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날 없었던 왕실…전세계에 충격준 다이애나 죽음

▶ 영국 최장 70년 재위 군주…끝까지 사랑받은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
▶ 장례식은 10일째 되는 날…세계 지도자들 애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재위 기간 70년으로 영국 최장 집권 군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앞서 왕실은 이날 정오가 조금 지나서 의료진이 이날 아침 여왕을 더 살핀 결과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여왕은 예년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불과 이틀 전인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인 7일 오후에 왕실에서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여왕은 지난해 4월에 70여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10월에는 하루 입원을 하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일정을 임박해서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왕실은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한다고 밝혔다. 찰스 3세는 이미 공식적인 영국의 국왕이지만 관례에 따라 대관식은 몇 개월 뒤에나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옮긴다.

영국 정부는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한다.

이에 따르면 국장은 여왕 서거 후 10일째 되는 날에 치러진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한 8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 애도 인파가 모여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한 8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 애도 인파가 모여있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며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여왕은 세계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트러스 총리는 "여왕은 바위였고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며 "여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줬다.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러스 총리는 "우리는 찰스 3세 국왕에게 충성심과 헌신을 바친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여왕의 서거에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밸모럴성과 런던 버킹엄궁 등 앞에는 애도하는 인파가 모였고 방송 진행자들은 가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여왕 서거에 영국뿐 아니라 각국 전·현직 정상과 프란치스코 교황 등 주요 인사들이 애도를 쏟아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인 질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여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엄한 지도자였으며, 기반암과 같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켰다"며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추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찰스 3세와도 우정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왕실 가족들
왕실 가족들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던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살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영국 최장 재위 군주일 뿐 아니라 기록이 확인되는 독립국의 군주들 가운데 프랑스 루이 14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기간 왕위를 지켰다.

15명의 총리가 거쳐 간 이 기간 영국은 전후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21세에 한 약속을 지켜 평생 헌신하고 개인적 감정은 뒤로하는 모습으로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올해 6월 성대하게 치러진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축하를 보냈다.

여왕은 영국의 강력한 소프트파워였다. 그는 영연방을 결속해서 영국이 대영제국 이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했고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나고 유엔 연설을 하는 등 외교 무대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케네디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여왕
케네디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여왕

1961년 버킹엄궁에서 영국을 방문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영국 뿐 아니라 세계 현대사에서 여왕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고,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여왕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현대에 국민 지지 없이 왕실이 존립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군주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개회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하고 코로나19 때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낸 모습, 필립공 별세 때 코로나19 봉쇄 규정을 지키느라 외로이 앉은 모습 등은 영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와 국제정치 흐름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유머와 친화력을 잃지 않은 점도 인기의 비결이다.

이러한 덕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은 덕택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군주제는 존립의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여왕은 그러나 후손들의 말썽으로 골치를 많이 앓았다.

여왕은 필립공과 슬하에 찰스 3세,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자 등 손자녀 8명, 증손자녀 12명을 뒀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이혼은 세계가 떠들썩한 이슈였다. 이후 다이애나비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여왕은 입장을 늦게 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해리 왕자가 왕실 밖으로 뛰어나가서는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전하'라는 호칭까지 박탈당했다.

안동 하회마을서 '생일상' 받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안동 하회마을서 '생일상' 받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여왕은 지난 1999년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883년 두 나라가 수교한 지 1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여왕은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었으며 안동 하회마을, 서울 인사동 거리, 이화여대를 방문해 한국 전통문화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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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이 악화되긴 했지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신임 총리를 직접 맞았던 96세 일기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절제된 언행과 근면성실한 이미지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의 재위 기간에 왕실의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전 부인인 故 다이애나가 함께 찍은 사진.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전 부인인 故 다이애나가 함께 찍은 사진.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에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다. 왕실이 관련된 여러 스캔들 가운데서도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은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다이애나와 이혼하고 이듬해 다이애나비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은 세계인의 뇌리에 충격적인 일로 각인돼 있다. 1981년 결혼한 이들은 별거 등으로 불화설이 끊이지 않다가 1996년 이혼했다. 영국 대중은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찰스 3세와 유부녀였던 커밀라 파커 볼스의 불륜 때문이었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다이애나비를 동정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현재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에 런던 버킹엄 궁 앞에서 영국 국가이기도 한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를 합창하는 시민들, 런던 중심가 대형 전광판에도 여왕 얼굴을 비췄다. 프랑스 에펠탑은 애도의 의미로 조명을 껐고, 이스라엘에선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시청에 영국 국기를 수놓았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 도중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소식을 확인하고 애도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세계 각국 정상들은 SNS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여왕 서거에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고 전쟁 중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조의를 표했다.

뉴욕 증권시장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유엔 안보리에서도 회의를 잠시 멈추고 영국 여왕을 기렸다.

왕실을 떠난 후에도 격의 없는 행동과 적극적인 자선단체 활동으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던 다이애나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여론은 다이애나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도 냉담한 태도를 보인 영국 왕실을 곱지 않게 봤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사이의 두 아들 가운데 윌리엄 왕세손(39)은 부인 케이트 미들턴(40)과 순탄한 왕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해리 왕자(38)는 2020년 1월 왕실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해리 왕자(오른쪽)와 메건 마클(왼쪽)
해리 왕자(오른쪽)와 메건 마클(왼쪽)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41)과 결혼한 해리 왕자는 다른 왕실 구성원과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작년 3월 그와 메건 마클이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를 하면서 제기한 영국 왕실의 인종차별 의혹은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혼혈인 메건 마클과 사이에 낳은 아들의 어두운 피부색을 영국 왕실이 우려해 왕족으로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았다는 발언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매체를 통해 왕실의 지나친 통제 등을 주장하며 왕실과 대립각을 세웠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62) 왕자의 성폭행 의혹 피소 사건도 왕실의 입지를 흔든 사안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그는 2001년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함께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던 미국 여성 버지니아 주프레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올해 2월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전하'라는 호칭까지 박탈당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이 왕실의 입지를 실추시킨 탓에 그는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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