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物論(14), 용병과 지략의 최고들이 펼치는 승부의 세계

진정한 지자(智者)는 세태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용인술에 있어 유방에게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 개국 초기에 유방은 한신을 비롯한 여러 장수와 함께, 장군들의 능력에 관해 논했다. 유방이 한신에게 말했다.

“장군은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한신이 망설임 없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자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럼 10만 대군은 어떨 것 같소?”

“그것도 어렵습니다.”

유방은 버럭 화를 내며 따졌다.

“그대 말대로라면 내가 어느 정도의 병력을 통솔할 수 있다는 것이오?”

“폐하께서는 1만의 병사면 족합니다.”

“그럼 한 장군은 어느 정도의 병력을 이끌 수 있소?”

한신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제게는 병력이 얼마 되든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많을수록 좋지요.”

유방은 노기를 풀지 않은 채 재차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병력을 다스릴 줄 모르는 나는 황제가 되었는데 병력을 잘 이끄는 그대는 왜 겨우 장군에 머무른 것이오?”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병사들을 잘 통솔 하지만 폐하께서는 장군들을 잘 통솔하시니까요.”

그제야 유방의 화가 풀렸다. 유방도 언젠가 군막을 치고 천 리 밖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묘책을 내는 데는 장량만 한 사람이 없고, 군량과 마초 등의 물자 공급을 보장하여 치국안민 하는 데는 소하만 한 사람이 없으며 전선에 나가 적을 무찌르는 데는 한신만 한 인물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신은 병력을 통솔하는 데 뛰어난 장수였다.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인재를 모으는 데 주력했고, 인재의 수에 따라 자신의 덕행 유무를 판단하곤 했다. 하지만 인재를 식별하는 능력은 역시 지모에 있었다. 사람을 얻는 것은 덕(德)에 달려있고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智)에 달려있다. 사람을 모을 줄만 알고 알아볼 줄 모른다면 평범한 인재에 불과하고, 사람을 알아볼 줄만 알고 모을 줄 모른다면 쓸 만한 인재는 전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모으는 것과 알아보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지자(智者)는 맹목적인 교조에 빠지지 않고 세태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능력과 인식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장량이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초한전쟁 시기에 유방이 형양에 구금됐던 일이 있었다. 그는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여식기에게 계책을 마련하게 했다. 계책이 나오긴 했지만, 장량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사회의 발전과 형세의 변화, 인사의 전환이라는 세 가지 각도에서 당시의 책략을 분석하고 확정한 것이었다.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장량의 분석과 예측 덕분이었다. 장량이 없었더라면 그는 항우에게 패했을 것이 분명하다.

장량(張良, ? ~ 기원전 189년)은 중국 한나라의 정치가이자, 건국 공신(좌)/한신(韓信: ?~BC196)은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뛰어난 장수로 '한초삼걸(漢初三杰: 소하, 장량, 한신 세 사람을 일컬음)'의 한 사람/출처:위키백과
장량(張良, ? ~ 기원전 189년)은 중국 한나라의 정치가이자, 건국 공신(좌)/한신(韓信: ?~BC196)은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뛰어난 장수로 '한초삼걸(漢初三杰: 소하, 장량, 한신 세 사람을 일컬음)'의 한 사람/출처:위키백과

장량은 몸이 허약해 항상 병을 달고 다녔다. 때문에, 단독으로 병력을 통솔하지 못하고 항상 모사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다. 한 고조 3년(BC 204), 항우가 유방을 형양에 가둔 채 겹겹이 포위하자 다급해진 유방은 여식기와 초나라의 힘을 약화할 방법을 상의했다. 여식기가 말했다.

“과거 상의 탕왕은 하의 걸왕을 토벌하고 나서 걸왕의 후손들에게 기(杞)를 봉지로 떼어주었고, 주 무왕은 은 주왕을 주살하고 나서 주왕의 후손에게 송(宋)을 봉지로 떼어주었습니다. 지금 진 왕조가 잔학무도해져서 6국을 멸하자 6국의 후예들이 설 땅이 없어졌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6국의 후손들을 다시 왕으로 봉하신다면 이들은 다투어 폐하의 크신 덕과 의로움을 칭송하고, 기꺼이 폐하의 신하나 처첩이 되기를 자원할 것입니다. 대덕대행이 각 제후와 왕들 사이에 성행하게 되면 폐하께서는 서남 지역의 패자가 되실 것이고. 초나라도 의관을 정제하고 예를 갖춰 폐하를 배알(拜謁)하게 될 것입니다.”

유방이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어서 가셔서 6국의 옥인을 새기고 공께서 분봉을 위해 떠나실 때 그 옥인을 가져가도록 하시오.”

여식기의 건의는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장량의 분석을 거치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여식기가 떠나기 전에 장량이 유방을 찾아왔다. 마침 유방은 식사 도중에 장량을 보고 말했다.
“문객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초나라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는 묘책을 알려주었소!”

유방은 여식기가 제시한 계책을 장량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누가 폐하께 이런 따위 생각을 계책이라고 올렸습니까? 이제 폐하의 대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소?”

“폐하의 앞에 놓인 젓가락을 잠시 빌리겠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려서 형세를 설명해드리지요. 첫째, 과거에 상의 탕왕이 하의 걸왕을 토벌하고 나서 걸왕의 후손을 기에 봉하고, 주 무왕이 은 주왕을 주살하고 나서 주왕의 후손을 송에 봉했던 것은 이미 걸왕과 주왕이 죽은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항우의 죽음을 확인하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계략을 써서는 안 됩니다.

둘째, 주 무왕이 은나라에 가면서 기자(箕子)의 문 앞에 이르러 수레의 굴대를 만져 경의를 표했고 비간(比干)의 묘를 참배했는데, 지금 폐하께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셋째, 문왕은 주왕이 모아놓은 양곡을 전부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주왕이 세운 녹대(鹿臺.-은나라의 주왕이 재화와 보물을 모아 두던 곳)에 있던 재물도 전부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救恤)하는 데 사용했는데, 지금 폐하께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왕은 은 왕조와의 전쟁이 끝난 후, 군용 수레를 전부 일반용으로 전환하고 창과 도검을 전부 수거함으로써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는데, 지금 폐하께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또 무왕은 군마와 군수품을 실어 나르던 우마를 전부 들판에 풀어줌으로써 더는 우마가 필요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점들이 바로 여식기의 계책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또 천하를 떠돌면서 유세하는 책사들이 자신들의 조상과 부모, 그리고 오랜 친구들 곁을 떠나 폐하 한 분만을 쫓아다니는 것은 조금이라도 땅을 얻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6국의 후손들을 옹립하지 않으면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봉할 땅이 없기에 책사들도 제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 가족과 나라를 위해 책략을 내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누가 폐하를 도와 천하를 차지하겠습니까? 또 초나라가 강대하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만일 초나라가 강대해져서 6국이 초에 굴복하게 되면 폐하께선 어디 가서 신하국을 자처하던 6국의 후손들을 얻으시겠습니까? 이 또한 여식기의 책략을 실행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 계책을 쓰신다면 폐하의 대업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장량의 진언에 유방은 입에 들어갔던 음식을 도로 뱉으면서 욕을 해댔다.

“이런 제기랄, 하마터면 나의 제업이 다 망가질 뻔했구나!”

그리곤 당장 6국의 옥인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

사실 장량의 간언은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다. 전반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후반부는 다소 억지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장량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그를 늦게 만났다면 항우를 물리치고 한 왕조를 세우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장량의 정치적 예측은 대단히 정확했다. 그가 이런 진언을 올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라 땅을 점거하고 있던 한신이 유방에게 사자를 보내 자신을 제나라의 가왕(假王)으로 봉해 주기를 요구했다. 유방은 이 요구를 듣자마자 크게 화를 내면서 한신이 자신을 지원하러 오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여 제후의 영토를 얻으려 한다고 원망했다.
그러나 후에 장량의 간언을 듣고 한신을 제왕으로 봉했고, 그 결과 한신의 도움을 받아 항우의 군대를 대파할 수 있었다. 만일 여식기의 책략에 따라 제나라 후손들을 봉했다면 한신은 오래전에 유방을 배반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 왕조의 흥망성쇠는 상당 부분 장량이라는 뛰어난 정치적 예언자의 지모에 의존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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