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 人物論(24) 사람은 누구나 인정을 받고자 한다

무릇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 이는 단순 하지만 영원한 진리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덕성, 학식, 소질, 포부를 살펴봐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晏嬰)은 대단한 학식과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시 어느 나라에도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을 식별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여러 차례 탄식했다.

제나라에 북곽소(北郭騷)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냥 그물을 짜고 짚신을 만들어 모친을 봉양했지만, 항상 힘에 부쳤다. 어느 날 그는 안영을 찾아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인자함과 의로움을 흠모해왔습니다. 제 모친을 봉양할 만한 것을 빌리려 합니다.”

안영은 사람을 시켜 창고에서 돈과 양곡을 꺼내 그에게 내주었다. 북곽소는 돈은 사양하고 양곡만 받아 갔다.

얼마 후 안영은 제왕 경공(景公)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조정에 머무를 수 없다고 느낀 그는 조정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북곽소의 집 앞을 지나면서 안영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북곽소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안영에게 정중히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대왕의 의심을 받아 몸을 피하는 길이라네.”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북곽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차에 오른 안영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도망자 신세가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정말 나는 사람을 알아볼 줄 모르는구나!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안영이 떠나자마자 북곽소는 즉시 친구를 찾아가 말했다.

“난 일찍이 안영의 인자함과 의로움을 존경해서 그에게 어머님께 드릴 양식을 빌린 적이 있네. 제 부모를 모실 수 있게 해준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대신 져야 한다지. 지금 안영이 대왕께 의심을 받는다고 하니 내 생명을 걸고 옹호해드려야겠네.”

북곽소는 의관을 단정히 하고 친구에게 보검과 대나무 광주리를 들게 한 뒤, 그를 앞장세워 궁궐에 갔다. 왕에게 소식을 전하는 신하에게 그가 간곡히 말했다.

“안영은 천하에 이름난 현자입니다. 지금 대왕의 의심을 받아 제나라를 떠나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나라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원하건대 제 머리를 베어 안영의 결백함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어서 그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 머리를 베어 광주리에 담아 대왕께 올리게. 그리고 내 청을 말씀드려주게나.”

북곽소는 말을 끝내자마자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베었다.

친구는 북곽소의 목을 광주리에 담고 신하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북곽소라는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사람을 위해 죽고자 합니다.”

그도 말을 마친 다음 칼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놀란 경공은 친히 마차를 타고 안영을 쫓아갔다. 그는 교외까지 쫓아가 겨우 안영을 따라잡고 다시 돌아오기를 청했다. 안영은 별수 없이 경공과 함께 도읍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북곽소가 목숨을 바쳐 자신의 결백을 밝혀준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안영은 다시 탄식했다.

“나 안영이 도망자가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정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안영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짧음을 두 차례 반성한 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겸손이나 심지어 교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진정 어린 반성으로서 깊은 이치가 담긴 것이었다. 첫 번째는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이 밝지 못했음을 반성한 것이다. 그런 눈을 갖고 어떻게 군주를 보좌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눈이 있되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군주를 보좌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니, 군주의 의심을 사고 도읍에서 도망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자신의 수양과 실력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탓했던, 것이다.

앞의 예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일단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죽음으로 보답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위에 요순 같은 임금이 있으면 아래에 요순 같은 백성이 있고, 사람을 쓰는 데 능하면 도척(盜跖) 같은 도둑도 충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람 쓰는 방법만이 아니다. 옛사람들의 경험은 상당히 성숙했고 풍부했다. 진작부터 그들은 사람을 쓰고자 하면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그의 자존심을 세워 줘야 함을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명확하지 않으면 방법을 강구 해서 이를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알았다. 안영은 이를 매우 잘 이해했으니, 그는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영이 중모라는 지방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는 길가에서 쉬고 있던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를 보고 그가 군자임을 알아챘다. 안영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무슨 일로 이곳에 있소?”

그 남자가 말했다.

‘제 이름은 월석보(越石父)라고 합니다. 남의 집 하인으로 이곳 중모에서 노동을 하고 있고, 지금 일을 하러 나왔다가 막 돌아가려는 참입니다.“

“왜 남의 집 하인이 되었소?”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려고 하인이 되었지요.”

“하인이 된 지 얼마나 되었소?”
“벌써 3년이 넘었군요.”

안영이 그에게 제안했다.

‘몸값을 치러줄 테니 나와 함께 가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영은 즉시 마차를 끌던 말 한 필을 끌러 월석보의 몸값을 치렀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마차에 태워 제나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안영은 월석보에게 한 마디 인사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몹시 화가 난 월석보는 안영에게 절교를 요구했다. 안영이 사람을 보내 그에게 전했다.

“과거에 나는 선생과 교분을 나눈 적이 없소. 그런데 오늘 3년이나 종살이를 한 당신을 처음 보고 지금 자유의 몸이 되게 해주었는데 대체 무엇이 맘에 안 드는 거요? 왜 이렇게 서둘러 나와 절교하려는 거요?”

월석보가 대답했다.

“남자는 자신을 몰라주는 사람 앞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꼿꼿하게 편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군자는 자신이 은혜를 베푼 사람을 경시해서는 안 되며, 또한 자신에게 은혜를 준 사람에게 굽실거려서도 안 됩니다. 제가 3년 동안 종살이를 한 것은 절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께서 절 풀어주셨을 때, 선생은 진정 저를 알아주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차에 오른 다음, 선생은 한마디 겸손의 말씀도 안 하시던 군요. 저는 그냥 잊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인사말도 없이 들어가신 것은 저를 하인으로 취급하신 것과 같습니다. 원래 비천한 하인 놈이었으니 부디 팔아 치워주시길 바랄 뿐이지요.”
이 말을 전해 들은 안영은 집에서 나와 월석보와 대면했다.

“처음엔 당신의 용모만을 보았지만, 이제는 당신의 속마음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는 이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끌어들이지 않고, 실질을 중시하는 이는 다른 사람의 언사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과드릴 터이니 부디 절 저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안영은 명을 내려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잔칫상을 차려 융숭하게 대접했다. 월석보는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공경을 다 한다 해도 억지로 예의를 차릴 수는 없으며, 아무리 예의가 정중해도 상하 구분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선생께서 예의 바르게 저를 대해주시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군요.”

그러자 안영은 월석보를 상석에 앉히고 대접했다. 나중에 월석보는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만약 안영이 요즘 사람들처럼 사람을 써먹을 때는 다가서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무시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뺨을 맞았을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크게 짓밟는 행위이니, 그런 인물이었다면 안영은 제나라의 재상은커녕 한 고을의 군수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을 가지려면 반드시 그만한 재능과 지혜를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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