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과 주종
요즘 각종 사고와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김학의 서건도 그렇고 버닌썬 사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제가 사는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에서 터진 지하 열 배수관이 파열 되어 이 지역 일대가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져 살아 별 영향이 없었지만, 저를 염려하신 지인(知人)들이 안부를 물어 오시는 통에 온 종일 전화와 카톡방에 답 글을 쓰느라고 분주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지요.

그 일을 당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터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말(本末)’과 ‘주종(主從)’이 전도(顚倒) 되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일수록 시간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시간 관리를 잘하는 방법은 긴급하면서도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일을 먼저하고 먹기를 뒤에 하는 사람은 군자(君子)요, 그 일을 뒤에 하고 먹기를 먼저 하는 사람은 소인(小人)입니다. 요즈음 매스컴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각종 게이트 사건들이 모두 일과 먹기의 순서를 잘못 이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요?

요즘처럼 밝은 세상에 일을 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알면서도 성급하게 먹고 보자는 부조리 현상 때문에 세상이 온통 각종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가까운 예로 강능 KTX사고에도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권력에 빌붙어 그 구간에 엉터리 공사를 한 결과라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건설허가를 내줄 때 뇌물을 받고 허가를 내주면 업자는 그 뇌물 값을 더 채우려고 자재 값을 줄이려고 나쁘고 싼 것을 써 부실공사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번한 것이지요. 또 정치인들도 선거를 치를 때 과도한 선거비용을 쓰고 그 비용을 채우기 위해 부조리를 행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정신의 세력이 세어서 살림의 범위가 넓고 큽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잘 지치지도 않고 모두 내 일이기 때문에 먹는 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반면에 소인은 정신의 세력이 약하므로 항상 배가 고프고 빨리 지치고 일도 하기 전에 먹을 생각부터 하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천지(天地)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때 대가를 바랐다면 이 세상 만물은 그 도에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가없이 베풀어 주는 천지의 은혜로 우리는 이와 같이 생명을 보존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것을 먹어도 되는 가, 또 나 혼자서 다 먹어도 되는가 한번만 더 생각을 한다면 요즘처럼 날마다 뉴스거리가 되어 일생에 불명예로 헛삶을 산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지위나 권리나 명예나 부가 한번 올라가면 거기에 맛 들려지고 길들여져서 내려오는 것은 괴롭고 죽기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처한 자리에서 항상 내 주위를 살펴보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取捨)하는 습관을 끊임없이 길들이면, 어느 자리에 있든지. 어느 처지에 있든지, 항상 당당하고 떳떳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하만사가 다 ‘본말과 주종’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을 알아서 근본에 힘쓰면 끝도 자연히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끝을 따라 끝에 힘쓰면 근본은 자연 매(寐)하여 지는 것입니다. 주종과 본말 그리고 천지의 순리자연한 도를 알아서 그 도에 순응하고 그대로 그 길을 밟아나가면 먹을 것은 세세생생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 런지요?

고양 백석역에서 인명사고를 낸 난방공사는 열병합발전소 등에서 생산한 열을 아파트 단지와 상업용 건물 등에 공급하기 위해 1985년 설립됐습니다. 그 후, 2010년대 초반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방공사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부으면서 노후한 열수 관(熱水管)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18년 12월4일 발생한 백석역 사고는 노후 관에 대한 사전 점검과 관리 부실이 빚은 인재로 밝혀졌습니다. 난방공사가 관리하는 열수 관 2164㎞ 가운데 20년 이상 된 열수관은 686㎞(32%)에 달합니다. 난방공사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노후 열수 관 교체 등에 예산 546억 원을,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는 3.3배인 1809억 원을 배정했습니다. 이는 매출 구성과는 정반대 아닌가요?

난방공사의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올 1~3분기 매출 1조7218억 원 가운데 열수 등, 공급 매출은 39%인 6743억 원인입니다. 반면 신재생 전기 매출은 0.4%인 67억 원에 불과합니다. 이 사업의 실패원인을 분석하면 일의 본말과 선후 차서를 혼동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방공사의 주된 사업은 그 이름이 지적하는 대로 열수 공급매출입니다. 그리고 종(從)이 재생에너지 사업입니다. 그런데 ‘주’ 보다는 ‘종’에 3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게 되면 주종이 전도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요.

난방공사는 사고가 발생하자 뒤늦게 20년 넘는 노후 관 전 구간(686㎞)에 대해 긴급 점검을 진행했습니다. 전국 203곳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됐습니다. 자체 점검 결과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지역도 16곳에 달합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올해 노후 열수 관 예산 192억인데, 백석역 사고 뒤 ‘내년엔 1000억’으로 증액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은 신규 사업이기 때문에 신규 투자비가 많이 드는 것일 뿐”이라는 난방공사의 변명에 동의 한다고 해도 본말이 전도된 관리 행태는 원초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일의 본말과 선후 차서를 모르면 사업은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근본에 힘써야 끝이 잘 다스려 집니다.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근본은 마음이요, 마음의 근본은 성품(性品)이며, 처세(處世)의 근본은 신용이요, 권리 명예 이욕(利慾) 등은 그 끝입니다.

우리 모든 일에 본말과 선후(先後)를 찾아 준비하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해에 얽매이지 말고, 근본에 힘써야 합니다. 범상(凡常)한 사람들이 일생을 산다고 하나, 결국 육신 하나 돌보는데 그치고, 근본 되는 정신을 돌볼 줄 모릅니다. 이 어찌 답답한 노릇이 아닐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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