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7회

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바깥 공기는 차갑고 밤안개가 깔렸는지 촉촉해 보였다. 밤하늘에 반달이 뜨고 다가오는 정월을 예비하고 있었다. 나는 늘 하던 새벽 독서 습관대로 나의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 때 맞은 편의 거실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에 있는 재서에게 천만 원을 보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새벽이라 그런 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도 똑똑히 들려왔다. 아마도 미국에 있는 아들이 달러가 올라서 생활비가 이만저만 쪼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신경을 끄고 여전히 스탠드 불만 가볍게 켜 놓고 테이블 의자에 다시 가 앉았다. 어제 저녁 앨범에서 꺼낸, 어린 시절의 은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은지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악몽처럼 은지의 모습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이제 벌써 미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아침안개는 많이 걷히고 온 세상이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취고 있었다. 미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은지 말이야, 이혼 했어!”

“왜?”

“남편이 의처증 증세가 심한가봐. 그래서 직장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하며 어디 갔는가 확인하는가 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은지의 부정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 아!”

“병원에 안 가봤어?”

“한약방에서는 은지가 몸이 약하고 손발이 차서 아이가 들어서기 어렵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남자에게 원인이 있는 것 같아. 그 집안은 자손이 귀한 집안이라 은지가 마음 고생 많이 했어”

“아기도 못 낳을 병신아…………!”

나는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린 시절에 무심코 퍼부었던 그 말! 실로 놀랍고 두려웠다.

“민 선생 계셔요!”

비몽사몽간에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목소리다. 주인 노파였다. 나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노파는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쭈글쭈글한 앙상한 손이 징그러워 보였다. 노파는 사정이 있어 자신의 집을 팔게 되었으니 이사를 가달라고 하였다. 이사비용은 피아노 값은 제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주인의 사정으로 계약 기한 지나기 전에 세입자가 이사 가게 되는 경우, 이사비용 일체를 주인이 보상해 주어야 하는데, 억지를 부렸다. 나는 그 노파가 < 죄와 벌>에서 나온 고리대금업자 노파처럼 여겨졌다. 주인공 라스콜리니프가 노파를 죽이고픈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노파는 평소에도 전기세나 물새에 터무니없이 나에게 많은 액수를 부담시켰다. 다투기 싫어서 그냥 달라는 대로 지불하였지만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라서 세상살이에 좀 무지해 보여서 만만해 보였는지 모른다. 나는 분이 나서 곗돈을 해약할 테니 돌려 달라고 외쳤다

“언제 곗돈 받은 적 없는데…… 증서를 가져와 봐요!”

기가 막혔다. 곗돈을 받았다는 영수증 교환이 없는 것이 큰 사단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노파는 도리어 아연해하며 백지장이 된 내 얼굴을 쏘아보며 선수를 쳤다.

“내가 나이 많은 늙은이라고 무시하는데, 사기 쳐 먹는다고 학교에 쳐들어가서 교장에게 소리쳐볼까! 어디 운동장에서 한 번 소리 질러 볼까!”

협박과 악다구니로 입에 하얀 거품을 내면서 으르릉 거렸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나서인지 옆집 아줌마 둘이 대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세상에 곗돈을 안 받았다고 잡아떼고 돈을 안 주니 어떻게 하죠? 아주머니!”

“뭐요? 그럼 저 번에 초등학교 노처녀 선생에게 하던 수법을 그대로 쓰고 있잖아!”

그 아줌마 말에 의하면 그 때도 젊은 여교사에게 초등학교에 쫒아가서 학교 운동장에 교장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난리법석을 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착한 여선생은 자기 때문에 일이 더 시끄러워질까봐 제대로 따지지 않고 곗 돈을 뜯겼다니까요!”

그 아줌마들에게도 내놓은 노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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