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눈을 흘기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웃사이더였다.“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4강만 해내라 히딩크 만세!”등 뒤에서 계속 들려왔다. 저들 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 축구 의 열기 앞에서 하나가 되고 애국자의 충정어린 모습이다. 자신들에게 깊은 상관이 있는 진지한 모습이다.‘암! 나라의 일인데 왜 상관없어! 축구의 8강이나 4강이 그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그런 나라에 산다는 자부심과 명예심일까? 나도 이기면 신이 나며 들뜨게 된다.’우리는 게시판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미아를 찾는 전단지가
갑자기 축구의 함성과 함께 떠오르는 공이 고향 하늘 쪽으로 멀리멀리 날아간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축구공은 저수지 바닥에서 헐떡이고 있는 잉어를 향하였다.‘퍽!!’공은 정확하게 잉어의 눈동자를 맞혔다. 순간 이지러진 잉어의 시신은 산산조각이 났고 축구공도 터진 고무 풍선 마냥 흩어졌다. 가위에 눌린 듯 숨이 막힌다. 몸부림치듯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말러의 음악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TV는 여전히 16강에 대한 환희의 통보와 해석을 하고 있었다…아침에 출근을 하니 오후에 월드컵 경기장의 산보를 간다고 특수교사가 말했다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6회‘영치기 영차.......’돌을 나르는 사람들, 삽으로 흙을 파는 사람들, 자갈을 고르던 조상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수십 년 전에 이 마을에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이 말라 비틀어 질 때였다 그 마을의 지주로서 청상 과부인 의암 부인이 바로 웅덩이를 파는 공사를 벌였다. 이유는 웅덩이를 깊고 넓게 파서 가뭄을 대비하여 물을 저장 하려던 것이었다. 이 때부터 마을은 생명으로 가득 찼고 물속에는 잉어 떼가 생기기 시작 하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웅덩이는 물을 저축지 못할 썩은 웅덩이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5회몇 년 전에 바라보았던 하늘은 푸르고 지극히 드높았다. 이 때 나는 훤칠한 키에 명석한 두뇌를 가졌던 최석의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의 앞에서 나는 괴테가 사모하였던 여인이었다. 그는 그 당시의 속물과는 다른, 가슴 속에 철학이 있었고 여자를 알아보는 기품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괴테의 여자처럼 나를 숭배하듯 하였다. 기품이 있고, 사랑스럽고, 영리한 여자…….나는 그를 젊은 파우스트로 사랑하였다. 그와의 사랑이 무르익을 때 가을의 곡조가 널리 울려 퍼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4회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맹현이 생활하던 특수반이 볕이 잘 드는 2층에서 4층의 북쪽 끝의 교실로 이동하였다. 그 곳은 하루 종일 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그리고 원래 특수반의 자리인 2층의 그 교실에는 월드컵에 관계된 내용을 전시하는 자료실이 되었다. 그 곳의 게시판에는 성공적인 월드컵을 맞이하기 위한 시민정신과 청결, 질서를 강조하는 표어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또한 핸드볼 선수를 육성하던 학교 운동부에 ‘월드 축구부’가 신설되었다. 이러한 캠페인은 대한민국의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3회어수선한 마음으로 나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모습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속히 퇴근하여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퇴근 시간의 한 시간 전이었다. 어디선가 앵무새 같이 반복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남자, 고추, 여자.......”한 학생이 교무실을 산만하게 배회하는 소리였다“너 누구야?”지나가는 교사들마다 물어보았다.“남자, 고추, 여자.......”그 학생은 아무런 생각 없이 투명한 눈만 껌벅일 뿐이다. 스포츠 머리에 얼굴은 검고 잘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2회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자기 성에 갇혀서 편협하게 대하는 것일까! 그녀는 이상한 병의 포로가 되었다. 미움과 질시의 탁한 사람공기가 가슴을 조여왔다. 그런 세월 속에 나는 조직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나타날 때는 좀 허름하고 보통차림으로 나타났었고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그녀를 추켜 세워주는 말을 하였더라면 냉대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난지도는 커다란 쓰레기 매립지로 퇴색하고 서서히 침식하고 있었다. 그 곳의 공기는 또한
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1회2002년 하면 사람들은 월드컵을 떠올린다. 그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외국인 히딩크 감독을 용병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걸었던 그 해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해였다. 아마 지금껏 하늘에 차올렸던 축구공 중에 그 때만큼 스릴 있고, 관중의 환호와 열광을 받은 축구공은 드물 것이다. 또한 난지도가 새롭게 변모하기 시작한 의미 깊은 해이기도하다. 난지도는 천연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던 아름다운 동산이었다. 그러던 그 곳이 언젠가 도시 문명의 현대화로 쓰레기 매립지가 되더니 어느 새 월드컵
당신이 기억하는 여성과학자는 누구인가.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한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고, 영화 ‘밤쉘’(2018)로 유명해진 과학자 헤디 라머(Hedy Lamarr)? 대다수 사람들이 단번에 떠올릴 정도로 대중에게 알려진 여성 과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획기적인 발견으로 우리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남성의 영역’이라고 치부했던 과학계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과학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을 다룬 책 3권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마지막회그 후 나는 새로 집을 알아보고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나의 뒤통수에다 욕설을 퍼부으며 악다구니 쓰는 노파가 보였다. 차 안에 몸을 실은 나는 두 눈을 감았다.‘저건 독사다!’그날 밤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에서 나는 그 노파를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다.‘저런 악종들이 오래 살아서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빨리 병에 걸려 죽어라’“빨리 죽어라, 악종아……!”그날 밤 나는 살기가 가득하였다. 독한 저주와 부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7회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바깥 공기는 차갑고 밤안개가 깔렸는지 촉촉해 보였다. 밤하늘에 반달이 뜨고 다가오는 정월을 예비하고 있었다. 나는 늘 하던 새벽 독서 습관대로 나의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 때 맞은 편의 거실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미국에 있는 재서에게 천만 원을 보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새벽이라 그런 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도 똑똑히 들려왔다. 아마도 미국에 있는 아들이 달러가 올라서 생활비가 이만저만 쪼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았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6회그날 밤 나는 억울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여아로서 제일 자존심 상하게 하는 라는 조롱을 받자, 아이들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무시하고 놀려 댔는가 정말 속이 상했다. 그냥 천진스런 장난으로 여겼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분통이 터졌다. 그날 밤 나는 은지의 약점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결코 이대로 당 할 수만은 없었다. 이 때 안방에서 어른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가가 어렸을 때부터 손발이 차갑고 동상에 잘 걸리더니 결국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어. 한약방에 가서 몸이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5회나에게 한쪽 집어서 주었다. 우리 집에서는 제사 때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나는 받아서 맛있게 먹으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은지가 부러웠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예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갈 때가 많았다.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강낭콩을 푹 삶아 그 즙에 밀가루를 떼어 만든 콩 수제비를 끓여줄 때는 정말 맛이 있었다. 거기에 먹음직한 열무김치, 멸치조림, 콩장, 콩치구이 등……짜디짠 우리 집 김치와 반찬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자!
내가 낫으로 그 질긴 관목의 잡초를 자르고 있을 때 은지는 따뜻한 방에서 TV를 보고 연속극을 즐기고 의 태연실의 연기를 즐겼고 읍내에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농사철의 바쁜 날에 어머니의 모내기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난 자주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은지는 반장이 되어 선생님의 사랑과 반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은지는 서울로 시집 간 큰 언니가 보내 준 옷으로 공주처럼 예쁘게 치장하여 우리 마을의 멋쟁이였다. 칼라가 넓은 세라복과 초록과 빨강의 물방울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3회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겨우 이렇게 대접한 단 말인가!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를 무시하였다 생각하니 불쾌하고 섭섭하였다. 생활형편이 어렵다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 같으면 성찬은 아니더라도 삼겹살 파티나 닭 도리탕 정도로 간단하지만 먹음직하게 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메마르고 허전한 식사를 마치자 그의 남편이 돌아와서 커피를 마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원한 베란다 쪽으로 옮겨서 화투를 치기 시작하였다.“어렸을 때 너 이것 일등이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2회나는 그의 설교를 청종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언어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 흐르고 있는 듯한 감화된 표정이었다. 그의 언어는 생각의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영원을 사모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을 생래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서일까. 과학문명이 발달하였어도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대한 신념!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의 삶에도 어떤 내부의 불씨처럼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마다 드리는 이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1회가을 햇빛이 한낮 동안 늦가을의 찬란한 정취를 장식하고 지친 듯 기울고 있었다. 서재의 맨 끝 책장 모서리에 사선의 기운 햇빛이 나른하게 머물렀다. 모처럼 흔들의자에 앉으니 휴식과 평안함이 몰려왔다. 잠시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나의 시선은 햇빛이 머문 자주색 가죽표피에 머물렀다. 그것은 소프트라이트처럼 환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듯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의 모서리를 끌어당겼다. 두껍고 견고한 앨범으로 어렸을 때부터 찍은 사진이 정리된 추억의 보고였다.
한애자 단편소설 〖독도 아리랑〗8회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벤치에 앉았다.‘나만 왜 이렇게 속상해하고 울분 하는 것일까. 그래 나라가 어찌되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 노인의 말도 맞아. 당장 나처럼 함께 뜻을 가진 자들이 모인다 면 모를까! 그러나 인터넷을 보면 의 애국 팬들도 많잖아!’그는 애를 써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다짐하였다. 역사학자나 나라의 주요 인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하며 신경을 끄기로 또 다짐한다.‘참 돈키호테같이 특별하게 살아온 것 같아!그래 아까 그 노인의 말처럼 독도가
한애자 단편소설 〖독도 아리랑〗7회“그런디. 언젠가 손녀가 할아버지 독도 땅이 정말 우리 땅 맞아요? 하고 묻더라 고. 아 그래서,“아, 우리 땅이 맞다 ”고 했더니 어째서 우리 땅이냐고 또 묻더 군. 사실 나도 어떻게 해서 독도가 우리 땅인가를 잘 모르거든. 그냥 독도가 우 리 땅이라고 떠들어댔싸니까 그렇게 여기고 있고 우리 땅이기를 바라고만 있는 정도지. 역사적으로 그 내용은 나도 까막눈이네”곁의 풀빵을 맛있게 먹던 노인이 거들었다.“거 일본 놈들 이번 지진 일어난 것 천벌을 받은 거야. 그 놈들이 우리
한애자 단편소설 〖독도 아리랑〗6회마치 선생님이 지금 떠들어대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까 듣기 싫은 듯 하였다. 이런 태도의 학생을 저지하고 나름대로의 교육관을 가지고 교육하는 풍토도 아닌 현실이다. 다 하는 제도가 들어서 선생이 학생의 비위나 맞추어야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학부모에게 무조건 잘 보이도록 그들의 구미에 맞게 움직여야만 하는 교육 현실에 그는 또 한번 압박감을 느낀다.“엄마, 역사 선생은 공부는 안 가르치고 맨날 독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여 정말 짜증나게 해요”“뭐야? 그런 실력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