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다 (하)

학생 때,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쿠데타들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많습니다. 레이건 정권은 그들이 지원하는 쿠데타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이른바 ‘이란 콘트라 게이트’를 일으키기도 했었지요. 이상하게도 그런 쿠데타들의 배후엔 꼭 미국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그리고 엘살바도르에서 어떤 식으로 군사정권을 지원하고 그들이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들을 짓밟게 만들었는지, 이제 우리는 상당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하워드 진이나 브루스 커밍스 등의 학자들이 연구한 학술자료들엔 미국이 어떤 식으로 친미 정권을 만들고 이를 위해 민주주의를 뒤집는지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구 노작을 들여다보면 한반도 역시 미국의 이러한 친미정권 창출 대상으로서, 늘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군산복합체 기반의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늘 냉전을 필요로 했던 미국은 그 가장 프론트라인에 서 있던 한반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직접적인 충돌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으로 갈려 치러야 했던 우리의 상황을 컨트롤하기 위해, 미국은 늘 한국을 그들의 영향 아래 두려고 했고,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군사력의 직접적 통제였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늘 우리 군을 친미 세력으로 둬야만 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친일 세력은 곧장 친미 세력으로 전환됩니다.

백선엽에 대한 평가는 이런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다시 벗님의 글을 퍼 왔습니다. 일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사진: 최근 별세한 백선엽 장군에 대해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쐈다. 현충원에 묻히면 안 된다'는 요지로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노영희 변호사가 15일 사과 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다.    YTN 라디오(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진행자인 노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부로 '출발 새아침'은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고 백선엽 장군의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진보단체 집회(왼쪽)와 길을 막고 있는 한 보수 단체의 차량 사이로 경찰이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사진: 최근 별세한 백선엽 장군에 대해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쐈다. 현충원에 묻히면 안 된다'는 요지로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노영희 변호사가 15일 사과 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다. YTN 라디오(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진행자인 노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부로 '출발 새아침'은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고 백선엽 장군의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진보단체 집회(왼쪽)와 길을 막고 있는 한 보수 단체의 차량 사이로 경찰이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백선엽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다. (하)
- 미국이 그를 유독 사랑하고 아꼈던 진짜 이유-

한국전쟁 기간 내내 인민군과 중국군을 비롯한 상대는 물론 동맹군인 미군에게서조차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던, 아니 전쟁 당사국 중 가장 만만한 호구 취급을 받았던 한국군, 특히나 한국군 지휘관들(거의 쇼와 황군 출신들이나 만주군관 학교 떨거지들)이었지만, 유독 미군의 백선엽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호의적이고 예외적일 만큼 대단히 높습니다. 아주 대놓고 키워주고 세워준 대목이 한둘이 아니지요. 특히 이러한 현상은 그가 공직에서물러나 노년기에 접어든 지난 40년간 아주 두드러졌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점이 매우 중요한 대목이고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그리고 이 밑바닥엔 무엇이 깔려 있는지 이젠 짚어야 합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백선엽에 대한, 후한 평가를 근거로 들어 그를 점점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격상하고 심지어 최초의 한국군 원수로 추대하자는 국내 움직임마저 있었죠. 지금도 1야당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고인의 빈소에 조문을 가야 한답니다. 야당 원내총무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자리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한국전의 영웅(?)을 높이(대체 여기서 얼마나 더?) 모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선엽의 빛나는 출세와 그를 전설(?)로 만드는 데 앞장선 미국의 진짜 의도는 바로 백선엽과 같은 부류가 자신들이 원하는 한국군 지휘관이라는 냉엄한 자국 이익의 논리가 깔려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기실 한국전쟁 기간 내내 미군은 풍부한 실전경험과 대규모 야전부대를 지휘한 경력이 있는 독립군 출신의 국군지휘관들을 의식적으로 경원시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내몰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서울을 점령당하고 완전히 궤멸된 육군의 잔존병력을 긁어 모아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구성하고 무려 1주일이나 한강의 방어선을 사수해내 사실상 한국전쟁의 큰 흐름을 바꿨던 김홍일 장군이 그렇습니다.

중국 정규군의 장군이기도 했던 김홍일 장군은 크나큰 공을 세웠음에도 이후 다시는 일선에서 지휘를 해보지 못한 반면, 아직 30대 중반도 안된 새파란, 고작해야 중대나 대대를 통솔했어야 할 백선엽과 정일권 같은 이들이 군의 총사령관이나 참모총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중용되었던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이나 미군의 본심이나 의도는 무엇일까요.

까놓고 말해서 그들은 한국군이 독자적이고 자주적으로 움직이는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이 시종일관 임시정부를 멀리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맥락이었지요.

이러니, 군 인사에서 자기들 말을 더 잘 듣고, 신분상의 핸디캡으로 더 고분고분한 일본 육사 출신이나 만군 학교 출신들을 더 편하게 여겼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겠지요.

미국의 입장에서 미군의 이러한 행동이 자국국익의 극대화에 최적화된 행동임을 고려하면, 반대로 우리의 국익과 우리 민족의 이해에는 이것이 과연 어떤 선순환이나 좋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일련의 상황이나 흐름들이 도저히 우리에게 득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쯤에서 2차대전 후 미국이 변방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과거처럼 직접 식민지배 통치가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미국은

1.군사력 주둔
2.경제적 수단
3.해당 국가 국민을 광적인 무지몽매한 다수(Folie en masse) 만들기 같은 간접수단을 씁니다.

1번이나 2번은 너무도 잘 아시겠지만 바로 3번 같은 경우가 지금의 ‘백선엽 치켜세우기’에 해당합니다.

2010년에 공개된 미군 기밀문서를 보면, 백선엽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는 저들의 립 서비스와는 달리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백씨가 다수의 부정에 연루된 구시대 인사라라는 사실을 저들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를 영웅으로 상찬하고 치켜세워서 한국전쟁의 실상을 흐리고 미국의 국익을 한반도 특히나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투사하기에는 최적의 인물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미국은 의식적으로 백선엽을 후대하고 꾸준하게 상찬해왔습니다. 그리고 백선엽을 필두로 그와 비슷한 유형의 지휘관들을 양성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지요.

그 결과 지금 한국군 지휘부에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행사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전시 군 작전지휘권을 직접 행사하는 일에 심각한 두려움과 우려를 표명하는, 정말로 이상한 부류들이 차고도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에는 패트런인 미국이 주겠다고 하는 전작권마저 사양하고 손사래를 치는데 가장 앞장선 집단이 바로 우리 군부였습니다.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아직 우리 군부의 주류 지휘관들은 전작권을 환수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이 원인의 맨 꼭대기에 바로 백선엽이 존재합니다.

지금도 우리 군 특히 육군내에는 백선엽처럼 처신해야 별 달수 있다는 암묵적인 묵계가 존재해왔고 아직도 상존하는게 현실입니다. 국가안보의 근간을 자주국방이 아니라 한미동맹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직업군인들이 과연 이 나라 군에 얼마나 되는 걸까요.

자주국방이나 전시작전권의 온전한 행사보다는 한미동맹이 자국 안보의 핵심이라고 인식하는 군인이야말로 미국과 미군이 원하는 우리 군 지휘관 모습이었던 지난 70년 세월. 미국이 백선엽을 성원하고 영웅으로 상찬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백씨가 바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부도옹 풍도처럼 그는 늘 그렇게 살면서 자신의 빛나는 해바라기 인생을 완성하고 떠난 것이죠.

따라서 백선엽은 이후 우리 군이 제대로 된 군대가 되고 온전히 자주적인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장성의 자리는 물론 그 어떤 장교 보직에서도 반드시 제외해야 할 군인의 유형입니다.

이런 부류의 군인이 군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나라의 국방과 안보는 크게 흔들립니다. 이제 백씨는 사망했고, 그가 남긴 유산들은 냉정한 춘추필법의 평가와 시간이라는 매우 버티기 힘든 지난한 숙성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건 그가 이후의 역사서술에서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높은 상찬이나 평가를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역사에서 그 어떤 선순환이나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던 출세지향의 기회주의 인생에게 주어진 너무도 과분한 흔적들은 조만간 세월의 파도가 싹 씻어버리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간도특설대만 남겠죠.

다시는 이 민족의 역사에서 이런 군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교훈 하나만 우뚝합니다.

추신1: 백선엽이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누가 그래?

83년 국방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영웅(김홍일, 김종오, 맥아더, 워커)에 백선엽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백선엽의 공로로 첫손에 꼽는 다부동 전투는 고작 전술적 승리이며 8분의 1에 불과하다. 당시 낙동강 전선의 크기와 중요성은 다부동 한곳만이 아니었고 전체 8개 사단 모두가 사활을 걸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낙동강 전투의 진정한 영웅은 워커 장군이다.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승리를 구분하지 못하면 즉시 바보가 된다.

추신2: 진실이 빛에 바래면 거짓 신화가 만들어진다.

80년대와 90년대에 들어와 한국전 관련 대부분의 관련 당사자들이 자연사해가자, 백선엽의 영웅신화가 나왔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백씨가 90년대 들어 사실상 유일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생존자가 되면서부터 다부동 전투가 급부상했고 그는 이후 자기 자신을 신화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각종 한국전쟁사 모임들을 활용했다. 그의 독단에 반론할 증언자들이 모두 사라지자 나타난 현상이다.

이래서 한국전쟁에 대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시급하며 특히나 실패와 패전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이 중요하다. 한국전쟁은 명백히 실패한 전쟁이며 이런 수치스러운 기록에 대해서 전쟁영웅을 운운하는 것도 사실 우스운 일이다. 브래들리 원수같은 2차대전의 영웅이 왜 한국전쟁은 모든 게 잘못되었다고 혹평했겠는가.

추신3: 간도특설대에 대한 일본군 장교출신들의 흥미로운 언급

최근 들어 이한림 장군등 일본군 출신 장교들의 회고록 내용 중 이런 서술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간도 특설대에 대한 부분. 비록 본의 아니게 친일부역하기는 했으나 간도특설대와 같은 악랄한 조직에 일부러 몸을 담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변명들이 나온다.

친일부역자들조차 기피하는 곳이 바로 간도특설대였다는 데 여기 자진해 몸담은 백선엽은 뭐라고 봐야 할까. 굳이 더 이상의 서술이나 논쟁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 그자는 반성이 전무한 인생을 살았고 그만큼의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범옹 신숙주가 조선 후기에 들어 최악의 간신배에 올랐던 만큼이나 백씨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급전직하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