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결국 공천받지 못했다. 사실상 3번의 도전은 수포가 됐다. 박영진 의원의 실패는 낙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민주당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 ‘시스템 공천’이 오작동했다. 시스템 공천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 실체는 ‘비명(非明)횡사’, 친명(親明)횡재’였다. 그리고 박용진 의원은 시스템 공천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당내 경선에서 조수진 변호사와 맞붙게 된 박용진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당내 경선에서 조수진 변호사와 맞붙게 된 박용진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선거는 집단지성의 꽃이라고 한다. 집단지성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팀보다 뛰어난 팀원은 없다’라는 게 그것이다. 하물며 전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집단의 이성을 수치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게 선거다. 30여 년 기자 생활에서 십여 차례의 총선거를 경험했다. 유권자는 늘 옳았다. 역대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마다 느낀 점이다. 선거 결과는 유권자가 서로 배우고 경쟁하며 찾아낸 지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지혜가 한 사회에 긍정적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간섭이 없어야 한다.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이 존중되어야 한다. 다양한 판단의 주체도 주체적으로 의사 결정하고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는 ‘나’보다 나은 ‘우리’의 결정, 권력 소수의 생각보다 나다. 그런 전제 아래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그게 바로 ‘집권당’ 혹은 ‘다수당’ 그리고 ‘국민의 대표’다. 

선거가 집단지성의 꽃이라면 공천은 꽃봉오리다. 꽃을 피울 선거 입후보자를 뽑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천은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 중 하나다. 사실 봉오리에서 움이 트는 게 꽃이 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불행하게도 본선인 선거보다 예선인 공천도 그렇다. 권력 내부의 소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집단지성이 발휘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갖추기 어렵다는 얘기다.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의 소신 있는 의사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명 ‘시스템 공천’이라고 명명된 민주당의 공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인재를 충원하는 과정에서 꼼수와 변칙, 반칙이 난무했다. 효율적인 인재 발굴과 평가 시스템을 갖추기는커녕 비정상성이 그대로 노출됐다. 공천이 권력자의 경쟁자 혹은 비협력자를 배제하는 기제로 활용됐다. 특히 박용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은 그 본보기였다.

강북을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겐 ‘머피’와 같은 곳이다. ‘머피의 법칙’은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고 꼬이는 현상을 말한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을까. 쉽게 끝날 수 있었던 문제다. 어쩌면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10%에 포함된 박용진 의원이 탈당이라도 했다면. 하지만 박용진 의원은 굳이 경선에 참여했다. 세상의 눈은 무서웠다. 박용진 의원은 ‘억울한 정치인’이 됐다. 언론은 “‘21대 국회의원선거의 서울 지역 최다 득표자’, ‘백봉신사상 수상자’, ‘유일하게 남은 재벌에 저항하는 의원’이 어떻게 최하위 평점을 받을 수 있느냐”며 시스템 공천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일부 보수언론은 박용진 의원을 ‘바보 노무현’으로 치켜세웠다.

강북을은 1차 경선에서 세 사람이 후보 자리를 놓고 경합했다. 강북을 주민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이 1등이었다. 30% 감점이란 불이익을 감수한 박 의원은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정봉주 후보와 결선 경선을 했다. 민주당은 결선 경선에서 골대를 바꿨다. 권리당원 투표(5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50%)로 경선 룰을 바꾼 것이다. 전략공천위원회의 결정이었다. 강북을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데 대통령 후보 선출하는 규칙을 적용한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정봉주 후보는 과거의 ‘막말’에 발목이 잡혔다. 거짓 해명도 드러났다. 결국 후보 사퇴했다. 조수진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을 남기고.

박용진 의원은 재차 경선에 참여했다. 경선 상대는 민변 변호사 출신인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였다. 그는 정치 초년생이다. 여성이다. 가산점을 25% 받았다. 박용진 의원이 받은 30% 감점은 유지된 상태였다. 사실상 하나 마나 한 게임이었다. 이 일련의 관정은 민주당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만든 ‘변칙’이었다. ‘합의된 변칙’은 곧 반칙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 의원인 안규백 전략공천위원장은 그렇다고 치자. 저명한 학자로 이름을 날린 민관식 공천관리위원장, 송기호 공직자선출직평가위원장까지 반칙에 가세했다. 이 같은 반칙은 역대 공천에서 보지 못한 막장 공천 시스템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민주당은 ‘55%’의 격차도 믿지 못한 것일까. 또다시 경기규칙에 손을 댔다. 기울어진 운동장 구석으로 다시 골대를 옮겼다. 전국 권리당원 70%, 강북을 권리당원 30%이었다. 박용진 의원은 조수진 후보와 경합하는 게 아니다. 이재명 대표와 경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리당원은 ‘이재명의 펜덤’, 즉 ‘개딸’임을 누구나 안다. 경선 투표자를 사실상 ‘개딸’로 몽땅 바꿔치기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조수진 후보가 받은 득표는 이재명 대표가 지난 2023년 전당대회에서 대표 후보로 받은 득표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권리당원이 민주당을 대표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재명 대표는 박범계 선거관리위원장 역할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표가 경선 경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자”라고 말했다. 박영진 의원을 몰아내야 한다는 이재명 대표 자신의 의중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현역 박용진 의원을 꺾고 4·10 총선 서울 강북을 후보로 출마하게 된 조수진 변호사는 지난 20일 "유시민 작가가 '조변(조 변호사)은 길에서 배지 줍는다'고 반농(반농담)했다"고 말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현역 박용진 의원을 꺾고 4·10 총선 서울 강북을 후보로 출마하게 된 조수진 변호사는 지난 20일 "유시민 작가가 '조변(조 변호사)은 길에서 배지 줍는다'고 반농(반농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조수진 후보가 아동성범죄 변호 홍보 및 2차 가해 논란으로 또다시 사퇴했다. 차점자인 박용진 의원에게 공천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민주당 출입 기자가 그런 여론을 전하면서 친명 후보의 공천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재명 대표는 “한심한 질문”이라고 기자에게 면박을 주면서 “친명 후보를 공천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전략 공천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천은 친명 인사 한인수 대변인에게 돌아갔다. 박용진 의원은 세 번째 기회도 놓친 셈이다.

이런 일련의 후보자 선정 과정을 집단지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없다. 집단지성을 얻는다고 경선했지만, 그 경선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참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선 규칙을 바꿔가면서 방어벽을 더 높이 쌓아 이질적인 사람의 참여를 막았다. 동질적인 사람, 즉 ‘이재명 펜덤’의 목표는 이재명 대표와 같았다. 박영진 의원의 낙천이었다.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이라는 게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을 관철하여 사당으로 만드는 기제처럼 보인다. 잘못된 공천은 선거를 왜곡한다. 후보의 대표성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선거 이후도 부작용은 계속된다. 공천 정신과 후보자의 면면은 누구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알려준다. 결국 사법 리스트에 시달리는 이 대표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필자는 민주당의 공천을 보면서, 선거 결과는 언제나 옳다는 생각을 바꿨다.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집단지성은 무너지는 현장을 봤기 때문이다. 정당의 건강성의 토대가 되는 다양성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두뇌 하나가 절대 두뇌 10개를 당할 수 없다”라면서 “조직(정당)이 잘 살려면 군림(君臨)이 아니라 군림(群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23년 ‘군림(郡臨)하는 당’의 모델을 제시했다.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이 그것이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은 다양한 계파의 공존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만이 아니다. 비주류에 보내는 일종의 안전 신호다.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시스템 공천이 엉망이 된 원인은 이재명 대표 스스로 신의를 깨기 때문이다. 부족한 신의는 불신을 낳는다. 불신받는 지도력에는 늘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결국 부메랑이 된 의심은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남길 것이다.

한마디만 덧붙이자. 집단지성은 사당화된 정당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집단지성이 살아 있는 민주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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