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내년 3월4일 더현대서울 알트원
체코 국보지정 작품 11점도 출품돼

자화상
자화상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특별전 알폰스 무하: 빛과 꿈8일부터 내년 34일까지 더현대서울 알트원(ALT.1)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무하트러스트(Mucha Trust)가 소장한 패밀리 컬렉션에서 엄선된 유화 18점을 비롯해, 무하의 상징적인 석판화·드로잉·조각·보석·소품 등 총 143점의 걸작을 선보인다. 특히 체코 국보로 지정된 11작품도 포함하고 있다.

전시 전반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로 불리던 파리시절에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지스몽다’, ‘백일몽’, ‘황도12’, ‘등 무하의 상징적인 석판화와 장식예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대지를 깨우는 봄
대지를 깨우는 봄

후반부에서는 무하가 파리를 떠나 조국 체코로 돌아와 민족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그 정점에 위치한 슬라브 서사시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스무 점의 기념비적 연작으로, 무하 예술의 사명감과 인류애가 응축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예술 속에서 민족주의를 구현한 열정적인 사도로 평가받은 무하는 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추구했다. 그가 평생 지향한 예술과 삶의 조화의 비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세기를 넘어 다시 살아 숨 쉬며, 아름다움과 신념이 공존하는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체코 공화국 남모라비아 지방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Ivančice)에서 태어난 알폰스 무하는, 자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체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20세기 전환기에 근대 디자인의 토대를 마련한 국제적 예술운동 아르누보(Art Nouveau)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백합의 성모
백합의 성모

무하는 1890년대 파리에서 제작한 포스터 작업을 통해 시각 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매혹적인 여성상,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구성을 결합하여, 단순한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강력한 시각 언어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독창적인 양식은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로 불리며 아르누보의 대표적 상징이자 현대 광고예술과 시각문화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슬라비아
슬라비아

# 사라 베르나르와 연극 예술

무하가 파리 시절 전설적인 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1844-1923)를 위해 제작한 첫 포스터가 지스몽다이다. 1895년 새해 첫날, 이 포스터가 파리 전역에 내걸리자 도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성공을 계기로 베르나르는 무하에게 6년간의 전속 계약을 제안했고, 무하는 단순한 디자이너를 넘어 예술감독으로서 의상, 장신구, 무대장치까지 총괄하는 역할까지 맡으며 여섯 점의 추가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들은 사라 베르나르를 불멸의 무대 아이콘으로 확립시켰다.

중세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지스몽다는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의 희곡을 바탕으로 사라 베르나르가 직접 제작·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첫 작품이다. , 베르나르는 주연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무하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희밍의 빛
희밍의 빛

 

#무하 스타일 - 소통의 예술

지스몽다의 경이로운 성공 이후, 무하는 수많은 광고 포스터를 의뢰받기 시작했다. 1896년 파리의 인쇄·출판 업자 F. 샹프누아(F. Champenois)와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파리 시기에 제작된 그의 포스터 대부분은 샹프누아와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바로 이 시기 작품들을 통해 무하는 아르누보의 거장(Master of ArtNouveau)’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1896년부터 1902년까지 파리에서 제작된 광고 포스터와 장식 패널(decorative panels)무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무하는 작품들을 자신의 미학적 이상을 실험하고 구현하는 장()으로 삼았다. 나아가 보편적 시각 언어로서의 그래픽 스타일을 통해, 대중과 더 넓게 소통하고자 했다.

풍성하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무하의 상징적 여성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 은 조제프 바르두 컴퍼니(Joseph Bardou Company)의 담배 종이 욥(JOB)을 광고하는 포스타다. 무하는 욥 모노그램을 배경으로 관능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만들어내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나선형 연기는 장식 효과를 풍부하게 하며, ‘지스몽다포스터 처럼 비잔틴 양식의 장식 요소가 더해져 고급스러운 시각적 분위기를 완성한다.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받은 테두리는 대중을 위한 상업용 포스터임에도 풍요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이 포스터는 무하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확립함과 동시에 장식적 요소와 상업적 디자인을 결합한 그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 1900년 파리 - 아르누보 영광의 이면

19세기 마지막 해에 열린 제5회 파리 만국박람회는 지난 세기의 인류 위대한 성취를 기념하고, 다가오는 20세기를 맞이하는 세계적 축제였다. 58개국이 참가했고, 7개월(415~1112) 동안 4,8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은 이 박람회는 세기의 행사라 불릴 만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대표하는 공식 예술가로서 제국의 3개 전시관 중 하나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시관의 장식과 홍보물 디자인을 맡았다. 또한 파리의 대표 예술가로서 프랑스의 유수 제조사와 협업하고 보석상 조르주 푸케와 함께 박람회 전용 주얼리 컬렉션 전체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무하에게 이 영광의 무대는 역설적으로 유럽 문명의 화려함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의뢰로 오스트리아 전시관 홍보 포스터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시관 장식디자인을 맡았다. 처음에는 이 의뢰에 기뻐했던 무하였지만, 발칸반도로 현장 조사를 떠난 그는 그곳에서 남슬라브인들이 겪는 문화적·정치적 어려움을 직접 목격했다. 제국을 위해 일하는 자신과 달리 동족 슬라브인들이 오스트리아 통치 아래 고통받는 현실은 깊은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이 경험은 무하에게 결정적인 깨달음을 안겼다. 그는 모든 슬라브민족의 기쁨과 슬픔을 담고, 공동체적 유대와 억압에 맞선 투쟁을 그릴 슬라브 서사시의 창작을 자신의 필생 과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1899년 말,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의 구상을 구체화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작품 자화상에는 그가 품었던 장대한 비전과 흔들림 없는 신념이 담겨 있다. ‘슬라브 서사시의 씨앗이 된 이 구상은, 무하가 스스로에게 내린 예술적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꿰뚫듯 깊이 응시하는 눈빛은 미래를 향한 그의 확고한 의지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작품 백합의 성모는 예루살렘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될 교회 장식으로 계획된 작품이다. 1902년에 의뢰받았으나 1905년 알 수 없는 이유로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아내 마루슈카(Maruška)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무하는 작품의 주제를 동정녀 마리아(Virgo purissima)’로 설정하고, 순결의 상징인 백합에 둘러싸인 성모의 영적인 모습을 그렸다. 작품 속, 슬라브 민속 의상을 입은 소녀는 추억을 상징하는 담쟁이덩굴 화관을 들고 있다. 무하는 성모의 비현실적인 형상과 소녀의 강한 실재감을 대비시키면서, 성모를 신비로운 힘으로 빛을 발하여 소녀를 비추는 영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소녀는 그 천상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성모의 긴 베일 자락이 부드럽게 소녀에게 닿으며 축복을 내리고 있다.

#조국을 위하여 - 빛으로 되찾을 조국의 꿈

1904년 봄, 무하는 장기 구상 중이던 대작 슬라브 서사시실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1904년부터 1909년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미국을 방문했고, 이 시기에 시카고 출신의 자선가이자 사업가 찰스 리처드 크레인(CharlesRichard Crane, 1858-1939)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후 슬라브 서사시의 주요 후원자가 된다. 무하는 귀국 이후 체코를 위한 첫 공공 프로젝트였던 프라하 시민회관(Obecní Dům)의 장식 작업을 비롯해, 1차 세계대전 전후 슬라브 세계에 대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을 해나갔다.

무하는 고대에서 중세, 종교 개혁기,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슬라브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준 역사적 장면 20개를 선정했다. 이 중 10점은 체코 역사에서, 나머지 10점은 다른 슬라브 민족의 과거를 소재로 하여 정치, 전쟁, 종교, 철학,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1923, 무하는 러시아 국민이 겪은 참혹한 고통에 대한 예술적 성찰로서 대형 상징화 광야의 여성(Woman in the Wilderness)’을 제작했다. 시베리아의 어두운 설원, 늑대 무리가 다가오는 가운데 홀로 선 여성 농민의 모습을 통해 무하는 러시아 민중이 처한 절망적인 무력감과 깊은 슬픔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희망의 빛 - 인류애를 향한 비전

유럽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 독립한 슬라브 국가들 사이에서 영토 문제가 점차 불거졌고, 1933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가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1938, 무하가 슬라브 서사시를 프라하 시에 기증한 지 10년 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 폴란드, 헝가리로부터 국경 지역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또 다시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에 다무하는 인류를 위한 기념비를 구상하며, ‘이성’, ‘지혜’, ‘사랑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미래를 그려냈다. 작품 희망의 빛 은 그 중에 하나다.

 

인류의 진보는 구불구불 오르내리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과 같다.

마치 온도계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때로는 아주 멀리 추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마침내 더 높은 곳을 향해 솟아오른다.”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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