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
어느 모임에 나갔더니 김학의 사건과 버닝썬 사건 중, 어느 쪽이 더 크냐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둘 다 오십보백보 같은데 말입니다. 제발 어느 곳에 가던지 이 흑백논리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성향과 사상이 각각인데 왜 이런 일로 얼굴을 붉히는지 모르겠네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는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좀 낫고 못한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면 서로 어슷비슷함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요?

《맹자(孟子)》<양혜왕 편>에 나오는 이 고사 성어는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왔을 때, 양혜왕이 어떻게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맹자가 양혜왕에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맹자는 나라의 부강에 대한 왕의 관심을 은근히 질책하며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병사 중에 한 병사는 100보를 도망가고, 또 한 병사는 50보를 도망갔는데, 50보를 도망간 병사가 100보를 도망간 병사를 겁이 많다고 비웃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양혜왕이 도망간 두 병사는 50보나 100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자, 맹자는 모든 왕들이 부국강병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망한 병사들과 같으니, 오로지 왕은 인의로만 정치를 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어제 어느 TV방송에서 김학의 사건을 다룬 푸로를 보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엄청난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쥐와 야합한 고양이’ 가운데, 버닝썬 사건 보다 김학의 사건이 더 큰 파문이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버닝 썬은 경찰과의 유착입니다. 그리고 김학의 사건은 검찰권력과 건설업자 윤종천과의 과도한 유착관계인 것 같습니다. 과거 ‘버닝썬’의 관할 부서인 강남경찰서에서는 윤모 총경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대기발령 상태에 있고, 김학의 전 차관은 한 밤중에 해외로 도피 하려다가 공항에서 잡혀 재수사에 돌입했습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현직 경찰관이 직접 주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습니다. 모 경감은 화성동부경찰서에서 성매매 단속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 질서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직접 성매매 업소를 차려 운영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만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업소 운영의 전면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한 중국동포를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운영했다고 하네요. 그는 또 다른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B 씨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번 주 무슨 요일에 단속이 뜨니 주의하라’는 등의 단속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이 아닌가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작품 중에『고양이』란 제목의 장편 우화시(寓話詩)가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온갖 못된 짓을 해서 주인의 근심이 가득한데, 한술 더 떠서 이 고양이가 쥐들과 야합하여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이지요.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왜 쥐와 야합을 했을까요? 이 시에서는「쥐들은 훔친 물건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닌다./ 이로부터 쥐들은 꺼릴 것 없어/ 들락날락 껄껄대며 수염을 흔든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쥐들이 고양이에게 뇌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쥐들과 한통속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쥐들이 도둑질을 개업할 때 포도군관에게 ‘신고식’을 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은 현실의 생태계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왜 이런 기상천외의 발상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 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도둑과 도둑 잡는 관리의 결탁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민심서(牧民心書)》「이전6조(吏典六條)」<어중(馭衆)>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무릇 포도군관(捕盜軍官)은 경향(京鄕)을 막론하고 모두 큰 도적이다. 도적과 내통하여 그 장물(臟物)을 나누어 먹고, 도적을 풀어 도적질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공하며, 수령이 도적을 잡으려고 하면 미리 기밀을 누설시켜 도적으로 하여금 멀리 달아나게 하고, 수령이 도적을 처형하려고 하면 비밀히 옥졸(獄卒)을 사주하여 옥졸로 하여금 도적을 고의로 놓치게 하니, 그 천만가지 죄악을 다 말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포도군관’은 도둑 잡는 임무를 맡은 관리인데 이 포도군관이 도둑과 내통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도둑이 ‘도둑업’을 개업할 때 포도군관에게 ‘신고식’을 해야 하며, 처음 세 번까지는 훔친 장물을 모두 군관에게 바치고, 네 번째부터는 3⦁7제로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이런 일이 다산 시대뿐이겠습니까? 이렇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강남의 유흥업소 ‘버닝썬’ 사태나 김학의 사건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단속하는

고양이나 단속을 받아야할 쥐가 야합하면 세상에 못 할 짓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질서가 바로 잡힐 수 없는 것이지요.

언론 보도에 의하면 마약 밀매, 성관계 동영상 몰래 촬영, 폭력, 미성년자 출입, 뇌물공여 등의 불법행위가 ‘버닝썬’에서 자행되었고, 건설업자의 별장에서 이보다 더한 뇌물과 성 접대 불법이 자행 되었는데도, 경찰과 검찰이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일지라도 단속하는 경찰과 단속받는 유흥업소의 이러한 유착관계는 고양이와 쥐가 야합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 가요? 고양이는 모름지기 고양이의 본분을 지켜 쥐를 잡아야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으면 세상엔 너무도 많은 쥐들이 들끓어 온갖 병균을 옮길 것이 분명합니다.

눈앞의 이해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범상한 사람들은 일생을 산다고 하나 결국 육신 하나 돌보는 데 그치고 맙니다. 공직을 맡은 분들이 고양이와 쥐의 관계와 같은 오십보백보 같은 부끄러운 짓을 멈출 줄 모르니 어찌 답답하지 아니하겠는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3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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