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에도 성차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박귀천(46·사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연 법이 문제일까"라고 물음표를 달았다. 박 교수는 "법과 제도는 이미 여러 방향으로 정비됐는데 현실이 제도적 성숙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의 문제인 고용과 노동부터 성차별이 존재한다. 이걸 막겠다는 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생긴 지 30년이 됐다"며 "그런데도 성별 임금격차 OECD 15년째 1위, 여성 고용률 35개국 중 29위, 여성임원 비율 꼴찌에서 2위…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은 법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판단하는 검찰과 법원 등이 성차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라고 말했다.

법 제도와 현실의 격차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실태를 박 교수에게 들어봤다.

Q 고용 분야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실상이 어떤가.
A "가장 단적인 예로 최근 금융권과 공기업 등이 채용과정에서 노골적인 성차별을 자행했다는 문제가 드러나 사회가 시끌했다. 하나은행은 공채에서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정하고 전형 과정 마다 여성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한다. 국민은행은 서류전형에서 남성 지원자 100여명의 점수를 특별한 이유없이 올려줘서 여성 지원자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여성 합격자를 줄이려고 면접 점수와 순위를 변경해 당초 합격권에 들었던 여성 7명을 불합격 처리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런 일은 비단 적발된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Q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A "우리나라도 ‘남녀고용평등법’이 처음 시행됐던 1988년과 비교하면 많이 개선되긴 했다. 여성 취업자는 1988년 약 670만명에서 2017년 1130만명으로 70% 가까이 증가돼 양적으로는 확실히 크게 늘었다. 그러나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9위로 최하위다. 2016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이 59.4%인데, 우리나라는 56.2%였다."

Q 고용률 외에도 일자리 분야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여러가지 지적되고 있다.
A "그렇다. 여성들은 주로 비정규직이다. 2016년 남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약 25%지만 여성의 경우 41%에 달한다. 특히 기혼 여성은 임신·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됐다가 시간제 근로 위주로 복귀한다. 40대 이후 여성 근로자는 65%가 비정규직이다.
임금격차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간 임금 차이가 37%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3만원 받는다는 것이다. 15년째 OECD 국가 중 1위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여성 고등교육 이수율을 보이는데, 최하위 수준의 남녀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졸 여성의 취업률이 OECD 최저 수준이라는 점도 한 몫 한다. 저학력 여성들이 주로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여성은 저임금 노동시장에 집중됐고 성별 임금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Q 교육수준은 높은데 임금은 낮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A "오랫동안 우리나라 남성은 가족부양책임자로 간주됐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여성은 고용보다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적합한 피부양자로 간주돼 왔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고용 기회에서부터 차별을 당하고, 고용되더라도 일시적·보조적인 근로자로 봐서 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왔다. 이런 이유로 핵심적이고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기는 것이다.
여성 고용률(2016년 기준)을 봐라. 20대 후반이 69.5%로 가장 높고, 30대 후반으로 가면 56.5%로 뚝 떨어졌다가 40대 후반부터 다시 높아진다. M자형의 모양을 보인다. 이는 30대 후반을 기점으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경력단절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OECD 회원국 중 30대 여성 고용률이 갑자기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한국과 일본 뿐이라고 한다."

▲ 조선DB

Q 요즘은 남성들 사이에서 "역차별 아니냐"는 반발도 나온다.
A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남녀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은 임신과 출산, 수유 등 모성기능이다.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기업, 지역사회, 국가에 인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모성기능은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Q 택배기사는 대부분 남성이다. 남녀 능력의 차이 때문에 고용의 성비 균형이 맞지 않는 분야가 있다.
A "물론 여성들에게 벽이 굉장히 높은 분야가 있다. 그러나 선입견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차별을 시정한다’는 게 ‘여성은 된다’ ‘여성은 안된다’ 이런 식으로 일반화시키자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능력이 있으면 고정관념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모든 직종에서 성비를 정확하게 맞추자는 게 아니다"

Q 은행 채용비리 사건처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는 드문 것 같다. 이 법은 정말 문제가 없나.
A "헌법과 여러 법률에서 여성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해왔고, 법제(法制)도 양성평등적인 방향으로 정비됐다. 사실 고용상 발생되는 다양한 성차별 행태에 대해 일일이 규제하는 내용을 법에 모두 담기는 어렵다.
또 법이 있더라도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하는 방법은 내부고발이나 정부 감사 없이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기준을 내세우면서 막상 여성이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간접차별로 여성을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집공고에는 남녀 구분 없이 채용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관리직에는 남성만, 보조직에는 여성만 채용해 이른바 남녀분리직군을 운영하는 경우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간접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 판결 등 실무에서는 아직까지 간접차별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30년 동안 남녀고용평등법이 문제가 돼 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이 30건이 채 안 된다. 법원에 올라와도 차별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언급조차 안 된 판결문도 있다. 그만큼 법 적용과 해석에 굉장히 소극적이고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하다고 보인다."

Q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A "사실 새로운 뭔가를 하기보다는 법 관련 기관들이 그동안 성차별 문제에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는지 자성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그동안 판사들이 성범죄 재판을 할 때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라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사실 일반 공무원들도 양성평등 관련 교육을 받으라 하면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는데, 법조인들도 꺼려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 강의나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다. 법조인이라고 예외를 두기보다 이들에게 경각심이 줄 필요가 있다."

Q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은 없을까.
A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성차별이 발생한 경우 남녀 지원자 수와 남녀 합격자 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한쪽이 현저하게 낮을 경우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는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여성이 하위직·비정규직에 머물러 있는 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통합적으로 추진할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여성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고용노동정책의 주무기관인 고용노동부 내에도 여성고용정책국을 신설해 고용상 성차별 시정 관련 행정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는 여성고용문제를 청년여성고용정책관에 소속된 여성고용정책과라는 단 한 개 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성차별 시정 업무를 다루기에는 조직과 인력상 한계가 있다."

Q 차별 개선을 위한 변화가 또다른 부작용을 낳지는 않을까.
A "차별을 시정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온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부작용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법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우려될 수 있다."

Q 고용 평등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A "얼마전 크리스틴 리가르드 IMF 총재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끌어올리면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을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을 10%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은 결국 남녀 모두, 인류 모두의 공존을 위한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이점도 있지만 고용상 성차별 문제는 기본적인 인권 문제와 닿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과 노동은 생존의 문제인데, 생존 문제에 있어 성별이라는 태생적 원인에 의해 차별당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오랫동안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구분돼 여성은 남성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열등하다며 존중받지 못했다. 이는 노동시장에 반영돼 차별을 낳았고, 여성은 주로 성적 대상으로 전락돼 성폭력 문제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성차별이 만연한 사업장에서 성폭력 또한 빈번하게 발생된다고 한다. 고용의 성차별을 시정한다는 것은,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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