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서 펼쳐지는 ‘정신적 씻김굿’ 한판
8월 4일~10일 인사아트프라자 개인전
남농의 문하생이자 외손녀사위

묵법 설채법 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하철경 화백
묵법 설채법 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하철경 화백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남종화풍의 산수화는 조선 중기부터 수용되어 후기에는 진경산수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말기에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크게 성행하게 된다. 소치, 미산, 남농으로 이어지는 한국 남종화의 계보는 이런 흐름속에 있다. 오는 8월 4일부터 10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에서 개인전을 갖는 임농 하철경 화백은 1977년 남농의 문하생으로 남종화에 입문한 작가다. 원래 서양화를 공부하다 군제대 후 한국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철경 화백은 한동안 이판(작업)과 사판(미협이사장,예총회장)을 병행한 작가다. 세상일에 정답은 없지만 나름의 명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작업에 전념하게 되면서 그런 노정들이 남농 허건 선생의 예술혼에 제대로 다가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고 여긴다.

“선생님은 셋방살이 시절 겨울에 찬 마루바닥에서 작업하시다 동상이 걸려 왼쪽발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아픔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러기에 평생 어려우신 분들에게 마음씀씀이가 각별하셨습니다.”

실제로 절박한 사연이나 자녀 학비 문제로 남농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아낌없이 그림을 내줘 해결할 수 있게 해줬다.

송광사의 봄
송광사의 봄
대흥사의 봄
대흥사의 봄

“1970년대만해도 남농선생님의  그림은 바로 현찰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전국에서 남농그림을 사려고 목포작업실에 진을 칠 정도였으니까요. 인근 숙박업소에 머물며 작품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어요. 남농선생님은  그런이들의 숙박비도 챙겨주었지요.”

남농은 임농과 겸상을 할 정도로 무척 아꼈다. 수석을 좋아했던 남농은 의족으로 탐석을 못하게 되자 전국을 수소문해 수집을 했다. 역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수석들은 임농이 리어카나 어깨에 메서   날라야 했다. 남농은 작업실 곁에 수석관을 마련할 정도로 수석마니아였다.

만추
만추

“제겐 수업료도 안받으셔서 대신 심부름을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석관을 지을때도 질통에 돌과 시멘트를 나르며 공사를 도왔지요.  수석관이 완성되자 선생님은 이제부터는 우리집에  머물며 그림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숙식까지 해결되니 좋았지요.”

남농은 임농을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사람됨됨이를 살폈던 것이다. 어느시점부터 임농과 겸상을 할 정도로 아꼈다. 임농은 남농 큰딸의 딸을 배필로 삼게 된다. 임농이 남농의 외손녀사위가 된 것이다. 한국 남종화의 화맥과 더불어 혈맥(가맥)의 인연까지 맺게된 셈이다.

변산의 겨울바다
변산의 겨울바다

“선생님은 문하입문때 저에게 각오를 물었습니다. 10년이상은 매진해야 붓이 겨우 살아 움직인다며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하셨지요.”

그는 당시는 몰랐지만 화업의 세월은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너무 관념에만 빠지면 안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장사생과 실경을 많이 접하라고 당부하셨지요.”

그는 지금도 이를 지키고 있다. 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은 그의 화업의 또 하나의 과제다.

대흥사의 가울
대흥사의 가울
내소사
내소사

힘찬 필세의 거침없음은 하철경 화백의 특유의 화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을 현대적 힐링공간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산수풍경도 매한가지다. 마음을 내려 놓고 불멍이 아닌 ‘풍경 멍’에 빠져들게 한다. 화폭이 진도 씻김굿 한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의 찌거기들을 씻어내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늘상 전통과 현대의 다이나믹한 하이브리드를 꿈꾸고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화(和)의 미학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전형적인 예라 했다. 겸재 이전의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잇고 새로운 남종화법을 활용하여 창출된 것이다. 소치는 한국적 남종화의 길을 보여주었다.

“진도 출신인 소치는 초의선사(1786 ~1866)의 도움으로 해남 녹우당을 드나들며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시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서울 화단의 총수인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만나 새로운 예술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두 스승을 통해 남종 산수화의 진수를 체득한 셈이지요.”

한일(
한일(閑日)

소치는 ‘의경’을 중시하는 중국 원대의 남종화 양식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남종화라 불릴 만큼 ‘남도의 서정’을 독자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산, 남농으로 이어지는 한국남종화의 가맥을 일궜다. 소치의 직계는 아니지만 정만조로부터 한학을, 미산으로부터 회화를 배운 의제 허백련도 한국남종화의 맥락속에 있는 인물이다. 북종화와 더불어 산수화의 2대 화풍 중 하나인 남종화는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남종 문인화라고도 한다.

“남종화 정신은 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한 모습이 그렇지요. 시정적(詩情的)이며 사의적(寫意的)인 품격은 이어 받아 오늘의 미술로 진화시켜야합니다.”

수묵화의 거장이 된 하철경 화백은 이번 전시를 그런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향후 그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화의 르네상스를 그에게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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