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말엔 저의 모교 배재학당(培材學堂) 제 74회 동창 정기총회 겸, 그리운 벗들과 한잔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만 다리가 아파 참석하지 못해 얼마나 서글픈지 모릅니다. 아마 젊은 시절 세계가 좁다 하고 뛰어다닌 과보(果報)를 단단히 받는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오래 살고 보니까 이제는 불만도 없고 불평도 없습니다. 그런데 서산 마루의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지 요즘 자꾸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데 말이지요.

그럼 인생 최고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선천성 뇌성 마비를 앓는 중증 장애인인 최창현 씨는 머리 아래쪽을 전혀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입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입으로 조그마한 막대를 조정해 움직일 수 있는 전동 휠체어를 개조해 세계 종단 체험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정말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중동 35개국 28,000km를 횡단하였습니다.

숱하게 말 못 할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며 순방 한 많은 나라에서 그를 격려하는 의미의 격려 품을 선물하고 곳에 따라서는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역사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최창현 기네스 기념관’에 그의 기념품과 전동 휠체어 등, 갖가지 전시 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 LA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에 한 노숙자와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노숙자의 도움으로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 계속 자신의 횡단을 이어 가려 떠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숙자의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자신에게서 별로 줄 것이 없었지요.

한참 생각하다 그 노숙자에게 물 두 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부탁에 노숙자는 물 두 컵을 가져왔고, 가져온 물 두 컵 중 하나는 자신 앞에, 또 한 컵은 노숙자 앞에 두게 하여, 노숙자에게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노숙자가 다 마신 물 컵을 보며 ‘최창현’ 씨는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 컵의 물은 없어졌지만, 내 앞에 놓인 물 컵은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 가 물을 먹여주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너무 나도 소중한 재산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것에 감사하고 희망과 용기로서 살아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그의 말에 눈물을 그렁그렁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잃고 나서야 이미 가졌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이미 <최고의 축복을 가진 자>입니다.

인생 80이 넘으면 만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동부승지(同副承旨) 직(職)에 있다가, 삭 탈 관직(削奪官職)당하고 파주 영봉산 자락으로 낙향한 김정국(1485~1542)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 최고의 병(病)이고 최대의 불행이라 했습니다.

좋은 음식 먹고도 더 욕심(慾心)내고,/ 좋은 옷 입고도 불평하고./ 좋은 술 마시고도 욕(辱)하고,/ 서화(書畫)를 즐기면서도 화(火)내고,/.미녀(美女)를 곁에 두고도 또 탐(貪)내고,/ 곡식 쌓아 두고도 불만이고,/ 좋은 향(香) 맡으면서도 좋은 줄 모르고, 불평 불만(不平不滿), 한탄(恨歎)하니 이를 팔 부족(八不足)이라 했습니다.

반면(反面)에 만족함을 알아야 즐거움도 있고, 행복도 있다 했지요.

①토란국에 보리밥 먹고,/ ②등 따뜻하게 잠자고,/ ③맑은 샘물 마시고,/ ④방 가득한 책을 읽고,/ ⑤봄볕, 가을 달빛 즐기고,/ ⑥새와 솔바람 소리 듣고,/ ⑦눈 속 매화(梅花)와 서리 속 국향(菊香)을 넉넉히 즐기니 이를 여덟 가지 여유(餘裕)로운 즐거움이라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인생 80을 넉넉히 넘어 살았습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무엇이 행복이라 느꼈을까요? 비록 넉넉지 못하고 잘 나지 못했다 해도 만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조금 못 낫다 해도 겸손하고 소박하게 감사하는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 했습니다. 만족함을 알면 인생이 즐겁지요.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라 했습니다.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큰 부자라는 얘기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만족을 아는 마음이 즐거운 인생의, 첫걸음입니다.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의 길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인생 80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런데 아직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 있는 가요? 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아픔 슬픔 다 겪었지만, 인생 80 너머 살면서 보람도 있었고, 기쁨과 명성(名聲)도 있었는데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아직 남은 일이 있다면, 대각(大覺)의 함성 지른 연 후에 일체 중생을 구제(救濟)하는 부처가 못 된 것이 여한(餘恨) 이지만, 이제 그 큰일은 내생에 다시 와서 하기로 하고, 이만 그 뜻을 접기로 했습니다.

재물(財物), 명성(名聲), 권력(權力), 건강(健康) 또 뭐가 있더라? 다 부질없는 것, 아집(我執), 욕망(慾望), 탐욕(貪慾) 다 버린 지 오래 거 늘, 또 무얼 바랍니까? 아아!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리는 질긴 생명 언제나 끝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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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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