많지 않다. 지금껏 운동과 학업을 분리해 생각해 온 이들에게 선수 경력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적 사고일 뿐이다.

​하지만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투자한 인고의 시간과 노력은 분명 그 사람의 근성을 보여준다. 강한 체력과 멘탈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승부욕과 인내심, 인성까지 유추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학생 선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학업이라는 현실의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 아닐까? 고교 입학과 대입 과정에서 한국은 학생 선수에게 선수로서의 자질만을 요구한다. 선수들이 학업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명목상으로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지만 실제로 학업은 등한시되는 차선일 뿐이다.  

'야구하는 학생 선수'가 많아지길 바라며

결국 야구하는 학생 선수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학업의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야구를 하면서도 학업의 공백 없이 어떤 길로도 갈 수 있다는 안정감과 확신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는 프로도, 국내 대학도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하는 학생 선수들이 늘고 있다. 2018년 설립한 ‘크로스 베이스볼’은 해당 연도부터 매년 미국의 대학 관계자들을 초청해 고교 선수들을 선보이는 쇼케이스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역 우승권 팀 중 하나인 뉴멕시코 대학 감독을 비롯한 4명의 대학팀 감독과 여러 국내 야구 관계자들이 쇼케이스 현장을 찾았다. 최근 2년은 한화 구단이 후원사로 나섰다. 올해까지 총 6회 진행된 쇼케이스에 55명의 선수가 참여했고, 작년을 기준으로 10명의 선수가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떠났다. 프로그램 참여 후 미국을 택한 선수들이 28명에 이를 만큼 도전 의식을 갖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회사는 2020년부터 기존의 컨설팅 프로그램 외에 학업과 연계해 학생들에게 적합한 진로를 찾아주는 학업 관련 프로그램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본질을 생각하고 변화해야 한다. 현재 학생 선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운동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학생 선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되 우리 사정에 맞는 현실적인 방법과 효율적인 접근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무료한 월요일마다 프로야구의 대안이 되겠다던 <최강야구>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프로 무대 밖의 선수들을 조명하며 야구 팬들의 월요일을 따뜻함으로 물들이고 있다. 전에 없이 많은 고교와 대학 선수들이 화면에 모습을 비췄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한국 야구의 미래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 대항전에 나서는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도, 성인이 되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취미로 야구를 하는 또 다른 야구인이 될 수도 있다.

​학생 선수들이 지금보다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으면 한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기회의 장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이 선수로서의 배려이고, 인생으로 봤을 때는 운동이 이 사람의 전부가 되게끔 만들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게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본인이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운동과 또 다른 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학생 선수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며, 지금껏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들의 여정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한국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선순환, 그 시작은 바로 학생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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