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처럼 우리를 비추는 이미지 속에는 단순한 외모 이상의 것이 담겨 있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입은 옷, 목소리의 온도, 눈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우리의 성격과 태도를 읽어내지요. 그래서 이미지메이킹은 단순히 ‘꾸미기’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면 이미지와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등 내면적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는 ‘피채희 퍼스널브랜딩 연구소’ 피채희 대표를 여러번 목격한 곳은 갤러리 전시 오픈닝에서다. 바쁜 와중에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한국의 단청은 언제 보아도 단정하다. 오방색이 가지런히 배치된 기둥과 처마는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다. 눈에 띄면서도 겸손하고, 규칙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단청이 입혀지면, 금세 숨결이 깃든 듯 생기가 돌아온다. 나무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장식을 더하려는 의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중국의 단청은 첫눈에 그 위엄이 느껴진다. 붉고 금빛이 강렬하게 어우러져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둥에는 용과 봉황이 꿈틀거리고, 천장에는 구름과 연꽃이 풍성하게 피어난다. 건물 자체보다는 그 위에 얹힌
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형태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손 안에 움켜쥐려고 하면 새어 나가고, 담아두면 또 그릇의 모양을 닮아 버리는, 마치 어떤 고정된 틀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존재 같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함과 가변성이, 물을 가장 명확한 조형의 언어로 만든다. 물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다. 유연한 곡선과 부서지는 표면의 결은 어느 순간을 잘라내도 완성된 하나의 형태가 된다. 햇빛이 수면을 스치면 색은 물의 본래 속성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기 시작한다. 투명하던 물은 빛의 각도에 따
화가 하태임이 작업 30년 만에 첫 에세이집 ‘색채 환상곡’(도서출판 프로방스)을 펴냈다. 빛과 색의 조형미를 넘어, 한 예술가이자 한 여성의 삶과 감정, 그리고 작업의 기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작업의 기원과 내면의 언어를 처음으로 글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이 책은 1999년 첫아이를 낳던 시기, 2000·2010년대의 색채 실험기, 2020년대 작업실의 고요한 기록까지 40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색을 덧입히고 지워온 25년의 예술적 여정이 작업노트와 에세이로 교차하며, ‘색 이전에 존재하던
동네 골목길로 접어드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낯선 탐험길로 들어서는 설레임일까. 어쩌면 죽림칠현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전시장 입구가 이채롭다. 12월31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색죽(色竹)’전을 갖는 권기수 작가의 전시장 풍경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진 시대(3세기) 지식인 7명이 속세의 억압과 예교(禮敎)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과 사유를 추구하며 대나무 숲에서 모였던 데서 붙은 이름이다. 세상은 전쟁으로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권력은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았지만, 사람의 마음까지는 통
어린시절 작가의 집에는 낮에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도, 공기 속에 떠다니는 긴장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문틈이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곤 했다.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는 예고 없는 천둥 같았고, 아무도 웃지 않는 집에서 침묵은 또 다른 소음처럼 울렸다. 스마트했던 아버지가 어느순간부터 도박과 술,가정폭력의 주인공이 되면서 안식처로서의 가정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12월20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이광 작가의 이야기다.“엄마는 아빠가 때리기 시작하면 소리 없이 맞았다. 사람아닌 사물처
나름의 ‘그림 이론’을 펼쳐오고 있는 정수진 작가의 개인전 ‘부도위도(不圖為圖)’가 11일부터 내년 1월10일까지 S2A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수년간 이어온 회화적 탐구를 새로운 단계로 확장하는 자리로, 신작 유화 18점을 선보인다.전시 제목 ‘부도위도’는 ‘그리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뜻이다. 정수진은 현실에서 보이는 형상을 재현하기보다 자신만의 색형(色形) 체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의식의 구조를 가시화한다. 즉, 사물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정, 생각, 무의식, 리듬, 균형 같은 것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특별전 ‘알폰스 무하: 빛과 꿈’이 8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더현대서울 알트원(ALT.1)에서 열린다.이번 전시는 무하트러스트(Mucha Trust)가 소장한 패밀리 컬렉션에서 엄선된 유화 18점을 비롯해, 무하의 상징적인 석판화·드로잉·조각·보석·소품 등 총 143점의 걸작을 선보인다. 특히 체코 국보로 지정된 11작품도 포함하고 있다. 전시 전반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 로 불리던 파리시절에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을 중
오랜 시간 ‘여성의 노동과 부재, 그리고 세대 간 기억의 흐름’을 주제로 천과 실, 금박, 사진, 석고, 아크릴 등의 재료를 활용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의 흔적을 시각화 해 온 오혜련 작가의 개인전 ‘Red Lullaby – 사라진 목소리, 이어지는 노래’가 11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코트에서 열린다. 천과 실, 그리고 사진을 매개로 여성의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드러내는 이번 전시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과 기억의 잔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끊어진 실, 닳은 지문, 닳아진 무릎과 손의 형상을 통해 작가는 ‘엄마
2026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으로 김성호 미술평론가(성신여자대학교 조소학과 초빙교수)가 선임됐다. 김성호 총감독은 지난 20여 년간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큐레이터·평론가·학자로 폭넓은 활동을 이어왔다.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을 기반으로 한 기획 역량을 쌓았으며, 자연환경 예술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잇따라 총감독 및 예술감독을 맡아왔다. 그는 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외에도 2008 창원아시아미술제, 2015 바다미술제, 2016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2018 다카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타샤 튜더(1915-2008)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여 ‘스틸, 타샤 튜더 :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 전이 12월 11일부터 내년 3월15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미술관 기획전으로 타샤 튜더의 예술 세계와 삶의 철학을 한 자리에서 조명한다.타샤 튜더는 23세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으로 데뷔한 이후 ‘마더 구스 (Mother Goose)’와 ‘1은 하나(1 is One)’로 그림책의 노벨상
서로 다른 언어로 빛의 서정을 이야기하는 정서윤(랑랑)과 홍지희 개인전이 11월 29일까지 메타갤러리 라루나에서 동시에 열린다. 정서윤(랑랑) 작가는 ‘BLOSSOM’을 주제로, 홍지희 작가는 ‘Chandel, Chandelier’을 주제로, 서로 다른 물성과 감각으로 빛을 탐구한다. 전통과 현대, 존재와 감성의 경계를 새롭게 확장하는 전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출발한 두 세계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우하며, 빛이 만들어내는 서정과 존재의 결을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정서윤(랑랑)은 한국 전통 소재인 자개를 서양 회화의 조
허윤희(1968년생)작가의 이인성미술상 수상전이 11월 4일부터 내년 2월 22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인간 존재의 근원과 자연의 순환을 탐구하며,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을 결합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는 회화, 드로잉, 조각, 영상 등 24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지난 30여 년간의 예술 여정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작가는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을 주 매체로 삼아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회화적 수행을 이어왔다. 그에게 회화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살아내기의 행위이며, 흔적은 곧 존재의
아라리오갤러리가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쿄토국제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리는 ‘아트콜라보레이션 2025’ (Art Collaboration Kyoto 2025, ACK)에 참가한다. 도쿄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여 온 CON_갤러리가 호스트 갤러리로, 아라리오갤러리는 게스트 갤러리로 초청되어 공동 부스를 구성한다. 이번 ACK 공동부스에서 아라리오갤러리와 CON갤러리는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 미술이 기술과 감각,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미학적 언어를 구축하는 장을 펼쳐보인다.아라리오갤러리는 노상호(b. 1986)와
1980년대 실험미술그룹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토탈미술관은 내년 개관 50 주년을 앞두고 11월 23일까지 전시 ‘난지도·메타-복스 40: 녹아내린 모든 견고함’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80 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과, 당시 주류 미술계 밖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던 두 예술 그룹 ‘난지도’와 ‘메타-복스’의 활동을 오늘의 관점에서 조명한다.‘녹아내린 모든 견고함’이란 전시 제목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에서 비롯된 문장으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견고한 질서가 해체되고 유동적으로 변
“그림 그리는 작업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거기 그 사물(being)이 그 적절한 자리에서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아름다운 대상이 되는 것, 그 대상들 하나 하나가 나의 분신이 되고, 내 잃어버린 꿈의 파편이 된다. 메마른 나무상자, 흰 보자기, 오랜 유물같은 바랜 주전자, 비워진 술병, 그리고 담겨지지 못한 자그마한 것들, 자갈,체리토마토, 레몬, 계란, 바랜 사진....”일상 속 사물을 주제로 한 정물화에 집중했던 구자승 작가의 개인전이 11월 25일까지 선화랑에서 열린다.“어느날 쓸모없이 버려진 나무상자에 술을 채우고 싶었다
이우환 작가의 신작 공간 ‘실렌티움(묵시암)’이 28일부터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내에 자리를 잡았다. 그간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미술관 호수 주변의 ‘옛돌정원’엔 작가의 조각 설치 작품 3점도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상설프로젝트는 작가가 직접 제안했다.실렌티움은 라틴어로 ‘침묵(Silentium)’을, 한국어 명칭인 묵시암(默視庵)은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용한 눈길로 만나는 공간’이라는 컨셉 아래 실내 작품 3점과 야외 설치 1점이 하나로 어우러진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달리는 말 그림으로 유명한 쉬 베이홍(徐悲鴻 1895–1953)은 중국 근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사람이다. 전통 수묵화와 서양 사실주의 기법(서양 해부학을 배워 말의 근육과 동세를 정확하게 표현)을 융합해 그렸다. 쉬 베이홍의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민족의 정신, 강인함, 자유, 재건의 희망을 상징했다. 1930~40년대 일제 침략과 국민 혼란의 시기, 그의 말 그림은 중국인의 자긍심과 의지를 고양하는 매체였다. 후대 많은 화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말 그림은 지금도 중국 회화의 대명사, 중국 정신의 상징물
“세상은 색으로 기억되고, 향기로 그리워진다는 말이 있다. 어린시절 봄날 동네 골목마다 피어 있던 목련과 개나리는 노란색과 흰색보다 따스한 감성으로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그 시절엔 이름조차 몰랐던 꽃들의 향기가, 문득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그리움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색이 되고, 향기가 된다. 강렬한 색으로 처음부터 존재를 각인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며드는 듯 은은하게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간 뒤에도 유독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는 대개 향기
한 시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산울림의 김창훈과 영원한 디바 김완선이 음악이 아닌 미술로 함께 화랑무대에 선다. 아마도 이들은 색을 소리처럼 느끼는 공감각 능력을 화폭에 펼쳐내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음악을 색과 형태로 표현한 추상화 대표 작가 칸딘스키를 연상시킬 정도다. 11월 13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열리는 두 사람의 특별전 ‘Art Beyond Fame’은 이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이번 전시는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이 40년의 시간을 건너 미술로 이어지는 자리다. 1970~80년대 한국 록 음악의 혁신을 이끌었던 산울림의 멤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