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시제불교

가끔 <덕산재(德山齋)>로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불교는 무엇인가’하고 물어옵니다. 불교를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교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말 할 수 있어야 불교를 어느 정도 알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고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하셨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수행정진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삼매(三昧),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경지를 지향합니다. 이를 위해 서가모니 부처님 이래 여러 가지 방법론이 설해져왔으며, 방법과 논설에 따라 종단(宗團), 종파(宗派)가 갈라지고, 또한 수행법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생겨났습니다.

수행자에 따라 누구는 염불(念佛), 주송(呪誦), 혹은 간경(看經), 또는 참선(參禪)과 화두(話頭) 등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심지어 효험이 있다는 명산대찰을 찾아 값비싼 불공을 드리고, 법력이 높은 큰스님을 찾아 친견하며, 3000배니 만일염불기도를 해야 공덕을 받거나 도통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깨친 분은 이렇게 꾸짖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부처님의 진리가 있다. 꾀꼬리가 거기 있지 않느냐? 왜 멀리 가서 더듬으려 하느냐?”고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끌려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무언가 얻으려고 온갖 짓을 하지만 부처님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도 지혜도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가정, 이웃, 사회, 나라에 차별 심을 내지 않고, 불평 · 불만 없이 선행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복과 지혜를 얻는 길인 것입니다. 순간을 염불하더라도 지극정성으로 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극락이요, 자비(慈悲)를 내는 마음 빛이 바로 불성광명(佛性光明)입니다. 우리가 하심(下心)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바로 선행의 출발입니다.

19살 때 장원급제한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이 파주 군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알고 싶어 당시 파주에 있던 고승을 찾아가 질문을 합니다. “스님 군수로서 지표로 삼아야 하는 좌우명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때, 스님은「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고 답합니다.

과거칠불(過去七佛)들이 근본으로 삼았던 게송(偈頌)인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중의 하나인 이 말은 ‘나쁜 일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맹사성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해줄 말은 고작 그것뿐입니까?” 그러나 스님 빙그레 웃으며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에 옮기려면 팔십 노인도 어려운 법입니다”라고 말하며 차를 따랐습니다.

차가 찻잔에 넘치자 맹사성이 바닥이 젖는다고 말하자 스님은 다시 입을 엽니다. “찻잔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지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요. 그러다가 낮은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님은 맹사성에게 말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매사에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맹사성은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과 벼슬에 임하였고, 후에 청렴과 겸손으로 서서히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명재상이 됩니다.

나쁜 일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라는「제악막작 중선봉행」과 맹사성이 깨달은 겸손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한 근본적인 덕목이 아닐 런지요? 어쨌든 악은 짓지 말고 선을 행하여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압니다. 그러나 악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려면 선과 악을 정확하게 분별해야합니다. 선과 악을 정확하게 분별 못하는 상태에서는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 범위 안에서의 선과 악의 구분은 본인이 믿는 종교의 가치 기준으로는 선이라고해도 상대방의 종교의 가치 기준으로는 악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나라의 가치기준으로는 선이라고 해도 상대방 국가의 가치 기준으로는 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국가 간 전쟁이나 종교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시대는 종교와 국가를 초월한 새로운 가치기준이 나와야합니다.

그 가치기준은 자비심을 가진 진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입장에서는 인류는 한 가족입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도리(道理)는 한 울안 한 이치이고. 세상은 한 일터 한 일꾼입니다. 지구에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인류가 모두 한 식구이고, 한 진리이며, 한 일터라는 가치관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사상을 일러 <삼동윤리(三同倫理)>라고 합니다. 만약 이 <삼동윤리>의 가치관이 없이 내 민족과 타 민족이라는 분별된 사고를 너무 강하게 가지고, 내 종교와 타 종교라는 분별된 사고를 너무 강하게 가지며, 네 일터 내 일터를 강하게 나누는 한 이 지구상에 분쟁과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장차 도덕의 부모국이요, 정신의 지도국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전 세계를 이끌고 가는 ‘도덕의 부모국, 정신의 지도국’이 된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군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전 세계의 모든 나라의 국민들을「제악막작 중선봉행」의 대자비심으로 품고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즉,『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繫) 동척사업(同拓事業)』의 실천이 바로 <시제불교>가 아닐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2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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