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금과옥조가 되어야 할 ‘정론직필’이 ‘견강부회’가 되고, ‘아전인수’가 되고, 결국은 ‘곡학아세’가 된 지 오래다. ‘정론직필’에는 진실이 있고 논리가 있으되 ‘곡학아세’에는 무지와 억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뻔뻔함만이 있을 뿐이다.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대검 부장회의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이 바로 그렇다.

1. “사기 전과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정부·여당이 힘을 실어 ‘한명숙 구하기’에 나섰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

당초 이들 사기 전과자들을 증언대에 세우거나 세우려 한 것은 엄희준 등 당시 검찰 수사팀이었다.

사기 전과자들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면 왜 검찰은 애초 이들을 증언대에 세우려 했을까?
같은 사기 전과자들이더라도 검찰(그리고 언론)의 편에만 서면 갑자기 진실과 용기의 상징이 되는가. 

2. “당시 재소자 진술은 재판에서 유무죄 판단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 당시 1심 재판관은 검찰이 제시한 모든 증거와 증언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했고 그중 재소자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하면서 전체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한만호가 (정치자금을) 줬으니 (검찰에서) 줬다고 하지 않았겠느냐”는 단순논리로 유죄로 뒤집은 2심 판결 때에는 더 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해위증교사’는 그 위증이 당시 유무죄 판단 증거로 채택됐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중범죄(검사의 위증교사, 증언자의 위증)가 되는 것이다.

3. “이 때문에 ‘위증 교사 의혹’이 ‘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사건 판결’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한 사건에서 위증을 교사한 검사는 별 건의 범죄 혐의자가 된다. 여기에서 그 검사가 수사 혹은 재판 과정에서 위증교사를 한 범죄행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없는 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저지른 중대한 범죄행위이므로 그것을 모른 채 진행되고 결론을 내린 재판은 그 자체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대두되는 건 상식 아닌가.

4. “이미 대검이 무혐의 내린 사안을 재판단하라고 수사지휘한 것이 무리였다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대검이 법무부 위에 있는 조직이고, 대검 부장들과 고검장들이 모이면 법무부장관 보다 더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건가. 양심적인 검사가 수개월 심혈을 기울여 6천여 쪽의 조사기록을 제출하며 기소의견을 냈는데 이를 딱 2~3일 만에 싹 다 무시하고 ‘무혐의’ 처리하려한 검사의 판단 만을 무조건 대검의 결정이라고 받아들여야 옳은 일인가. 도대체 그런 비판이 나오는 법조계 안팎은 어디 쯤에 있는가. 

5.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현 정권의 숙원인 한 전 총리 명예 회복을 위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까지 흠집 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은 신성불가침인가. 그렇다면 독재권력 시대에 대법원이 내린 숱한 간첩사건, 시국사건에 대해 재심이 이루어지고 속속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전 총리에 대한 모해위증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대법원 판결 포함한 모든 재판 절차를 다시 들여다봐야지 대법원 판결을 지키기 위해 모해위증혐의를 덮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더구나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의 가운데에 양승태 대법원장으로 대표되는 사법 농단이 있었고 특히 2심 판결을 앞두고 김기춘이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취임해 이후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여러 거래들’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다.

6. “‘모해위증’과 상관없이 한 총리 지역 보좌관과 한 총리 여동생 사이에 오고 간 ‘1억 원짜리 수표’라는 물증이 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벗어나기 어렵다”

팩트는 한만호 사장이 발행한 ‘1억 원짜리 수표’가 어떤 경로를 거쳐 여동생에게 전달돼 전세자금으로 쓰여진 후 보좌관에게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이것을 한 총리가 한만호에게서 받은 9억 원 중 일부를 동생에게 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 총리 측은 급히 전세값(5천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수십만 원을 손해보고 적금을 깨게 된 동생이 마침 친하게 지내던 보좌관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 사실을 이야기했고 보좌관이 선뜻 여윳돈(1억 원)을 빌려주겠다고 해 그중 5천만 원을 빌렸을 뿐 한 총리는 당시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약 1개월 후 동생은 만기가 된 적금으로 수표를 만들어 되돌려줬고 이때 오고 간 관련된 수표 원본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분명히 판단을 했다.

“한만호가 발행한 1억 원짜리 수표 일부(5천만 원)를 동생이 보좌관으로부터 빌려 전세자금으로 썼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객관적인 사정은 전세자금으로 썼다는 것 밖에 없는데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돈이 한 총리로부터 동생에게 건너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재판장은 한만호의 양심선언을 통해, 변호인단이 제시한 알리바이를 통해, 현장검증을 통해, 한만호로부터 한 총리에게 단 한 푼도 전달되지도 않았고 전달될 수도 없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대선 경선에 나가는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직접 수수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조심성이 없거나 무감각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피고인은 총리를 지냈으며 오랜 기간 깨끗한 정치인으로 활동해 왔다. (정치자금을 직접 수수할) 그럴 가능성은 없다. (…) 검찰 주장에 따르면 피고인은 매우 용의주도한 인물이어야 하거니와 평소 피고인의 성격, 인간관계에 비추어 볼 때 (검찰의 그런 주장은) 맞지 않다.”

그것이 23번 공판을 열면서 20명 이상의 증인들에게서 증언을 들은 재판관의 ‘1억 원짜리 수표’에 대한 판단이었다.

만일 검찰이 그토록 ‘1억 원짜리 수표’의 증거력을 확신했다면 왜 그토록 ‘사기재소자’ ‘마약범죄재소자’를 동원해 가면서까지 가짜 증언을 만들어내려고 발버둥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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