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이낙연, 이희호 여사 추모

[안데레사 기자]= 14일 서울 신촌 창천교회에서 열린 고 이희호 여사의 추모예배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희호여사의 마지막길의 현충원 ⓒ 장건섭기자

이날 이희호 여사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 총리는 “한국 현대사 그 격랑의 한복판을 가장 강인하게 헤쳐오신 이희호 여사님을 보내드리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하늘나라로 떠나는 이 여사에게 “그곳에는 고문도 투옥도 없을 것입니다. 납치도, 사형선고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때는 잠시 목이 메 말을 멈추기도 했다.

이어진 조사를 통해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여성 인권에 눈을 떴고 유학을 마치자마자 여성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이 둘 가진 홀아버지(김대중 전 대통령)와 결혼했고,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갔다.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 선고 등 5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었다”며 이 여사의 생을 읊은 뒤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고 남편이 감옥에 있거나 망명할 때에도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고,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고, 우리 국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 절반은 부인의 몫이라 논평했다. 정권교체 절반도 여사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 업적을 만들었다.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다”고도 했다. 그는 “(여사님은) 유언에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여사님의 기도를 받아주시리라 믿는다”며 “남은 우리는 여사님의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강인했지만 동시에 온유했다”고 이 여사를 추억한 뒤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고, 죄는 미워했지만 사람은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 강인함과 온유함은 깊은 신앙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여사님이 믿은 하나님은 기나긴 시련을 주셨지만 끝내는 영광으로 되돌려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여사님!”이라고 부른 뒤 “그곳엔 고문도, 투옥도, 납치도, 사형 선고도 없을 것입니다. 연금도, 망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함께 평안하게 보내십시오.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난과 영광의 한 세기에 여사님께서 계셨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며 조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이 총리의 조사 전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그 격랑의 한복판을 가장 강인하게 헤쳐오신 이희호 여사님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셨습니다. 그러나 여사님은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학시절 여성인권에 눈 뜨셨고 유학 마치자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셨습니다. 평탄하기 어려운 선구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사진: 장건섭기자

여사님은 아이 둘을 가진 홀아버지와 결혼하셨습니다.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가셨습니다. 그것은 길고도 참혹한 고난의 서국이었습니다.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선고 등 다섯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으셨습니다. 가택연금과 해외망명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계시거나 해외망명 중이실 때도 여사님은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고 독려하셨습니다. 훗날 김대중 대통령님이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정치적 진로를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여사님은 그렇게 강인하셨지만 동시에 온유하셨다. 동교동 숙직 비서들의 이부자리 직접 챙기셨습니다. 함께 싸우다 감옥에 끌려간 대학생들에게는 생활비를 쪼개 영치금을 넣어주셨습니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죄는 미워하셨지만 사람은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사님의 강인함과 온유함은 깊은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었음을 압니다.

여사님이 믿으신 하느님은 기나긴 시련을 주셨지만 끝내는 찬란한 영광으로 되돌려주셨습니다. 남편은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셨고 분단사상 최초 남북정상회담 실현. 우리국민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의 절반은 부인 몫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정권교체도 여사님의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인 업적을 남기셨다. 동교동 자택의 부부 문패가 예고했듯 양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익이 증진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및 복지가 본격화했습니다.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습니다.

10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시자 여사님은 남편의 유업을 의연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북한을 두 차례 더 방문하셨으며 장학금을 만드셨습니다. 여사님은 유언에서도 하늘나라에 가 우리 국민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사님의 기도를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남은 우리는 여사님의 유언을 실천해야 합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합니다. 여사님, 그곳에는 고문도 투옥도 없을 것입니다. 납치도, 사형선고도 없을 것입니다. 연금도 망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대통령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십시오. 여사님,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난과 영광의 한 세기, 여사님이 계셨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