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일까요? 옛 선인(先人)들은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라 하였습니다. 옛날, 30년을 벽만 쳐다보고 도를 닦은 스님이 계셨지요. 황진이(黃眞伊)는 자신의 여자 됨의 매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 비 오는 어느 날, 사찰로 스님을 찾아가 “이 깊은 밤 산속에서 갈 데가 없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애원합니다.

비에 젖은 여인의 모습은 여간 고혹적(蠱惑的)이 아닙니다. 거기에다 남자에게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함이 더해, 이런 유혹을 떨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너무나 담담하게 그러라고 승낙합니다.

이미 도의 경지에 있었던 터라 여인과 한 방에 있다가 유혹을 해도 파계(破戒)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산사(山寺)의 방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습니다. 돌아 앉아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서,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그 옷 벗는 소리가, ‘解(벗을 해), 裙(치마 군), 聲(소리 성)’ 해군성(解裙聲)이지요.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요? 30년 수도승은 이 소리에 한순간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옛 시인 묵객(墨客)들은 ‘해군성’을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그 중, 단연 으뜸은 오성(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 1556~1580)의 “깊은 골방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인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에서, 첫눈을 ‘먼 곳에서 여인(女人)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하고 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에 눈 내리는 소리가 시인에게 마치 어둠 속에서 치마끈을 풀어 치맛자락이 사르르 흘러내릴 때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리처럼 들린 것이지요.

조선 시대 우연히 어느 벼슬 아치의 환송 회식에 참석한 한정철과 류성룡, 이항복, 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학문과 지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시제(詩題)를 가지고 시 한 구절 씩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자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먼저 운을 뗐습니다. 「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 소리」,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는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서애(西厓) 류성용(柳成龍)은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 거르는 소리」,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는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였지요.

하지만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洞房良宵 佳人解裙聲(동방양소 가인해군성),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로, 이날 저녁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 대감 이항복의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습니다.

당대에 내놓으라 하는 대 학자요, 문장 가요,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가이었지만, 인간의 본성에 매이다 보니, 음란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멋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가 정말 아름다운 소리인가요? 아닙니다. 진리를 깨우치려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다가 어느 날, 문득 터져 나오는 ‘대각(大覺)의 함성’이 아닐까요!

꼬박 무려 40년 간을 이 ‘대각의 함성’을 터뜨리기 위해 일구월심(日久月心), 일직심(一直心)으로 달려온 몸입니다. 하지만 천성(天性)이 아둔해 오늘도 회한(悔恨)의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네요.

어쨌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의 극치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 즉 대각일성(大覺一聲)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현이라고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공자(孔子), 노자(老子) 그리고 예수님이나 소태산(少太山) 부처님도 마침내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시고 ‘대각일성’이라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배워서 되는 것도, 생각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깨달음은 깨달음 고유의 길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서도 아니고, 또한, 강요에 의해서도 이를 수 없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지요.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부처님께서는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 가신 간 성자이십니다. 소태산의 영적 여정(靈的 旅程)은 평범한 의문에서 비롯됩니다. 우주와 자연에 대한 의문,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의문 등,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 만 갔지요.

밖으로 산 신을 만나고자 기도를 올렸고, 스승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지 못한 채, 입정(入定)에 들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크게 깨달은 소태산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 법이 한 근원이로다. 그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다.”라는 대각일성을 터치셨습니다.

덕산 김덕권
덕산 김덕권

그리고 이를 <일원상(一圓相, ○>으로 그렸습니다.

우리 대각의 함성을 지릅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결코 ‘해군성,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가 아닙니다. 도탄(塗炭)에 빠져 고통 받고 있는 만 생령(萬生靈)을 구원하는 대각의 함성이지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10월 11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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