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정세 지형을 얼마나 파악했을까?

“여러분들이 왜 UAE에 오게 됐느냐, UAE는 바로 우리의 형제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입니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입니다.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습니다.”

UAE를 국빈방문 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5일 UAE(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을 격려하면서, 공식석상 발언이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3박 4일간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두바이 왕실 공항을 통해 다보스포럼이 열리는 스위스로 출국했다.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7일(현지시간) 두바이 왕실공항에서 다보스 포럼 참석 등을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 탑승,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3박 4일간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두바이 왕실 공항을 통해 다보스포럼이 열리는 스위스로 출국했다.

UAE에 파병된 아크(Akh)부대의 이력은 대략 이러하다. 2010년 5월, 한국군 특전사 방문을 통해 대한민국 국군의 우수성을 확인한 UAE 왕세자는 한국군의 UAE군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훈련 지원과 세부 협력 방안 등 발전적 교류확대를 요청했다. 

그해 8월 우리 국방부장관이 UAE를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 특전사 대원들의 파견을 공식 요청했다. 2010년 12월 8일, 우리 정부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 2011년 1월 10일 대한민국 창군 최초의 군사협력파견부대인 ‘UAE 군사훈련협력단’ 일명 ‘아크부대’가 창설되었다. 2011년 1월 11일 1진 파병이후 현재 20진이 임무수행 중이다.

지난 1월 16일, 이란 외무부는 이웃인 아랍에미리트(UAE)와 관계에 대해 외교적 결례를 범한한국 대통령발언을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하면서, “이 날 발언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한국 정부 설명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남북은 서로를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UAE와 이란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진정 ‘주적’ 사이일까? UAE와 이란과의 관계는 단 한 번도 전쟁을 치룬 나라도 아니다. 외교적 마찰로 인해 2010년대 후반에 단순히 사이가 엇박자를 냈을 뿐 그 이전에도 경제,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했던 관계였다.

그런데도 윤대통령의 이런 민감한 발언은 UAE와의 조율 하에 이루어진 것은 분명 아닌 것으로 보인다. UAE와 이란과의 관계를 자극하는 발언을 UAE 당사자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사진: 1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발언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발언을 '외교참사'로 규정하는 한편 "대통령의 입이 최대 안보 리스크"라고 몰아붙였고, 국민의힘은 "표현상의 문제"라고 수습하면서 순방 성과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윤 대통령은 전날 UAE에 파병된 국군 아크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언급했다.
사진: 1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발언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발언을 '외교참사'로 규정하는 한편 "대통령의 입이 최대 안보 리스크"라고 몰아붙였고, 국민의힘은 "표현상의 문제"라고 수습하면서 순방 성과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윤 대통령은 전날 UAE에 파병된 국군 아크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언급했다.

이란 역시 UAE 관계를 감안할 때, 이란 카나니 대변인이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 만 연안 국가들과 이란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와 최근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전개에 무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발언의 맥락은 윤석열 대통령이 중동정세에 밝지 않다는 시각을 생생히 노정시킨 것이다. 이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이란 3국 간의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소지가 있다. 

● 영토분쟁 역사 ‘종교적 갈등’ 

UAE는 중동 내 대표적 수니파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천만 명에 이르는 인구 가운데 이란계 시아파의 비중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역사적으로 UAE와 이란은 걸프 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아부무사(Abu Musa) 섬과 대턴브(Greater Tunb) 섬, 소턴브(Lesser Tunb) 섬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UAE가 연방 국가를 이룬 1971년에 이란은 2개의 턴브 섬을 장악한 데 이어 1992년에 아부무사 섬까지 점령한다. 

양국의 영유권 분쟁은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며, 1968년 영국이 걸프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키자, 이란이 이들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현재 이란은 이들 3개의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나, UAE는 양국 간 경제적 밀접한 관계 등을 감안하여 맞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UAE와 이란은 모두 이슬람 형제국가지만, UAE는 수니파 이슬람교 80%를 차지하는 반면,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교의 종주국이다. 2016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의 유력 성직자들을 반체제 혐의로 처형했다. 이에 분노한 이란의 일부 시아파 무슬림이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자 이란과 사우디는 단교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중동 국가가 이란과 수교를 단절하거나 외교관계를 격하했다. 이때 UAE도 외교관계 수준을 대사급에서 공사급으로 낮췄다. 그러나 이런 사실만으로 UAE의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란과 UAE는 걸프 만을 마주한 이슬람 국가지만,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다르게, 아랍에미리트는 비편향 외교를 표방하는 국가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전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틈새에서 중립 외교를 표방하며 실리를 챙기는 외교 전략을 취해왔다.

2021년 말부터 두 국가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 UAE 왕실의 고위급 인사가 테헤란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이란 대통령은 UAE 측 고위 인사에게 “UAE와의 관계 발전을 환영한다”고 우호적으로 말했고, 이듬해 8월, UAE는 외교 관계를 대사급으로 다시 복원했다.

● UAE와 이란 ‘긴밀한 경제협력’  

UAE와 이란의 경제 친분은 절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외교부가 2017년 3월 펴낸 아랍에미리트 개황을 보면 “이란은 UAE의 주요 교역 파트너이자 최대 재수출 시장으로 양국 간 실질적 경제 협력을 중시”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란은 수입의 68%를 UAE에 의존하고 있다. 해외 지정학리스크 분석매체인 ‘포린 브리프’는UAE의 대 이란 수출액이 2022년 120억달러(약 14조88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UAE의 7개 토후국 중 최대 도시인 두바이(Dubai)는 이란의 대외 교역을 위한 필수 관문이다. 2011년 3월, 당시 주아랍에미리트대사관이 정책정보를 보면, 두바이에는 이란인 소유의 회사가 1만 여 개에 이르며, UAE에 거주하는 이란인 수도 40만 명에 달한다고 기록돼 있다. 그만큼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하다는 반증이다. 

윤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기 불과 이틀 전에도 이란의 ‘마흐디 사파리’(Mahdi Safari) 이란 경제외교부 차관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아부다비(Abu Dhabi)를 방문해 ‘칼리파 샤힌 알 마라르’(Khalifa Shaheen Al-Marar) UAE 국무장관을 만나 양국 간 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란 역시 미국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UAE를 비롯해 주변국과의 화해를 통한 경제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1년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아래 중동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외교·안보 지형에 균열이 초래된 것이다. 미국 없이 중동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마다하지 않는 新협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미국이 빠진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국가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체제로 재편된 것이다.

● 이란과 한국 ‘후일 도모해야’

한국에는 현재 이란 자금 70억 달러가 동결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인 2018년, 미국이 이란 핵합의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계좌가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UAE 파병 아크부대 장병 격려하는 윤석열 대통령]
[UAE 파병 아크부대 장병 격려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런 천문학적 금액은 미국의 2018년 대이란 규제 이전까지 한국과 이란의 교역이 매우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에서 우리 드라마 ‘대장금’은 2006년 방영 당시 9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류 붐에 힘입어 한국산 가전제품과 화장품은 이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만약 이란 핵협상이 다시 타결돼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가 풀린다면, 인구 8900만 명의 이란 시장은 주변국뿐만 아니라 과거 활발한 교역이 있었던 한국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바야흐로 중동 최대의 시장이 열리는 활짝 열리는 셈이다.

70억 달러 동결로 가뜩이나 예민해진 양국 관계가 이번 윤대통령 발언으로 더욱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란이라는 큰 시장, UAE-이란의 복합적 관계를 생각할 때,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선 적’이란 단언적인 발언을 한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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