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과 인재등용의 공정성으로 사덕(私德)과 공덕(公德)을 펼쳤다.기나긴 중국 역사에서 지금까지 쇠털처럼 많은, 관리들이 명멸했지만 약간의 흔적이라도 역사에 남긴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명재상의 반열에 오른 이는 봉황의 깃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희귀하다.그러나 중국의 역대 명재상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강직함이다. 강직한 성격이야말로 명재상이 되어 후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송나라 초기의 여몽정이 그런 명재상이었다.여몽정(呂蒙正-944~1041)은
군주가 소인배(小人輩)면 간신이 발호하고 충신은 결국 죽게 된다.누르하치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황태극(皇太極)이 황위를 이어 청 왕조를 세웠다. 황태극은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재능과 모략을 겸비한 황제였다. 그는 잠시 영원성 대신 조선(朝鮮)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명과 청 왕조 모두 휴전하고 각자 전열을 가담을 시간이 필요했다. 명군은 성을 축조하고 병사들을 훈련 시켜야 했고, 청군은 조선을 공격하여 재물을 약탈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치를 공고히 해야 했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원숭환은 황태극에게 화친을 제의했고
어려우면 물러난다.‘오자병법’ ‘요적’ 제2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다음으로, 점쳐볼 것도 없이 적과의 교전을 피해야 하는 경우가 여섯 가지 있다. ‧‧‧‧‧‧이 모든 조건이 적군에 뒤떨어질 때는 생각할 것도 없이 싸움을 피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승리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때 진격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 물러나야 한다.‘좌전’(기원전 597년 선공 12년조)에는 “나아갈 만하면 나아가고, 어려우면 물러서는 것이 군대를 제대로 다스리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난이퇴’는 일반적으로 말하듯이, 곤경에 처하면 곧 후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