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큰 병을 앓고 있다. 부조리란 숙환이다. 불공정은 제도화되는 듯하다. 비상식이 심화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은 법치의 근간이다. 불공정과 비상식이 판치면 법치주의가 흔들린다. 법이 사람을 가려가며 적용된다. 성 접대와 향응, 금품을 받아도 무죄다. 범죄자의 불법행위를 도와주고 50억 원을 챙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교권 침해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뇌물·배임·공금횡령 등 수없이 많은 혐의를 받는 인사가 거대 야당 대표를 맡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돈으로 당 대표직을 산 중진 의원은 양심범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1심에서 유죄 판결받은 장관 출신의 한 인사는 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국민 처지에서 보면 상식적이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사진: 윤석열 대통령, 2024년 신년 인사회 발언
사진: 윤석열 대통령, 2024년 신년 인사회 발언

이런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은 그의 취임 일성이었다. “공정과 상식이 바로 선 나라를 국민과 함께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부조리를 척결할 의지를 재확인할 기회도 그의 눈앞에 있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검법 제정의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의 늦장 수사, 부실 수사 때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한 ‘김건희 수사’는 4년 동안이나 진행 중이다. 단 한 차례의 서면조사만 있었다. 이를 바로 잡는 길은 간단하다. 특검법을 수용하면 된다. 대통령 가족도 법 앞에선 성역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정가의 ‘김건희 리스크’도 벗어날 기회이기도 하다. 김건희 여사는 주가조작 외에도 다양한 의혹에 시달려왔다. 학력 위조, 논문 표절, 코바나컨텐츠 대가성 협찬……. 최근 명품 가방 수뢰와 인사개입, 국정 개입 의혹도 추가된다. 이 때문에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의 비선”(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불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말로 하면,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했다면 이 시점에, 이런 비판이 제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공정과 상식 회복

하지만 윤 대통령은 하책을 선택했다. 공명정대를 외면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즉각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예고했다. ‘김건희 지키기’에 나섰다. ‘정쟁용 악법’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렇다. 정쟁에 휘말리면 김건희 여사는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 압수수색과 피의자 소환 같은 수모를 당할 것이다. 최근 불거진 명품백 수수 의혹 조사도 진행될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특검법에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특검의 수사 상황을 매일 중계방송한단다. 늦장 수사, 부실 수사한 검사도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될 게 확실하다. 윤 대통령의 걱정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건희 특검’은 국민의힘에 치명적 악재다. 김건희 특검법 제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도 국민의힘의 위기감은 크다. 여권 일각에서는 101석, 즉 개헌저지선을 지키는 게 목표가 될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총선 승리는 가당치도 않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총선전략과 실행, 능력 모두가 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다. 과감한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기발한 정책 제시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방탄용’이라는 야당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될 것이다. 야당의 허물도 가려줄 것이다. 병역기피, 음주운전, 세금 탈루·성범죄, 부동산투기 전력이 있는 사람을 공천한다고 해도 ‘김건희 특검’에 묻힐 것이다. 심지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야권은 ‘김건희 이슈’로 결집할 것이다. ‘김건희 총선 이슈’는 특검이 실행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굴러간다는 것이다. 김건희 이슈는 이미 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도 ‘내로남불’?

국민의힘은 반전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만만치 않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뭔가 구린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의심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1심 재판 판결문에 김건희 여사의 계좌 3개가 48번이나 주가조작에 이용됐다고 적시되어 있다. 용혜인 의원은 28일 특검법 제안설명에서 김건희 여사와 한 증권사 직원의 녹취록을 공개한 뉴스타파를 인용, “김건희가 단순히 통장 매매 사실을 인지한 것을 넘어 직접 범행에 가담한 정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특검을 통해 비정상적 수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김건희 여사의 ‘유죄’를 속단할 수는 없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 중인 투자자 중 몇몇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도 있다. 여당의 주장처럼 ‘문재인 정권의 검찰에게 탈탈 털린’ 김건희 여사도 특검을 통해 결백을 입증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에게 큰 모험이다. 전쟁이다.

문제는 여론이다. 거부권 행사는 실정법 저촉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정서법에 위촉된다. 김건희 여사 특검에 찬성하는 여론이 70%를 넘는다. 압도적이다. 물론 지지여론 중에, 여당의 주장처럼 ‘김건희 여사에 문제없음’을 특검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다. 특검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사회적 정의는 ‘성역 없는 수사’다. 

즉각적 거부권 행사는 법 위반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회의 입법권 제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입법권 제한은 곧 국민 무시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이 행정부에 이송되면 15일간 입법안을 검토할 시간이 대통령에게 주어진다. 즉각 거부권 행사는 특검법을 검토조차 할 필요 없다는 의미이다. ‘김건희 성역’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고백과 마찬가지다. 국민의 눈에 상식적으로 보일 리가 없다. ‘최고 권력의 비호’를 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야권, ‘김건희 이슈에 좌우로 정렬’

즉각 거부권 행사는 김건희 특검법의 추가 논의 혹은 재론의 퇴로를 막았다. 국민의힘이 ‘김건희 특검법’에 관한 빅딜에 나설 수도 어렵게 됐다. 윤 대통령이 ‘금기’를 헐어줘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주목했다. 한 위원장은 특검법의 독소조항을 지적하면서 “악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당과 의논하겠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물론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철회를 압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고언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총선 국면에서 손을 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합리적인 해결을 원한다는 얘기다. 총선 지휘권을 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의 아바타’로 낙인찍히는 순간 국민의힘은 존망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한 위원장의 정치 전도에도 먹구름이 낄 것이다. 

윤 대통령도 곤경에 빠져있는 마찬가지다. 만일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특검으로 인해 여당이 총선에 지면 그날부터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국정운영과 통치행위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총선은 불과 100여 일 앞두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총선의 블랙홀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불체포 특권 포기와 검찰의 체포 같은 빅이슈가 터진다고 해도 ‘김건희 특검’ 효과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폭발력이 큰 사건이다.

거부권 행사 후 이뤄질 재투표도 불안 요소다. 재의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재석 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한다. 문제는 재의는 기명투표를 하는 입법안과 달리 무기명투표를 한다. 이탈 여지가 그만큼 큰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20명 정도 이탈하면 의결된다. 공천을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의 장악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재의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공천관리위원회 일정을 최대한 늦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론이 윤 대통령의 반전 카드다

지금까지 얘기는 정치공학적 이야기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정치공학은 복잡하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데 정답이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해득실을 따진다고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없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말하는 ‘야비한 야당의 총선전략’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느냐는 윤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취임할 당시 윤 대통령이 만들고 싶었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면 된다. 공정과 상식이 살아 있는 나라다. 

윤 대통령은 이미 양곡법, 간호법 그리고 노란봉투법, 방송3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를 중단하라’라는 요구받고 있다. 이들 법안은 국정의 철학과 가치와 관련된 문제다. 야당이 아무리 비난한다고 해도 윤 대통령은 할 말이 있다.

김경은 칼럼니스트
김경은 칼럼니스트

하지만 ‘김건희 특별법’은 다르다. 정치철학과 가치보다 중요한 공정과 상식의 문제다. 범죄 혐의를 받는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를 받으면 된다. 대통령의 가족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니 가족이라면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제척·기피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 재의에 앞서 거부권을 재고하라. 야당과 진지하게 재협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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