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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늙은이의 노래
  •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 승인 2018.10.10 08:09
  • 수정 2018.10.1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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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의 노래

참전계경(參佺戒經)》제119사(事)는 <후박>입니다. 후박(厚薄)은 많고 넉넉함과 적고 모자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후(厚)는 지나치지 않은 것이고, 박(薄)은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후박이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중도(中道)를 나타낸 말이 아닌가요? 불가(佛家)의 사상적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중도(中道)입니다.

천지에는 사계절의 질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일생에 시기(時期)가 있습니다. 천지가 그 질서를 어기지 아니하므로 만물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거두는 순서를 갖게 되는 것같이 사람도 그 시기를 잃지 아니하여야 일생의 생활과 생사거래(生死去來)에 노예가 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생의 순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년기(老年期)에는 세상의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다 놓고, 세상의 이치를 관조(觀照)하는 방법을 단련시키는 것도 훌륭한 후박이고 중도가 아닐까요? 이것이 인생에 시기를 잃지 않고,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라 후박이고 중도인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 갈수록 고고(孤高)하고 청결(淸潔)한 품격(品格)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후박과 중도를 망각하고 제멋대로의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천격(賤格)입니다. 늙은이는 ‘하나’를 보며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것이 수행(修行)입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나이가 들면서 몸도 망가지며 병들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또 나이 들어가는 만큼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청춘의 열정이 줄어드는 만큼 점점 운신(運身)의 폭(幅)도 좁아지고, 말도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버거운 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는 있으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족함을 대신하기 위해 늙은이다운 품격(品格)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품격이 바로 곱게 늙어가는 후박이 아닐까요?

곱게 늙는다는 건 외모가 아니라 품격입니다. 아무리 가꾼다고 해도 늙으면 백발과 주름이 생기고 피부는 거칠어지며, 기운도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도 빠져 잘 씹지도 못하지요. 하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품격을 가다듬으며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노인의 품격을 기르는 <늙은이의 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도를 행하면 말과 행동과 인품에서 풍기는 것이 향기로워 질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 휴양 기에 당하여는 생사에 대한 일과 정신통일이 가장 크고 긴요한 일입니다.

<늙은이의 도>

첫째, 안도(眼道)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기어이 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이도(耳道)입니다.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을 기어이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무관사(無關事)의 도입니다.

설사 보이고 들리는 일일지라도 나에게 관계가 없는 일은 기어이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대우(待遇)의 도입니다.

의식(衣食) 용도를 자녀나 책임자에게 맡긴 후에는 대우의 후박(厚薄)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 망각(忘却)의 도입니다.

젊은 시절에 지내던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왕년의 나를 잊는 것입니다.

여섯째, 착심(着心)의 도입니다.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있는 일은 미리 처결하여 착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째, 용서(容恕)의 도입니다.

과거나 현재에 원망스럽고 섭섭한 일이 있으면 다 용서하고 잊는 것입니다.

여덟째, 시비(是非)의 도입니다.

과거에 대한 일로 시비에 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홉째, 수양(修養)의 도입니다.

염불과 좌선, 기도를 부지런히 하여 해탈(解脫)의 법력을 얻는 것입니다.

열째, 무시선 무 처 선의 도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데에는 때도 없고 곳도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시선 무 처선(無時禪 無處禪)’이지요. 이 공부법을 끊임없이 닦아 가면 마침내 해탈과 열반 락(涅槃樂)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한량이 없고, 착심도 한계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을 착심으로 하면 그 착심이 한이 없고, 해탈을 하면 어떠한 순역경계(順逆境界)에도 괴로움과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 ‘늙은이의 노래’도 모르고 이 나이에 더 재물을 끌어 모으면 가는 곳이 어디일까요? 늙은이는 노인답게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 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0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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