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서거 14주기' 봉하마을 물들인 노란 물결,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

[서울=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정치인들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대거 집결했고,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봉하마을을 노랗게 물들였다. 이날 ‘노무현재단'이 주관한 추도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렸으며, 추도식의 주제는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다. 해당 문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집필한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따온 문구다.

추도식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와 김진표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총리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모습도 참석했다. 정부 측에선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한덕수 총리가 대표로 참석했다. 참석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정세균 이사장은 이번 추도식 주제인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에 대해 "많은 국민들께서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시는 요즘, 중요한 건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노대통령 말씀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정세균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80년대 깨어있는 시민과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바쳤다. 국민통합을 위해 지역주의에 온몸으로 맞섰다"며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을 위해 특권과 기득권 기회주의적 권력과 당당히 싸웠다. 패배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비켜가지 않았다. 비난이 두려워도 피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결단을 하기도 했다"고 평했다.

정세균 이사장은 "이제 우리가 대통령의 뜻을 이어 이상이란 것은 더디지만, 결국 실현된다는 믿음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겠다"며 "공존의 지혜를 모아 역사의 진보에 함께 해주시라. 굽이쳐 흐를지언정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새로운 노무현이 되어 사람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갑시다"라고 했다.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개혁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이 제가 풀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한다”며 “간절하게 온 정성으로 유업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김진표 의장은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목전의 유불리를 고심하다 이번에도 정치개혁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있다”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권력의 절반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꼭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이기도 했던 한덕수 총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헌신하시던 대통령님을 기억하고 있다"라며 "2008년, 대통령님께서 고별 만찬에서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한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한덕수 총리는 "그 말씀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겠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보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민생에 온기를 더하겠다"며 "자유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소통과 통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의 추도사 발표 때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듯 참가 시민들 사이에서 "내려와" "나가라" 등의 야유가 이어졌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추도사에서 묘역 조성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말한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해보이지만 누추해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이 묘역의 기본 미학으로 삼았다"라고 밝혔다.

유홍준 전 청장은 "마하트마 간디, 호치민, 발터 벤야민 등 세계 유명묘역 30곳을 검토했고 삼국고려조선시대 왕릉도 염두해뒀다"며 "결론 내린 것은 고구려 고인돌에 근거해서 봉분을 너럭바위로 새기고 무덤 위에는 지관스님이 꾸밈없는 글씨체로 쓴 '노무현 대통령' 여섯 글자를 새겼다"고 했다. 

유홍준 전 청장은 "이 묘역 공사에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봉하마을로 내려와 논의했던 그 헌신적인 봉사와 예술가들의 흔쾌한 기증, 그리고 국민성금으로 이루어졌음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께 보고드리는 것이 그분들의 노고에 값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참여정부에서 4년간 문화재청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사후 14년간 노 대통령과 함께 지내고 이제 비로소 청장에서 18년 만에 해임된 기분이다"라고 회고했다. 

추도식 이후 참가자들은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대에 헌화·분향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추도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발걸음을 옮겨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노무현재단에 따르면, 추도식이 열린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추도객은 45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