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4월초 발표 예정...국내 산업 특수성 고려
ESG공시가 현 자율공시에서 법정공시로 바뀌어
법적 책임져야 하는 기업 생태계도 큰 변화 예상
한국은 ‘산너머 산’...산업계 “2028년 이후는 돼야”

정부가 ESG 공시제도를 4월초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로 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ESG 공시제도를 4월초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로 정했다. (사진=연합뉴스)

[ 서울=뉴스프리존] 정영선 기자= 금융당국이 오는 4월 ‘ESG 공시 기준’ 초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들이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의 이상적인 통합을 요구하는 개념으로 기업 경영에 도입되면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국경세, RE100요구 등 기후 변화에 따른 제도가 세계적으로 채택되면서 기업들에 실질적인 ESG 경영을 강제하고 있다.  

국내에서 ESG 경영은 아직 자율이지만 공시 항목에 포함되면 기업은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기업들로선 규제가 강화되는 셈이어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6년 이후 도입하기로 한 ESG 공시 기준 초안을 4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기후 공시 관련 기준 등을 바탕으로 재계·회계업계·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논의를 거쳐 ESG공시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는 금융위원회가 국내 ESG 공시기준 제정을 돕기 위해 한국회계기준원에 세운 기구다.   

현재 금융 당국이 준비 중인 ESG 공시의 쟁점은 국내 산업 특수성 반영 범위이다. 미국, 유럽과 달리 국내는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탄소 감축이 쉽지 않은 구조적 특수성이 있어 국제적 기준 적용이 쉽지 않다. 당국은 특수성을 고려해 초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을 만들고 있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KSSB는 ESG 공시기준 관련 국내외 논의를 지원하기 위한 한국회계기준원 소속 위원회다. (사진=금융위원회)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을 만들고 있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KSSB는 ESG 공시기준 관련 국내외 논의를 지원하기 위한 한국회계기준원 소속 위원회다. (사진=금융위원회)

국내외 산업계는 앞으로 발표될 ESG 공시 항목에 ‘스코프3’ 배출량이 포함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코프3’ 가 포함될 경우 ESG 보고서상에 표기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증가해 그만큼 기업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코프3’ 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 등 기업의 가치사슬 전체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총량을 말한다. 이 영역까지 공시하도록 규정하면 공시 대상 기업뿐 아니라 기업의 2, 3차 협력사들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 및 감축 의무를 부담하게 돼 막대한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최종 공시 규정에서 '스코프3' 배출량에 대한 의무 공시가 배제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논의의 핵심이었던 '스코프3'가 SEC에서는 제외됐으나, 지난해 ISSB가 2026년부터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정했고,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 등 글로벌 관행에선 스코프3를 포함하고 있어 국내 대기업들은 이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의 기후리스크 공시규제 강화는 해당 국가에서 직접 사업을 영위하거나 상장한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국내 중소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기업 중에선 약 2만개사가 온실가스 배출량 의무 공시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 상장 국내기업 13개사와 대 EU 수출기업 1만9337개사(대기업 593개, 중견·중소기업 1만8744개)가 영향권에 들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들로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준비가 까다로워 큰 부담이다. 이에 기업들은 ESG 공시를 도입하더라도 소송 등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면책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후변화 등에 대한 재무영향 분석이나 검증 가능한 정보의 인증 의무화 등 기준서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운 만큼,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탄소 배출량을 집계하는 것은 통제나 측정 자체가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측정 인력과 장비 등 인프라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ESG 공시 의무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측정하는 인프라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ESG 공시 발표가 임박하자 업계에서는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공시 도입 시기를 더 늦춰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SG 공시 의무화를 2028년, 혹은 2029년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준비를 제대로 못 한 채로 제도가 시행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높은 특수성이 있는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미국 유럽과 한국의 기업 특성에 대한 이해와 중소, 중견, 대기업 차이를 고려한 한국만의 ESG 공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당초 ESG 공시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미국 등 주요국의 공시 의무화 연기와 국내 기업들의 입장 등을 반영해 2026년 이후로 예정보다 1년 이상 늦췄다. 공시 대상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상장사부터 적용하고 국제 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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