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疏通]

줄행랑이 으뜸이다.

‘남사(南史)’ ‘단도제전(檀道濟傳)’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유송(劉宋)의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단도제(檀道濟)가 북위(北魏) 정벌에 나섰다. 먼 길을 행군하느라 병사들은 지쳤고 식량도 제때 보급되지 않아 상당한 곤경을 치르고 있었다. 역성(歷城.-지금의 산동성 역성현)에 이르자 마침내 식량이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서 단도제는 모래를 가마니에 담아 식량인 것처럼, 쌓으면서 병사들로 하여 ‘양식 가마니 수를 큰 소리로 세게’ 하는 ‘창주양사(唱籌量沙)’의 계략으로 적을 속이고 무사히 귀환했다.

역시 ‘남사’ ‘왕경칙전(王敬則傳)’에 실린 내용이다. 남조의 송나라가 망한 후 소도성(蕭道城)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니 그가 바로 제(齊) 고조이고, 이로써 남제(南齊)라는 왕조가 시작되었다. 왕경칙(王敬則)은 소도성 밑에서 보국장군(輔國將軍)이라는 자리에 있었다. 글은 몰랐지만, 위인이 교활하고 야심이 컸다. 명제(明帝) 소란(蕭鸞) 때 왕경칙은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명제는 중병을 앓고 있던 터라 금세 위기 상황이 닥쳤다. 명제의 아들 소보권(蕭寶卷)은 도망갈 준비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득의만면해서 비꼬았다.

“저들 부자는 자신들이 지금 무슨 방법을 취하려는지도 모를 것이다. 단공(檀公)의 36계 중 ‘줄행랑이 으뜸’이라는 계책이다. 암! 일찌감치 달아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른바 ‘36계’는 계책이 많다는 뜻이지, 계책이 모두 합쳐 36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뒷날 완성된 ‘36계’도 군사 계략이 36개라는 것이 아니라, 음양 학설 중 태음(太陰)에 해당하는 수인 6x6=36이란 뜻으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계략을 비유했을 뿐이다. 그 조목들 몇 가지를 예로 들면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만천과해(瞞天過海)’, 제3자로 하여금 나의 경쟁자를 치게 한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 ’매미가 껍질을 벗듯 후퇴한다‘는 ’금선탈각(金蟬脫殼)‘, ’잡으려면 일단 놓아주라‘는 ’욕금고종(欲擒故縱)‘, ’조호이산(調虎離山)‘ 등등이 있다. 그, 중에서 ’주위상계‘는 맨 마지막의 제36계다.

‘주위상계’는 불리한 형세에서 적과의 결전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투항‧강화‧퇴각이 포함되어 있다. 세 가지를 서로 비교해보면, 투항은 철저한 실패, 강화는 절반쯤 실패, 퇴각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도망’이 상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도망’이 각종 책략 중에서 상책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단도제의 안전한 퇴각이나, 송나라의 필재우(畢再遇)가 ‘양을 거꾸로 매달아 북을 치게 하는 ’현양격고(懸羊擊鼓)‘의 계략으로 안전하게 군대를 퇴각시킨 것 등은 적의 절대 우세를 차지하고 있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상책이다. (’현양격고‘ 참조)

‘싸워 이길 것 같으면 싸우고, 그렇지 못하면 달아 나라’는 말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달아나느냐 하는 것에는 반드시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현대적 조건에서 군대의 기동력‧반응력‧정보 수집력이 엄청나게 발전해 있기에, 제대로 도망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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