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류 보수는 왜 윤석열 정권을 버렸나

윤석열에서 이명박으로의 조용한 정권교체

이재오 전 의원(현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4월 11일을 기해 행정안전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조직의 법률적 성격상 한국자유총연맹과 유사한 관변단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관변단체는 그 인사권을 포함해 집권세력의 전리품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이 전 의원이 지금의 범여권 인사들 중에서는 매우 드물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를 언제든지 마음껏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례적으로 누려온 점을 감안하면 이재오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장에 앉는 일에는 커다란 변수와 걸림돌이 없을 걸로 판단된다.

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진영이 정권을 접수하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를 이미 몇 차례에 걸쳐 피력한 터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전·현직 검사들이 국가권력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왜 이명박 전 대통령 진영에 내줬는지에 관해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가 있다.

정권의 소유권이 윤석열로부터 이명박으로 슬금슬금 빠져나가도록 만든 근본적 원인은 한마디로 윤석열과 검사들의 실력과 역량 부족에 있다. 검사들에게 나라를 계속 맡겼다가는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는커녕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당장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년 총선조차 제대로 치르기 어렵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남한의 주류 보수세력 내부에 깊고 넓게 형성됐다고 하겠다.

바야흐로 윤석열 일행이 직접적이고 실효적으로 점유·관장하는 국가기구는 검찰과 경찰 등의 전통적 의미의 공안기관에 점점 더 한정돼가는 분위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명박 진영은 당정대, 즉 여당과 정부와 대통령실 요소요소에 자파 계열 인사들을 골고루 포진시킨 양상이다.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하고 국민의힘을 장악한 장제원 의원도, 행정부의 2인자로서 최근 들어 국회에서의 야당 의원들과의 말싸움에 나날이 재미를 붙여가는 한덕수 국무총리도, 윤 대통령의 50년 지기이자 자신의 상급자인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을 간단히 밀어내고서 용산 대통령실의 최고실세로 부상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명실상부한 ‘MB의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총구에서 비롯되던 과거에는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등의 자리에 대통령에 충성하는 군인들을 발탁해야만 정권의 안전과 안위가 보장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한국도 여느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권력이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나오는 구조로 바뀌었다. 민중이 합참의장이나 육군참모총장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방송통신위원장과 KBS 한국방송 사장이 누구인지는 알게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방통위원장 임명이 유력시되는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이명박의 최측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수십 년 동안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정순신 전 검사가 본인 아들이 가해자로 지목된 학교폭력 사건으로 말미암아 낙마할 당시에는 여권 전체가 지금처럼 똘똘 뭉쳐서 정 전 검사를 옹호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석열 정권과 일심동체 같이 움직이는 조선일보마저 정순신의 국가수사본부장 기용 철회를 촉구하는 논조의 기사와 칼럼을 자사 지면에 여러 건 실었다.

정부여당과 주류 보수가 이동관을 맞이하는 자세는 정순신을 대하던 태도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후자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객식구라면, 전자는 그야말로 금쪽같은 내 친혈육이다.

왜냐? 대한민국 주류 보수의 관점에서 미시적으로 평가하면 정순신은 윤석열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이동관은 이명박에게 요구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조망하자면 윤석열은 202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만 이기는 데 소용이 있는 사람이고, 이명박은 짧게는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길게는 2027년의 제21대 대선에까지 도움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몸값에서 솜털보다 가벼운 인물이 윤석열이면, 태산보다도 무거운 인간이 이명박인 구도인 것이다. 대한민국 주류 보수의 눈높이에선!

이재오의 당근이 한동훈의 채찍을 이긴 날

그렇다면 이재오는 어째서 여태껏 원로급 명망가들이 일종의 명예직으로 취임해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감투를 쓰려고 안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검사 출신 인사들을 앞세워서는 추진하기에 무척이나 벅찬 과제인 정계개편의 책무를 이재오 정도면 능히 감당할 수 있으며, 정계개편의 기본 절차인 일부 야당 인사들과의 원활한 접촉과 부단한 소통을 무리 없이 성사시키기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회 간판이 현실적으로 안성맞춤인 데 있다.

국민들이, 특히 2030 젊은 세대가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두 개 있다.

첫째는,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이재오가 무려 10년 넘게 옥고를 치렀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한일국교 정상화 협상에 극렬히 반대했던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인생의 전반기는 신림동에서 오로지 사법시험 공부에 매달리고, 후반기는 서초동에서 검찰 공무원으로 편안하게 생활해온 검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빛나는 훈장이고 영광스러운 경력이다.

1987년 체제가 출범한 이후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의 양대산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였다. 양 계파는 적잖은 기간에 걸쳐 고락을 함께하며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해왔다.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과 이재오 전 의원이 호형호제하는 관계인 것도 그와 같은 오래된 인연에 기인하고 있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여러모로 지원을 받았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재오의 폭넓은 인맥과 마당발 동선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를 주름잡은 유명한 책사이자 유세객인 소진과 장의의 현란한 행보와 닮았다. 이재오는 보수의 합종연횡을 여의도 안팎을 무대로 도모해갈 발판 구실을 해주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때 이른 몰락과 실패는 그가 채찍만으로 반대세력을 처리·제압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진 탓이 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의 이러한 무지한 망상을 무분별하게 답습했다가 등장 초기의 참신함과 개혁성과 확장력을 모조리 상실하고 말았다.

그들과는 정반대로 이재오는 당근의 위력과 유용성을 깨알같이 소상하게 숙지하고 터득한 사람이다. 그는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같은 권력분점을 매개로 하여 야당의 대오를 무너뜨리려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오의 유연하고 신축적인 접근법은 '압수로 해가 뜨고 수색으로 해가 지는' 작금의 살벌하고 경직된 검찰통치에 지독한 염증과 환멸을 느끼는 다수의 일반 대중의 시선에 어쩌면 대단히 신선하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칠지 모른다.

정치는 본디 가능성의 예술이기 마련이다.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의 본질과 역할을 고집스레 외면하고 단순하고 우악스러운 일차원적인 법률기술에 의지해 만사를 해결하려 들었던 윤석열 일행의 조기 퇴출은 따라서 자업자득 반, 인과응보 반의 사태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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