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그때의 그리움..

지난 8월 16일 대전대학교 복싱장에서 생활 체육 복싱대회에 개최되었다.

난 대전 복싱협회 한정훈 회장의 초청을 받고 K.B.A (사)한국권투협회 김대호 사무국장의 도움으로 무사히 현장에 안착했다.

한정훈 회장은 1962년 6월 조선상고사를 저술한 민족주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이 탄생한 충남 대덕구 출신이다. 대전체고 한국체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한정훈은 현역시절 60회 전국체전 30회 학생선수권 제8회 김명복 배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모스크바올림픽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한 빼어난 성적을 창출 했다.

하지만 한국체대에 진학한 1982년 이후 허영모 란 암초에 막혀 여러 차례 선발전에서 출전 했지만 전국체전에서 3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하는등 태극마크 한번 달지 못한 한을 품고 졸업을 한다. 

김대호 KBA 사무국장 한정훈회장 전승한전무(우측)
김대호 KBA 사무국장 한정훈회장 전승한전무(우측)

1987년 모교인 대전체고 복싱강사로 운명처럼 입성한다. 이후 허영모에 여러 차례 패한 전철을 후학들에게 답습(踏襲)시키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연구를 병행한다.

그리고 신은철 임재환 이란 걸출한 투톱을 탄생시키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한정훈은 이를 발판으로 대전대학과 대전 중구청을 연달아 창단하면서 백종섭 김태규 이경렬 고지수 김왕순 최진우 임현철 등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 복싱 볼모지 충남대전을 복싱의 메카로 반전(反轉)시킨다. 미당 서정주는 자신을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고 말했지만 한정훈 을 키운건 8할이 허영모에 당한 쓰라린 패배였다.

노태현 충남해양수산 국장
노태현 충남해양수산 국장

떡잎이 아무리 좋은 나무도 햇살을 받지 못하면 좋은 나무로 성장할 수 없다.

이런 생리(生理)를 터득한 한정훈은 선수들에게 열정이라는 햇살을 선수들에게 투입 영양분을 공급받은 선수들이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는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였다.

한정훈은 복싱을 지도하면서 이례적으로 육상과 체조 종목을 연구 장점을 순차적(順次的)으로 뽑아 복싱에 접목(接木) 실용화시켜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린다.

난 이 사실을 전해 듣자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체조 국가대표 감독으로 참관한 조성동 선생이 불쑥 생각났다. 이분은 한국체조 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뜀틀의 유옥렬과 여홍철 양학선을 발탁 반석에 올려놓은 체조계의 거목 (巨木)이다.

1997년 나의 서울체고 강사 시절 인연을 맺은 조성동 선생은 나에게 복싱도 체조 종목의 강점을 받아들이면 유연성과 민첩성은 물론 파괴력까지 증폭된 성장을 이룰수 있다고 조언했던 지난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전체고 강사시절 한정훈회장과 김왕순선수.
대전체고 강사시절 한정훈회장과 김왕순선수.

이렇게 타 종목의 장점을 스펀치 처럼 빨아들이면서 선수양성에 매진 화수분처럼 쉼없이 선수들을 배출한 공로를 인정받은 한정훈은 2020년 한국대학복싱협회 부회장을 거쳐 2020년 대전 복싱협회 회장에 선임되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동안 충남복싱의 역사는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엄복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오인석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이해정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엔 박병진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 김재경이 띄엄띄엄 출전할 정도로 전력이 최약체였다.

이런 빈약한 충남대전 복싱은 일거에 쇄신(刷新)시킨 인물이 바로 대전 복싱협회 한정훈 회장이다.

박봉희 회장 노태현 해양수산국장 한정훈회장(우측)
박봉희 회장 노태현 해양수산국장 한정훈회장(우측)

한정훈 회장은 현장에서 복싱인 출신의 귀한 분이라고 말하면서 한분을 정중하게 인사를 시켜준다. 노태현 충청남도 해양수산국장이었다.

1963년 충남 대덕구 출신의 이분은 고교 시절 3년간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염동균 챔프가 대전에서 체육관을 운영할 때 그곳에서 복싱을 수련한 복서 출신이다.

전 프로복싱 제4대 챔피언이자 나의 직장상사였던 염동균은  자신이 1977년 5월 윌프레드 고메즈 와 2차방어전을 끝으로 사실상 복싱을 접고 1979년 대전극장 맞은편에 동균 체육관을 운영할 때 입관한 관원이 노태현 국장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선수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중 전국선수권우승을 차지한 이열우 와 사회에 진출 선망(羨望)받은 자리에 입성한 노태현 국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했다. 

신우영 .지택림 관장 한정훈 회장(우측).
신우영 .지택림 관장 한정훈 회장(우측).

그러면서 염 챔프는 노태현 국장은 망중한(忙中閑)에도 자신이 주최하는 경기에 참관하는 정의(正義)로운 제자라고 말했다.

노태현 국장과 담화를 나누면서 복싱인의 한사람으로 복서 출신이 근자(近者)에 사회적으로 메인스트림 (Mainstream) 위치에 포진된 인물이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가졌다.

과거에도 김기수와 로마올림픽 선발전(웰터급)에서 접전을 펼쳤던 복싱 명문 성북고와 경희대를 거친 김기웅이란 복서가 있었다. 이분은 은퇴후 작곡가로 변신 고종의 손자이며 비운의 의친왕 아들인 이석이 부른 비들기집을 작곡 명성을 얻었다.

1948년 LF급에서 학생선수권과 전국체전 2관왕을 차지한 염보현(고려대)선수가 있었고 이분도 훗날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전남 도대표 선수 생활을 한 권노갑 더불어 민주당 상임고문도 이 분야 에서 노태현 해양수산국장과 더불어 빼 놓을수 없는 분이다. 

이중헌 심판장 오천석심판 한정훈 회장
이중헌 심판장 오천석심판 한정훈 회장

경기장에서 한정훈 회장은 또 한 분을 인사시킨다. 대전대학교 보건 의료 과학대학 김병완 학장이었다.

2009년 한국대학복싱연맹 회장을 역임한 김병완 학장은 2013년까지 4년간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해마다 2천만원 씩 복싱발전을 위해 기금을 헌납하신 분이라 그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시 김병완 회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중책을 맡아 4년간 대학복싱연맹을 이끌면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 많은 복싱인 들의 찬사와 박수를 받았다.

김병완 학장은 2015년 30주년을 맞이한 대전대학 기념관에서 학과 장학금 4천만 원을 기탁 나품 과 베품 을 몸소 실천한 교육자이다. 

조성동 체조 대표팀감독과 체조 올림픽 금.은메달 양학선과 여홍철(우측)
조성동 체조 대표팀감독과 체조 올림픽 금.은메달 양학선과 여홍철(우측)

경기장에서 한정훈 회장은 대전 복싱협회 전승한 전무와 이중헌 심판장 등 음지에서 수고하시는 복싱 관계자들을 하나둘 인사 소개시켰다.

이 가운데는 1983년 나와 함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한국화약체육관에서 동반 합숙 훈련을 한 옛 동료인 오천석 ㈜ 오성토건 대표도 있었다. 오천석(한국체대)은 형제 복서다. 친형인 오인석과 오천석은 한국체대 동문이기도 하다, 오인석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출된 박사(博士) 출신으로 1977년 10월 13일 제8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 1회전에서 북한의 이병욱과 맞대결 판정승을 거둬 기염을 토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LF급 은메달을 획득한 이병욱을 꺽자 박정희 대통령의 축전을 띄울 정도로 복싱 열기가 대단했었다. 

한국 대학 복싱연맹 회장 김병완 교수
한국 대학 복싱연맹 회장 김병완 교수

대전 복싱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한국체대 3회 졸업생 지택림 선배의 모습도 보인다.

1960년 11월 대전 출신의 지택림은 1978년 제59회 전국체전에서 그해 벌어진 세계선수권 준결승전에서 황철순을 꺽으면서 돌풍을 일으킨 곽동성(전북)의 회오리바람을 잠재우면서 판정승 밴텀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복서다.

현역시절 정밀기계(精密機械)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테크닉을 발판으로 섬세한 복싱을 구사한 지택림은 1979년 6월 제9회 대통령배 대회 결승에서 국제대회(킹스컵.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2관왕 이현주를 꺽고 우승을 차지한다.

탄력을 받은 지택림은 그해 8월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선발전에서 제6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최우수복서 출신 진행범 (영산포상고)을 잡고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복서 출신이다.그해 김명복 박사배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지택림은 부상으로 받은 텔레비전을 박형춘 선생의 조언에 따라 상원체육관에 기탁 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는 나에게 영섭아 한정훈이에게 그동안 많은 은혜를 입었다면서 그동안 잊고지냈던 지난날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두 사람은 대전 종합체육관에서 김종태 관장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선후배이자 한국체대 동문이었지만 한때는 의견이나 따위가 서로 배치(背馳)되어 상호간 에 대립각(對立角)을 세운 관계였었다.

주역(周易)에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이란 글귀가 나온다. 두 사람이 마음이 같으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를수 있다는 뜻이다.

호랑이도 단독으로 사냥을 하면 성공확률이 10% 미만이지만 두 마리가 연합 사냥을 하면 성공확률이 무려 80%에 육박한다고 한다. 

한정훈 감독 김병완 대전대학교 김병완교수(우측)
한정훈 감독 김병완 대전대학교 김병완교수(우측)

내가 가장 신뢰하는 복싱후배 신우영 관장의 모습도 보인다. 1966년 대전 출신의 신우영은 대전 동중 시절인 1982년 모스키도급에서 소년체전 금메달을 포함 3관왕을 차지한 복서다.

1983년 대전 체고에 입학 학생선수권대회에서 서정수(운봉공고)를 잡고 코크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그해 전국체전 1회전에서 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은메달 리스트인 진명돌(전북)을 꺽고 준결승에 진출 서정수(인천)와 맞대결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패를 당했다.

신우영과 1승 1패를 기록한 국제대회 5관왕을 달성한 서정수 (홍익대)는 폭팔 적인 파괴력으로 오광수 김용상 변정일 허영모등 역대급 복서들을 차례로 제압한 특급복서였다.

끝으로 베일(Veil)속에 가려진 대전 출신 복서들의 근황을 전달해주기 위해 소중한 자리를 제공한 대전 복싱협회 한정훈 회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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