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제50회 정기공연

"천만개의 도시" 커튼콜_ /(사진=Aejin Kwoun)
"천만 개의 도시" 커튼콜_배우 이지연, 김현, 최나라, 하지성, 김수아, 이지원, 이주형, 김슬기, 정예교, 박세정, 김훈만, 진완시, 신안진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우리의 삶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47개의 장면으로 구성돼 일반적인 스토리 구조와 주인공 중심의 구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극의 형태로 만나는 서울, 서울시극단 제50회 정기공연 “천만 개의 도시”가 지난 3일부터 19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하나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독특한 형식의 연극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친근함을 선사해 주고 있다.

"천만개의 도시" 공연사진 | 각 인물들이 서 있는 공간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괄호 안의 속마음을 듣는 것은 숨은 욕망을 깨우는 느낌이기도 하다.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천만 개의 도시" 공연사진 | 각 인물들이 서 있는 공간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괄호 안의 속마음을 듣는 것은 숨은 욕망을 깨우는 느낌이기도 하다.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제22회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하고 ‘도덕의 계보학’, ‘스푸트니크’ 등 독특하고 심도 있는 관찰과 연구를 통한 섬세한 연출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박해성 연출가는 165분 동안 13명의 배우가 총 100여 개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기하는 숏폼(short-form) 형식의 장면들을 호흡의 끊김 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현실에 있는 장소로 몰입하게 만들며, 관객들의 사유를 자극하고 결국 스스로의 일상에 관한 생각으로 도달하며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고 있다. 박해성 연출가는 "지금 이 순간 이 극장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하나의 연극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맥락과 시선에 따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천만 개의 삶, 천만 개의 도시, 천만 개의 연극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천만 명이 삶의 순간을 스쳐가는 각자의 도시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천만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천만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배우 최나라, 이지연, 김수아, 신안진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시민들의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서울시극단은 다양한 나이대와 직종을 가진 시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1년간 사전 작업을 거쳤으며, 올해 2월부터 4개월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 사는 시민들의 생생하고 현실적인 삶을 바탕으로 전성현 작가가 극본을 쓰고 음악에 사운드 아티스트 카입(kayip)이 참여해 일상의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앰비언트 뮤직과 친근한 음악의 조합으로 신선한 스토리텔링과 최상의 하모니를 이뤄 공연의 새로운 구성과 내용에 힘을 보태며 무대와 관객석을 하나로 연결해주었다.

"천만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천만 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배우 김훈만, 이지원, 진완시, 하지성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마이크 울림이 더해지고 대형 LED 패널에는 괄호로 표시되는 각자의 속마음은 새로운 형식의 공연임에도 독특한 긴장감을 안겨주며 소소한 일상 속 각자의 속마음에 함께 웃기도, 함께 찔끔하기도, 함께 속상하기도 하며 나와 너, 우리의 일상의 기억과 겹쳐진다. “천만 개의 도시”라는 제목처럼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천만 사람 하나하나가 각기 자신만의 도시를 이루며 살아간다. 작품의 희곡을 쓴 전성현 작가는 "우리는 같은 세계 속에 산다고 믿지만 나의 세계가 거대한 만큼 타인의 세계도 거대하기에, 두 세계가 겹쳐지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각자의 세계가 다른만큼 서로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기도 쉽다는 뜻이겠죠"라며 "하지만 달리 보면 그 길잃음 덕분에 우리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잠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순간들을 담백하게 그려냈다.

"천만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천만 개의 도시" 공연 배우들에게 '나에게 서울이란?' 그리고 '나에게 '천만 개의 도시'란?' | 배우 김슬기, 이주형, 김현, 정예교, 박세정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이번 공연의 특성 상 음향과 자막을 실시간으로 조절하고 있을 스태프들의 노고 뿐 아니라 준비한 자막과 틀리지 않도록 고심할 배우들의 노력까지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도 어쩌면 극의 한 부분 같기도 하다. 작품의 예술감독이자 서울시극단 단장인 문삼화 예술감독은 "고향은 그런 건가 봅니다. 나의 무수한 발길이 머물렀던 곳,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냈던 곳, 무지하게 짜증 나는 것들을 견뎌내야 했던 곳"이라고 전하는 말처럼 아스팔트에 뒤덮여 삭막히 느껴질 수도 있는 서울은 무대 위에서 무수히 소소한 천만 편의 일상이 있는, 사람 내음 나는 서울로 새로이 다가온다. "스토리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고 반전은 더더욱 없는 연극, 이런 연극도 있어줘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런 연극이 관객들과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래본다.

"천만 개의 도시" 공연사진 |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천만 개의 도시" 공연사진 | 천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천만 개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사진=박유미·세종문화회관)

성별ㆍ국적ㆍ나이ㆍ장애 유무를 특정하지 않고 평범한 주위의 행인부터 연못의 잉어, 새, 고양이까지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들은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일상을 숨어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리고 네모반듯하게 레고 인형을 연상시키게 잘린 가로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직장인의 대화를 들으며, 그렇게 깎인 가로수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지기도 하다.

"천만 개의 도시" 포스터 /(제공=세종문화회관)
"천만 개의 도시" 포스터 (제공=세종문화회관)

연습실 경사로 설치와 연습 기간 수어 통역사가 상주하며 전 과정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공연 관람 환경까지 고려해 제작이 진행되었다. 전 회차 자막해설, 배리어 프리 공연 회차 자막해설과 음성해설이 제공된 이번 연극처럼 특별행사나 배려가 아닌 당연한 일상으로 배리어 프리 공연이 많아져 누구나 불편함 없이 함께 정보 접근의 권리, 문화향유의 권리 등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부터 자연스러워지는 시간이 곧 오리라 믿어본다. 소소한 일상 속에 새로움을 녹아낸 작품 "천만개의 도시"를 이어 서울시극단의 색채가 가득 담겨낸 다음 작품이 어떠할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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