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왕조의 꿈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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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왕조의 꿈 태실
  • 김덕권
  • 승인 2017.07.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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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꿈 태실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왕조의 꿈이 서린 태실(胎室)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어느 왕의 태실을 보고 온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 태실은 무궁한 왕조의 꿈이 서린 최고의 명당이 아닌 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에 부산의 청니(靑泥) 김병래 선생이 계십니다. 지금은 은퇴 하셨지만 유명한 아나운서 출신이시지요.


이분이 며칠 전 성주의 ‘세종대왕의 왕자태실’을 다녀오시고 마음이 꽤 상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훼손된 현장을 보셨기 때문이지요. 청니 선생이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덕산님!

또 어려운 청을 드립니다. 지난 토요일 부산에서 문학기행으로 경북 성주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세종대왕 자태실’을 난생 처음 봤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자랑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의 왕자 중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사람들이 세조의 왕자들 태실을 파괴해 권력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이에 따른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덕산님께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靑泥 합장-」


태실이란 무엇일까요? 태실은 ‘태봉(泰封)’이라고도 부릅니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를 출산하면 그 태(胎)를 묻어두었던 장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태는 곧 생명의근원인 까닭에 그 처리를 함부로 하지 않고 손액(損厄)이 없는 방위(方位)와 장소를 가려 묻거나 태웠던 것이지요.


조선왕조는 전국의 태실 지를 1등지에서 3등지까지 분류하고, 왕손이 태어나면 원손(元孫)은 1등지, 대군(大君)은 2등지, 옹주(翁主)는 3등지로 구분하여 태를 묻었습니다. 그 중에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자리 잡은 세종대왕의 왕자태실이 가장 유명합니다.


현재 19기의 태실이 세종 20년에서 세종 24년 사이에 만들어 졌으며, 이 태실은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왕손, 특히 단종(端宗)의 태를 안장한 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태실이 집중돼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국가사적 제 444호인 ‘세종대왕 자태실’이라고 부릅니다.


이 곳 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맏아들 문종을 제외한 17왕자와 세손인 단종의 태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곳 태실은 세종 20년에서 24년 사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태를 옮겨 이곳에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18기 중 13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5왕자의 태실은 겨우 기단(基壇)만 남아있고 모두 파괴되어 있습니다.


수양대군의 태실은 수양대군이 왕위에 즉위한 후 태실 비(碑) 앞에 가봉 비를 세웠습니다. 가 봉비는 태실에 봉안된 태의 주인이 임금이 되면 가봉의식을 마치고 세우는 비입니다. 여기 있는 태실 중 수양대군의 태실은 가봉의식을 마쳤기 때문에 태봉(胎封)으로 부릅니다.


이 태실의 석물(石物)은 맨 밑 부분이 기단석, 중간부분이 신석, 윗부분이 옥계 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맨 아랫부분의 기단석은 각지고, 윗부분의 옥계석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다’라는 당시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왕실의 태실조성목적은 태를 길지(吉地)에 묻어주면 태의 주인이 그 기를 받아 무병장수하여 왕실이 번창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왕족의 태반(胎盤)을 묻은 석실을 태봉(胎封)이라고도 부릅니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의 귀천이나 계급의 고하에 따라 다릅니다. 특히 왕실인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하여 더욱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태실은 일반적으로 태옹(胎甕)이라는 항아리에 안치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하지만 왕세자나 왕세손 등 다음 보위를 이어받을 사람의 태는 태봉(胎封)으로 가봉될 것을 감안, 석실을 만들어 보관하였다고 하네요.


어쨌든 역사적 사료가치가 있는 세조의 태실과 그 아들들의 태실이 훼손 된 것은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그 행태가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조반정인 ‘계유정란(癸酉靖亂)’도 하나의 중요한 역사입니다. 반정(反正)을 하였다고 그 역사를 부정한다면 그 또한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꼭 요즈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 하는 사람들이 촛불혁명을 부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요? 바른정당에서 지난 7월 19일 민생 투어행보인 ‘바른정당주인찾기 1박2일’을 대구와 구미 등 경북지역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른정당과 유승민 의원을 외치는 시민들과 태극기를 든 채 행사장을 찾은 박사모 회원들 간 마찰을 빚었습니다. 박사모 회원들은 바른정당과 유승민 의원을 향해 ‘배신자’라고 외쳤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바른정당 지지자들에게 물을 뿌리고 욕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수끼리도 각을 세우고 싸우면 어쩌자는 것인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우리 당이 영남권에서 배신자라는 거짓프레임이 씻겨 진 것 같지 않다”며 “대구와 경북을 최우선으로 두고 발로 뛰며 민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7월 20일에는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가 50여명의 시민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고 또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태들이 세조와 세조 자녀들의 태실을 훼손한 폭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열하고 미워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합심하고 사랑하며 서로 도우며 발전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조 500년을 거의 점철한 피비린내 골육상쟁의 끝은 나라를 왜국에 찬탈당하는 수모를 불러왔습니다.


거기다가 남과 북, 보수와 진보, 보수와 보수로 갈려 싸우는 것은 이제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근 반 세기 동안 땀과 눈물, 피를 흘려가며 이 만큼 쌓아온 대한민국입니다. 그 지긋지긋한 대결정치와 패권싸움으로 이제 또다시 사분오열 되어 다시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들면 안 됩니다.


극하면 변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국가도 그 왕성할 때를 조심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꿈 태실은 왕실과 나라의 발전을 염원한 것입니다. 우리 이제 분열을 버리고 화합의 길로 나가면 어떨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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