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챔프의 별명을 딴 '짱구 막걸리'가 나와서 화제다. 지난 주말 장정구 챔프, 박치순 호텔 인트라다 이천 회장과 함께 충북 괴산군에 위치한 '짱구 막걸리' 생산업체 대청주조의 공장을 직접 방문해 견학했다.

권혁봉 대표 장정구챔프 노병후 회장(왼쪽부터)
권혁봉 대표 장정구챔프 노병후 회장(왼쪽부터)

충북 괴산은 근대 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을 저술한 벽초 홍명희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벽초의 선친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순국열사 홍범식 선생이다.

이종필 (주) 포스 빌테크 대표와 박치순 회장(우측)
이종필 (주) 포스 빌테크 대표와 박치순 회장(우측)

목적지에 도착해 대청주조 주갑생 대표, 김상현 이사, 토브 이노베이션 노병후 회장과 권혁봉 대표 등 지인들과 공식적인 시음식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청주조 주갑생 대표(좌측)와 장정구챔프(우측)
대청주조 주갑생 대표(좌측)와 장정구챔프(우측)

대청주조 주갑생 대표는 2016년 제14회 막걸리 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다. 주 대표는 김상현 이사와는 1973년생 막역지우로 이 두 사람과 토브 이노베이션 노병후 회장, 권혁봉 대표가 손을 잡고 '짱구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주역의 중천건 에 '동성상응(同聲相應) 동기상구(同氣相求)'란 글귀가 있다, 같은 소리는 서로 반응하며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마음이 상통하는 사람들이 의기 투합해 앞으로 세계 최초의 초소형 캡술형 산소를 이용해 새로운 '산소 막걸리'를 빚어낼 예정이다. 남다른 생각을 하고 남다른 일을 하면 남다른 성공을 거두리라 믿는다.

김상현이사 권혁봉 주갑생 대표(우측).
김상현이사 권혁봉 주갑생 대표(왼쪽부터).

대청주조 명예회장 장정구 챔프와 필자의 인연도 올 12월 4일이면 40주년을 맞이한다. 83년 12월 4일 그날은 필자가 첫 프로 대뷔전을 치룬 날이었다. 우리 88 체육관소속 선수들이 봉고차를 타고 체육관 입구에 도착할 무렵 장정구 챔프가 시야에 포착됐다. 누군가 창문을 열고 경솔하게 "야! 짱구다 짱구"라고 외쳤다. 

당시 장정구는 83년 9월 10일 헤르만 토레스와 2차방어전을 마치고 치탈라타 (태국) 와 3차방어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당시 봉고차에는 한진흥 수석 사범을 비롯 황동룡 박광구 김의진 박용운 박조운 최연갑 등 88 프로모션 심영자 사단의 핵심 멤버 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발끈한 장 챔프는 차로 다가와 대뜸 "누가 짱구라 했노?"라며 우리를 겁박했다. 유년 시절 산동네 아미동에서 잔뼈가 굵은 그 카리스마 넘치는 장 챔프 한마디에 우리 일행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마디 더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묵사발이 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전운이 살벌하게 감돌았기 때문이다. 그 짧은 10여 초간의 시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던지...

잠시후 장 챔프가 문을 닫으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장 챔프와 필자간 40년 인연의 서곡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장정구 챔프는 오늘날의 김연아, 박태환 선수를뛰어넘는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었던, 그야말로 스포츠계의 우상이었다. 

WBC 라이트 플라이급 장정구 챔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장정구 챔프.

한 세기가 넘는 한국복싱 역사에서 가장 선명한 발자취를 남긴 장정구는 온상에서 곱게 자란 관상용 화초가 아니었다. 밟아도 밟아도 쓰러지지 않는 외롭게 핀 들풀이었다. 장정구는 현역시절 일라리오 사파타. 소트 치탈라다. 헤르만 토레스. 움베르토 곤잘레스. 도카시끼 가쓰오. 무앙차이 키티카셈. 신희섭. 알폰스 로페즈. 정종관, 아마도 우르수아. 이시드로 페레스등 전직 세계 챔피언들과 17차례 진검승부를 펼쳐 13승 4패의 순도 높은 승률을 기록한 복싱 대통령이다.

장정구는 현역시절 리드미컬한 복싱을 구사했다. 복싱에서 리듬이란 강약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래서 장정구 권투는 익사이팅한 매력이 넘친다. 필자가 볼 때 장정구 같은 스펙터클한 재능은 가르쳐서 되는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복싱선수가 될 운명, DNA를 가진 선수가 바로 장정구다.

이날 행사장에서 김상현 대청주조 이사가 '짱구 막걸리'를 시음해보라며 잔을 권했다. 그래서 반 잔을 3회에 걸쳐 천천히 마셔보았다. 은은하게 구수한, 달달한 맛이 마치 전통 탁주에 야쿠르트를 혼합해 마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행사장에서 박치순 회장을 통해 알게 된 이종필 ㈜ 포스빌테크 대표와 인사를 나눴다. 1962년 청주 태생의 이종필 대표는 장정구 챔프의 절친이기도 하다. 그분에게 혹시 청주 서원대 출신의 복싱 국가대표 복싱선수 홍기호를 아느냐고 묻자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고 화답한다. 

인기 개그맨 홍기훈의 사촌 형인 홍기호 선수가 바로 이 고장 충북 괴산 출신의 대표적인 복서다. 괴산으로 출발 하기 전 연락을 했지만 '베트남에 출장 중'이란 문자가 와서 아쉽게도 만남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핸섬한 이목구비에 점잖은 품격을 겸비한 홍기호는 청주사대 1학년에 입학한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LH 급 준결승에서 북한의 이운용과 경기를 펼친 복서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우승자 홍기호(좌측)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우승자 홍기호(좌측)

이 대결에서 홍기호는 초반 열세를 딛고 불도저처럼 상대를 압박,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한차례 다운을 뺏고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그의 남북대결 승리는 박기철 김현호 권현규 등 주력선수들이 북한 선수에게 패한 아픔을 일거에 해소시킨 통쾌한 일전이었다.

1962년 충북 괴산 출신의 홍기호는 1986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레슬링) 안대현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 금메달(수영) 지상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마루운동 금메달 김한솔과 더불어 충북 괴산이 배출한 스포츠 4대 스타 중 한 명이다.

홍기호는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소중했던 사각의 추억들을 빗물 속에 흘려보내고 링을 떠난다. 현재 청주사대(현 서원대) 학생과장으로 근무하는 홍기호는 서원대 강사 시절 조석환 배진석 이옥성 최동식 이성태 강용수 김경수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해 지도력을 검증받은 명장이기도 하다.

박치순 회장 방송인 김미화 장정구챔프(우측)
박치순 회장 방송인 김미화 장정구챔프(우측)

행사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서울을 향해 떠나는 중간 지점인 안성에 이르러 박치순 회장에게 안성과 인접한 용인시 처인구 원 삼면에 위치한 방송인 김미화 마을로 행선지 변경을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박치순 회장은 짱구 막걸리 한 박스를 기념품으로 윤승호 부부에게 전달했다. 윤승호 전 성균관대 스포츠 과학부 교수와 방송인 김미화 부부가 운영하는 호미카페를 처음 찾은 것은 2016년 7월 어느날무덥던 날이었다.

당시 모 신문사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필자가 후배 복서의 소개로 이곳을 처음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윤승호 교수는 2008년 10월 WBA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최현미가 2차방어전을 앞두고 새터민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스폰서가 없어 타이틀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도왔다.

소식을 접한 윤 교수가 아내이자 방송인 김미화 씨에게 조력자 역할을 부탁하면서 복싱과 인연을 맺었다. 결국 두 사람이 부창부수의 실체를 보여주면서 묶여 있던 매듭을 풀었다. 이 부부의 도음으로 풀이 죽어있던 최현미는"옴메 기살어"를 외치며 기사회생, 극적으로 승전보를 울리며 보은했다. 

방송인 김미화 장정구 챔프 윤승호 성대 명예교수 (우측).
방송인 김미화 장정구 챔프 윤승호 성대 명예교수 (우측).

윤승호·김미화 부부는 최요삼이 지난 2007년 성탄절에 벌어진 WBO 플라이급 인터 콘티넨탈 타이틀 1차방어전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에게 판정승을 거둔 직후 실신, 병원에서 입원 수술을 받을 때 수술비 전액을 쾌척하면서 복싱 사랑을 몸소 보여준 전력이 있다.

두 부부가 운영하는 호미카페가 있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은 고려 시대인 1232년 고종 19년 몽골 장군 살리타가 침입했을 때 고려의 승장 김윤후가 전투에서 승리한 대몽항쟁의 격전지로 유명한 장소다. 이 내용은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상세하게 수록돼 있었다.

짱구 막걸리를 음미하는 방송인 김미화씨.
짱구 막걸리를 음미하는 방송인 김미화씨.

3백 평에 달하는 풍광 좋은 카페에서 윤승호 김미화 부부는 짱구 막걸리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다. 느낌을 묻자 담백하고 고소하다는 촌평을 하였다. 윤 교수가 내년 봄에 이곳에 음식점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말하기에 이 카페에서 가까운 복싱들의 모임을 실현해 보겠다고 화답했다.

윤승호 교수는 차분하고 과묵하신 분이다. 개인적으로 필자와 호형호제하는 윤 교수는 2010년 최현미 2013년 신한울 두 여성복서를 수시전형으로 성균관대학에 합격시킨 의로운 분이다. 윤승호 교수의 모교인 성균관대학교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올림픽(런던) 복싱 메달리스트가 탄생한 학교다.

밴텀급에 출전 4강전에서 네덜란드의 반디넬라에게 판정패 동메달을 획득한 한수안 선생이 주인공이다. 그런 관계로 일전에 윤승호 교수와 독대한 필자는 성균관대학 복싱부 창단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 아마복싱 부활을 위해선 성균관대를 비롯 경희대 경남대 원광대 동아대등 해체된 복싱부의 복원이 한국복싱 저변확대에 촉매작용을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2년 서원대 복싱부가 완전 해체가 되자 홍기호 홍성식 이옥성 조석환을 배출하며 전국을 호령하던 충북복싱은 사면초가 진퇴양난에 빠진다. 목표를 잃은 충북 복싱선수들의 수가 30%가 줄어들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전국체전에서 선수들을 돌보는 홍기호 복싱강사(좌측).
전국체전에서 선수들을 돌보는 홍기호 복싱강사(좌측).

이런 도미노(Domino)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선 대학복싱팀을 재창단해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면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동기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국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정구 챔프가 명예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청주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조영섭 복싱전문 칼럼니스트
조영섭 복싱전문 칼럼니스트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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