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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타원(圍城打援), 성을 포위하여 적의 지원군을 무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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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타원(圍城打援), 성을 포위하여 적의 지원군을 무찌른다.
[고전소통]
  • 이정랑 (논설위원, 중국고전 평론)
  • 승인 2020.12.07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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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중국 혁명전쟁의 전략 문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전투의 실행에는 많은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정찰, 판단, 결심 등 강한 것을 피하고 약한 것을 공격하는 것, 성을 포위하여 구원하러 온 적을 공격하는 것, 가상 공격, 방공, 여러 적 사이에 끼었을 때 정예병을 비축할 필요성 등등이 있을 수 있다.

이 책략은 일부 병력으로 성이나 요새 등을 지키는 적을 포위함으로써 다른 곳의 적이 구원에 나서도록 유인한 다음, 주력군을 집중시켜 구원에 나선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이 계략은 손자의 ‘공기필구(攻其必救)’라는 전략 사상을 구체적으로 활용한 것이다.(공기필구 참조) 손자병법은 허실편에서 “따라서 내 쪽에서 전투를 원하면 적이 비록 보루를 높이 쌓고 참호를 깊이 파고 지키면서 싸움을 피하더라도 더불어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이는 내 쪽에서 적이 반드시 구원하러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한시대인 29년 10월, 광무제 유수는 경감(耿弇)에게 동쪽의 장보(張步)를 공격하게 했다. 장보는 대장군 거비읍(車費邑)을 역하(歷下-지금의 산동성 역성현 서남쪽)에 주둔케 했다. 그리고 비읍의 동생 비감(費敢)은 거리(巨里-지금의 역성현 동쪽)를 지키게 했다. 경감은 적을 움직이게 만들려고 일부러 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갖추게 한 다음, 3일 이내에 거리로 진격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 예기를 들은 비읍은 몸소 군대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가, 도중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감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다.

손빈의 ‘위위구조‘란 전략도 이런 전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위구조 참조)

『자치통감』 「위기(魏紀)」에 기록된 238년 사마의가 요동을 평정하기 위한 전투에서 양평을 포위하여 공손연을 구원에 나서도록 끌어낸 것도 이 계책의 활용이었다.

현대적 조건 아래서 새로운 정찰 기술이 널리 응용되어 전투의 ‘투명도’가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이 계략은 간파당하기가, 훨씬 쉬어졌다. 따라서 이 전법이 새롭게 전쟁에 활용되려면 더욱 참신한 ‘시형법’과 위장 수단이 필요한바 군사 전문가들은 좀 더 깊은 탐색과 연구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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