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이하석 이성복 송찬호 장정일 시인이 드나들던 대구문학의 산실, 시인다방 이야기(2)

1980년대 대구문학의 산실 시인다방. 벽면에는 한옥 같이 격자형 창문이 있었고, 문학서적이 빽빽히 꽂혀 있는 서가와 거칠게 만들어진 나무식탁과 의자. 검은색과 회색빛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시심(詩心)이 꽃피었다.
1980년대 대구문학의 산실 시인다방. 벽면에는 한옥 같이 격자형 창문이 있었고, 문학서적이 빽빽히 꽂혀 있는 서가와 거칠게 만들어진 나무식탁과 의자. 검은색과 회색빛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시심(詩心)이 꽃피었다. / ⓒ 박상봉

나는 1980년대 봉산동과 문화동에서 시인다방을 운영했다. 이 다방은 이상의 ‘제비다방’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문인들은 물론 화가, 음악가, 철학가, 연극영화인 등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전국 최고의 ‘먹물살롱’을 꿈꿨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인다방에 들어서면 전면에 ‘시인’이라는 글씨가 거꾸로 디자인돼 있었다. 다른 벽면에는 한식집같이 큰 격자형 창문이 있었고 문학서적이 빽빽히 꽂혀 있는 서가와 거칠게 만들어진 나무식탁과 의자. 검은색과 회색빛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심각하게 바둑돌을 놓고 있는 사람들, 이런 진풍경을 보고 되돌아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일단 자리를 틀고 앉은 사람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단골이 되었다.

시인다방에 들어서면 전면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중앙 벽면에는  ‘시인’이라는 글씨가 거꾸로 디자인돼 있었다. 이곳에선 문학행사뿐 아니라 미술, 음악, 연극공연, 철학과 종교 세미나까지 열리는 종합예술 문화공간이었다. 사진은 전통음악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 ⓒ 박상봉
시인다방에 들어서면 전면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중앙 벽면에는 ‘시인’이라는 글씨가 거꾸로 디자인돼 있었다. 이곳에선 문학행사뿐 아니라 미술, 음악, 연극공연, 철학과 종교 세미나까지 열리는 종합예술 문화공간이었다. 사진은 전통음악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 ⓒ 박상봉

세계적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조감독을 맡은 영화인 강충구 감독이 문화동 시인다방을 인테리어 할 때 총 감독을 맡았다.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젊은 스님으로 출연했던 신원섭은 당시 미술학도였는데 다른 미술학도 후배를 데리고 와서 책상과 의자를 만들고 실내 디자인도 하고 페인트 칠도 하게 했다.

시인다방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가 이어졌는데 강현국 시인을 필두로 이하석 박해수 이성복 김용락 장옥관 송재학 엄원태 서정윤 안도현 등등 대구에서 내노라 하는 시인들은 다 한번씩 이 자리를 거쳐갔다. 중국의 이상각 시인도 시인다방의 ‘시인과 독자의 만남’을 통해서 국내 독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러나 처음에는 ‘시인다방’을 개점하였으나 며칠이 지나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다. ‘시인’이라고 쓰인 간판 하나 입구에 딸랑 걸어놓고 커피집이라든지 다방이라는 수식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손님이 들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것은 장사 쪽 보다는 귀족백수(?) 노릇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내가 스스로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얼마동안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클로바 타자기로 시를 쓰기도 하고 친구들이 오면 바둑도 두고 문학 이야기도 하면서 입이 심심하면 알콜 램프에 불을 붙여 사이폰으로 향기 좋은 원두커피를 뽑아 마셨다.

그러나 정작 가게를 내어놓고 보니 매달 25만원씩 월세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됐다. 처음 한 달은 또 이리저리 돈을 빌려서 메꾸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집에서 빌린 보증금마저 거덜 낼 것 같아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커피 값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하루에 고작 10명 정도. 커피 한잔에 5백원을 받았을 때이므로 쉬는 날 없이 한달 꼬박 문을 열어도 월세를 메꿀 수 없었다.

하루에 커피 20잔 파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점심, 저녁 끼니를 아래층 분식집에서 5백 원짜리 라면으로 떼우곤 했는데 그것마저 아까워서 굶는 날이 더 많았다. 간판도 하나 새로 만들어 걸었다. 밤에 불이 들어오는 형광아크릴 간판에 ‘시인다방’이라고 써놓고 나니 낯선 손님들이 간혹 들리긴 했지만 출입구에서부터 중압감을 주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는 낯선 분위기와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고 잘못 들어왔다는 듯이 황급히 돌아나가기 일쑤였다.

그 어설픈 커피 집에 그래도 부지런히 찾아주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주었던 이하석 시인. 당시 매일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투명한 속』『김씨의 옆얼굴』이라는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었는데 나중에 영남일보 논설실장을 끝으로 기자직을 은퇴했다.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해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우리 낯선사람들』『측백나무울타리』『금요일엔 먼데를 본다』『녹』『것들』『상응』『연애 간(間)』『천둥의 뿌리』 등 꾸준히 시집을 내더니 도천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김광협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문단의 좌장이 되었다.

또 쌀 살돈, 책 살돈, 씨디 살돈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내 궁핍한 주머니를 심심찮게 털어가던 장정일. 나도 먹고 살기가 빠듯한데 하루가 멀다 하고 '천원만, 이천원만' 하고 손을 내밀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장정일은 그 이후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가장 연소한 김수영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으며, 소설가로 변신하여 수많은 문제작을 내어놓았다. 그의 소설은 영화화 되면서 더 한층 유명해졌다. 엉덩이가 이쁜 여자 정선경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아담이 눈 뜰 때』, 신세대적인 독특한 문화와 특이한 화법으로 유명해진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등이 영화화되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1996년 가학섹스 동성애 그룹섹스 등 충격적인 성묘사를 담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파란을 일으켰고, 1999년에는 『보트하우스』를 내놓았다. 『보트하우스』는 작가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용했던 타자기를 나중에 되찾기 위해서 방황하는 것이 내용이다. 그 타자기와 장정일과 나 사이에 얽힌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장정일이 ‘시인다방’으로 나를 찾아와서 쌀값이 떨어졌다면서 2만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 그동안 심심찮게 꾸어 간 돈이 적지 않은 터라 그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타자기를 내게 억지로 맡겼다. 전당포도 아닌데 타자기를 저당 잡을 이유가 없다고 나는 돈은 아무 때나 형편되면 갚으라고 그날 매상에서 반을 잘라 2만원을 손에 쥐어줬는데 기어이 타자기를 맡기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생활양식은 마치 자신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언제나 도망중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다방’은 화제가 된 영화들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시인다방의 그 어설펐던 인테리어를 돈 한푼 받지 않고 도맡아서 자기 일처럼 챙겨준 사람들은 나중에 배용균 감독과 함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영화의 주연인 젊은 스님으로 출연했던 신원섭. 조감독을 맡았던 강충구 등이 ‘시인다방’ 역사(役事)의 주인공들이었다.

『영원한 제국』을 쓴 이인화도 있다. 고등학교 문예반 후배였던 그는 대학 재학시절 방학이 되면 대구에 내려와 ‘시인다방’에 죽을 치며 주방을 돕다가 키 작고 못생긴 의대생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고등학교 문예반 선배였던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전 문화부 장관)도 ‘시인다방’에 여러 번 들린 적이 있다. 그 당시 서울에 살면서 소설가로 제법 행세하고 있었는데. 고향에 내려오면 ‘시인다방’에서 이하석 시인 등을 만나 정담을 나누다가 갔다. 그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영화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언젠가는 영화계로 진출할 것이라는 것을 혼자 짐작했었다.

그 밖에도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문인수 시인. 세계의 문학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강』이라는 시집을 낸 구광본 시인. 우리나라 초유의 베스트셀러 시집 『홀로서기』의 시인 서정윤 그리고 문형렬 장옥관 엄원태 송재학 김재진 송찬호 손진은...등등 주옥같은 이름들이 모두 그 당시 ‘시인다방’의 단골손님이자 ‘시인과 독자의 만남’이라는 무대에 섰던 주인공들이다.

시인다방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가 이어졌는데 문형렬 장옥관 엄원태 송재학 김재진 손진은 서정윤 장정일 등  ‘시인과 독자의 만남’  무대에 서고 나면 하나같이 한국문단을 뒤흔드는 유명시인으로 주목받았다.
시인다방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가 이어졌는데 문형렬 장옥관 엄원태 송재학 김재진 김용락 서정윤 장정일 등 시인다방 무대에 서고 나면 하나 같이 한국문단을 뒤흔드는 유명시인으로 주목받았다.  사진은 그 당시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용 팜플렛/ ⓒ 박상봉

‘시인과 독자의 만남’은 매우 독특한 행사였다. 지금이야 북콘서트 등의 형태로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행사가 다반사로 열리지만 30년 전에는 시인과 독자가 가깝게 만나 소통하는 자리가 드물었다. 시인다방의 ‘시인과 독자의 만남’은 한 주일 건너 금요일마다 마련되어 무려 3년간 지속되었다.

특히 대구 시인들 사이에는 ‘시인과 독자의 만남’ 무대에 서고나면 하나 같이 한국문단을 뒤흔드는 유명시인으로 주목받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서정윤 시인은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시인이었으나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를 하고나서 10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초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세를 떨쳤다.  문형렬 장옥관 엄원태 송재학 김재진 김용락 장정일 시인도 ‘시인과 독자의 만남’ 무대에 서고 나서 유명시인으로 급성장했다.

그 옛날의 ‘시인다방’이 다시 부활한다. 나는 30년 전, 추억 속의 ‘시인다방’을 다시 소환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새로운 ‘시인다방’의 이름은 ‘30년전 시인다방’이다. 이 다방은 공간은 없으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을 아우르고,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래형 문학다방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그리고 사물인터넷 이 세 분야와 문학과 시가 융합이 되면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는지? 기대하시라! 30년전 시인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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