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갈등 봉합당' 아닌 '이재명 개혁당' 만들겠다" "尹정권 실정에만 기대선 이길 수 없다"

[서울=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양산을)이 "어중간하고 믿을 수 없는 원내대표를 앞세운 ‘갈등 봉합당’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김두관을 앞세운 ‘이재명 개혁당’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김두관 의원은 17일 당내 의원들에게 보낸 개별편지를 통해 "대선 승리를 위해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한 제가, 윤석열과 박진, 이상민의 탄핵을 앞장서서 주장했던 제가, 가장 확실하게 정권과 싸우고 당 대표를 지킬 사람이라고 감히 자신한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 2020년 12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을 당내에서 가장 먼저 외치며 당내 의원들에게 호소한 바 있는데, 당시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다수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엔 '굴욕외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회피로 일관 중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현재 탄핵 상황)에 대한 탄핵을 앞장서 외친 바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양산을)이 "어중간하고 믿을 수 없는 원내대표를 앞세운 ‘갈등 봉합당’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김두관을 앞세운 ‘이재명 개혁당’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양산을)이 "어중간하고 믿을 수 없는 원내대표를 앞세운 ‘갈등 봉합당’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김두관을 앞세운 ‘이재명 개혁당’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김 의원은 "대통령의 연이은 실정으로 국격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민생과 평화가 위협받고 경제가 끝이 없이 추락해도, 이 무도한 검사 정권은 임기 내내 정적 제거와 야당 탄압을 계속할 기세"라며 "정권의 침탈에 맞설 힘 있는 원내대표, 민생 개혁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원내대표가 필요하다. 감히 제가 그 일을 한 번 해보겠다"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국민들은 촛불혁명으로 우리에게 정권을 맡겼고, 20대 총선에서 무려 180석이라는 의석을 몰아주었다"라며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개혁은 미진했고, 부동산은 폭등했으며, 내로남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촛불혁명 5년 만에, 다시 무능력한 극우 검사 정권을 불러들였다"라고 돌아봤다. 

김 의원은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라며 "우리가 잘못해서 역사의 반동을 불러왔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왜 졌는지, 무엇 때문에 실패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라며 당내 혁신을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우리 당원들이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한 당 대표”라며 “이 대표가 민주당의 희망이고,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지킬 최전선에 서 있기에 지지하고 지원해 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대선경선에 참여했다가 이 대표 지지선언을 한 뒤 자진사퇴한 바 있다.

김두관 의원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만 이어진다면 총선은 문제없다는 분들도 계신 거 같다"면서도 "하지만 저들의 실정에 기대는 정치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우리가 잘해서 확실히 점수를 따야 한다. 선 굵은 원내 운영, 성과를 내는 민생으로 국정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했다.

김 의원은 특히 "영남에서 선전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라며 "10여년 전 야권 최초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됐고, 지난 총선에서 과감히 험지 양산으로 가서 승리한 김두관을 원내대표로 만들어, 영남 선전을 위한 지렛대를 만들어 달라"고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며 호소했다.

그는 지난달 '스픽스'와의 인터뷰에서 "판검사들 잘못한 것에 대해서 국회에서 탄핵할 수 있으면 해야 견제가 된다"며 국회에서 주저하고 있는 판검사 탄핵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또 원내대표가 될 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 시도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하겠다)"면서도 "입법부에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써야 한다. 쓰라고 준 권한을 국민을 대신해 쓰는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두관 의원은 특히 "영남에서 선전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라며 "10여년 전 야권 최초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지난 총선에서 과감히 험지 양산으로 가서 승리한 김두관을 원내대표로 만들어, 영남 선전을 위한 지렛대를 만들어 주시라"고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며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두관 의원은 특히 "영남에서 선전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라며 "10여년 전 야권 최초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지난 총선에서 과감히 험지 양산으로 가서 승리한 김두관을 원내대표로 만들어, 영남 선전을 위한 지렛대를 만들어 주시라"고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며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의원은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 선거가 의원들만의 참여로 한정되는 만큼,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김 의원으로선 다소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새 원내대표를 오는 28일 의원총회에서 선출한다. 후보 등록은 18~19일이며, 선관위 주관 후보자 토론회를 한 차례 개최하고 정견 발표는 선거 당일에 하기로 했다.

김 의원 외 출마 예상자로는 홍익표·박광온·이원욱 의원 등이 예상되는데, 이들 셋은 이재명 대표와는 결을 달리하는 이들로 꼽힌다.

지역주의 깨기 시도, 그가 '리틀 노무현'으로도 불렸던 이유

김 의원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재야단체인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로 일하던 중 직선제 개헌투쟁 집회를 주도하다 투옥됐다.

그는 출감 후 고향인 남해군으로 돌아와 1988년 13대 총선에 민중당 후보(경남 남해·하동군)에 출마했다가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그 직후 서른의 나이에 고향마을 이장을 맡았다.

김 의원은 또 1990년 남해군에서 지역신문인 '남해신문'을 창간하는 데 앞장섰으며, 해당 신문의 발행·편집인을 맡았었다. 당시 남해신문은 군민이 신문사 주주가 되는 방식(1주당 5,000원)으로 공모해 창간, 외부로부터 오는 간섭을 차단했다. 그는 발로 뛰면서 신문을 직접 주민들에게 배달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1995년 지방선거에 남해군수(무소속 후보)로 출마, 여당(당시 민주자유당) 후보를 누르고 첫 민선 군수로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만 36세)이었는데 현재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또 이장 출신 군수라는 점도 이례적이다. 

김 의원은 당시 남해군수로 취임한 뒤 군청과 지역신문과의 유착관계를 끊는 파격적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그는 ▲기자들에게 주는 홍보사례비 금지 ▲군 예산에서의 신문 구입항목 삭제 ▲군청 내 기자실 폐쇄 등 세 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기자실 폐쇄 조치의 경우 당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던 파격적 조치이며, 지금 상황에서도 보기 힘들다. 

당시 조치로 김 의원은 지역언론들에게 '융단폭격'을 맞았으나 그의 과감한 결정은 옳았음이 증명됐다. 그는 1998년 지방선거에서도 남해군수 재선에 성공했다.

김 의원은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할 계획이었으나,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했다가 큰 차이로 낙선했다. 당시엔 지금보다 지역주의의 벽이 더욱 높았던 때다.

김두관 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았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파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두관 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았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파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두관 의원은 이 때의 인연으로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았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파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시 장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미군 사격장 난입 시위 건으로 국회로부터 '해임건의안' 통보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김 의원은 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18대 총선(경남 남해·하동군)에서도 접전 끝에 낙선했다. 또 2006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는 등 지역주의에 막혀 4번 연속 낙선이라는 아픔을 겪는다.

김두관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야권 단일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 이달곤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 그는 민주당에 복당했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그는 2012년 7월 18대 대선 출마선언을 하며 민주통합당 대선경선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퇴하지 않아도 될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는 흑역사를 남겼다. 당내 경선에서 3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결국 야인으로 돌아갔다. 

김 의원은 경남지사에서 사퇴한지 2년 뒤인 2014년 7월 재보궐선거 당시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경기 김포시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김포시갑 지역구)에선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4년 뒤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기존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고 경남 양산시을 지역구에 출마해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바 있다.

지난 대선 당시엔 민주당 대선경선에 참여했다가 이재명 대표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사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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