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아버지의 애인

아버지의 애인

‘오마이뉴스’에서 공모한 강미애님의 글에 ‘아버지의 애인’아라는 글이 있습니다. 과연 이런 부덕(婦德)을 갖춘 여인이 지금도 있을까요? 꼭 저의 아내 사랑초 정타원이 연상되어 죽기 전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제가 자라던 1970~90년대는 새마을운동, 녹색운동, 백색운동 등으로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역사의 격동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여섯 살 되던 해에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제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바르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요절한 아버지의 짧은 삶 속에서도 부부 간의 신뢰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살았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왜 재혼을 안 하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네 아버지보다 더 멋있는 남자를 내 평생에 만난 적이 없었어!” 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밤마다 어머니를 찾아와 사랑을 나누고 가셨습니다. 그 이유로 어머니는 심신이 쇠약해져서 급기야 할머니가 원불교교당에 가서 ‘특별 천도 재(薦度齋)’를 지내고서야 아버지의 영혼을 멀리 구천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셨던 1960년대에는 한국전쟁을 치른 직후라 그런지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시에 진주에 있는 한전(韓電)을 다니셨습니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어머니께서 점심값을 드렸는데도, 거지들이 찾아와 구걸하면 점심값을 모두 주고 본인은 굶고 집에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하네요.

아버지는 그렇게 짧지만 멋있는 삶의 흔적을 남기고 35살의 나이에 세상을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어느 날 가족 앨범을 뒤적이는 중에 우리 어머니 모습은 분명히 아닌데 아버지와 다정히 강에서 보트의 노를 저으며 사진을 찍은 여인을 봤습니다. 어머니께 그 여인의 정체를 물어도 묵묵부답 하시더니 어느 날 말문을 여셨네요.

그 여인은 아버지의 애인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 여인을 만나러 다녔고,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를 위하여 옷을 다림질하고 손질하여 멋있게 입혀 내보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 여인을 만나러 간 날에 어머니는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아버지가 환한 표정으로 “여보 나 돌아왔소!” 어머니는 놀란 나머지 “아니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오세요?” “당신 얼굴이 떠올라서 그 여인을 만났지만 진주 남강 바람만 쐬고 돌아왔네요.”

제가 어머니께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간다는데 옷까지 다려서 입혀 드리고, 정말 화가 안 나셨어요?”라고 여쭈었지요. 어머니께서는 “왜 화가 안 나겠어?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시대에도 중매가 아니라 연애해서 결혼했기에 살아가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지. ‘부부가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 와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어.”

그 이후에 아버지는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지요. 그리고 아내가 다림질하여 입혀주는 멋진 옷을 입고 애인을 만나러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른 여인과 데이트를 즐기면서도 아내와의 약속과 의리를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아비를 믿고 섬기며 자신보다 지아비 마음을 더 이해하려고 했기에, 두 분의 사랑은 믿음으로 지켜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오남매를 두고 지아비를 잃은 어머니는 아직도 낡은 사진첩에 ‘아버지의 애인’ 사진을 고이 간직하며 아버지의 추억을 대신 안고 살아가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진정 사랑한 애인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을까요? 어머니는 현재 팔순의 나이로 젊은 날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젊은 날에 바람 한 번 안 피운 사람 있을까요? 아무리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운다 해도 그걸 모를 아내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겠지요. 그걸 알고 짜증을 내고 앙탈을 부리면 아마 모닥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을 것입니다.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했습니다. 어찌 오늘의 행복과 사랑이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아내의 부덕이 아니었을까요.

부덕이란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부녀자로서 지녀야 할 어질고 너그러운 덕행(德行)을 말합니다. 그 여자가 칭찬받을 수 있는 ‘네 가지의 부덕’이 <익지서(益智書)>에 있습니다.

첫째는 부덕(婦德)입니다.

부덕이란 총명함이 뛰어나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개가 있고, 분수를 지켜 몸을 정돈하여 몸가짐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알며, 행동을 법도에 맞게 하는 것이 곧 부덕이지요.

둘째, 부용(婦容)입니다.

부용이란 얼굴이 아름답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티끌과 때를 씻고 빨아 의복을 신선하고 깨끗하게 하며, 몸과 마음에 더러움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언(婦言)입니다.

부언이란 말솜씨만 뛰어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말을 가려서하고, 예(禮)가 아닌 말은 하지 아니하며, 말을 하여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부공(婦工)입니다.

부공이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쌈을 잘하고, 술 빚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손님을 잘 받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네 가지 부덕’을 갖춘 아내와 평생을 해로(偕老)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만약 이런 아내가 없었다면, 제 어찌 지금과 같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누릴 수 있겠는지요?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그리고 그간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빕니다, 부디 용서를 하시지요! 여보(如寶)!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9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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