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정의 할 수 없는 ‘물의 조형성’에서 영감
알고리즘 통해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감각 구축

'포스트 휴먼'시대를  형상화 하는  강영길 작가 .
'포스트 휴먼'시대를  형상화 하는  강영길 작가 .

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형태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손 안에 움켜쥐려고 하면 새어 나가고, 담아두면 또 그릇의 모양을 닮아 버리는, 마치 어떤 고정된 틀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존재 같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함과 가변성이, 물을 가장 명확한 조형의 언어로 만든다. 물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다. 유연한 곡선과 부서지는 표면의 결은 어느 순간을 잘라내도 완성된 하나의 형태가 된다. 햇빛이 수면을 스치면 색은 물의 본래 속성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기 시작한다. 투명하던 물은 빛의 각도에 따라 청록으로, 은빛으로, 때로는 잿빛으로 변모한다. 물이 가진 색은 그 자체가 아니라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물을 본다는 것은 결국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 사이의 끝없는 변화를 함께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영길 작가의 작업의 시작점이 바로 여기다.

물은 투명하지만, 그 투명성은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니다. 물속에 비친 나 자신은 조금 일그러져 있고, 돌멩이는 가까운 듯 멀며, 하늘은 한층 더 푸르게 보인다. 물은 세계를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다만 아주 살짝, 부드럽게 비틀어 보여준다. 그 왜곡은 현실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세계를 다시 한 번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강영길 작가가 물속 인물들의 표정에 집중하는 이유다.

물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부정형성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조형의 본질이 드러난다. 형태를 만들고, 색을 품고, 빛을 껴안고, 움직임을 드러내며, 또 사라지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예술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볼 때 단순히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지고 흘러가며 변해가는 방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영길 작가는 이런 이미지들을 사진에 담아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 색, 질감, 형태를 분석하고 분해한 뒤 알고리즘을 만들고 디지털편집을 가미해 이미지 층위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과정을 넘어, 존재를 구성하는 층위들(육체와 감정, 현실과 가상, 통제와 무의식)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행적 과정이다.

결국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고, 기술을 통해 감각의 한계를 확장하며,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 언어를 구축하는 여정이다.

강영길 작가는 생물학적 인간을 넘어서 기술·유전자·AI·사이보그·네트워크 등의 결합으로 변화한 존재 포스트 휴먼 흐름(Post-Human Drift)’에 주목한다. 기존 인간이라는 범주의 경계가 기능을 잃어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존재가 어떻게 변화하고 표류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인간을 중심에 두어 세상을 이해해왔던 오래된 시선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생물학적·기계적·데이터적 존재들이 뒤섞인 새로운 생태계의 감각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드리프트(Drift)’는 방향을 잃은 방황이 아니라, 고정된 정체성과 목적의 해체가 만들어내는 비결정성의 흐름을 의미한다. 인간 이후의 존재가 하나의 형태로 귀결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유동적이며, 복수적이고, 서로에게 침투하며, 언제나 재구성되는 상태로 남는다. 작가의 작업은 그러한 비완결성의 존재 방식을 기록하는 시도다.

‘Post-Human Drift’는 또한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던 전통적 기준들이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달 속에서 재작성되는 과정을 다룬다. 인간-기계-환경 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감정, 감각, 윤리적 긴장을 시각적 층위로 드러내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분절된 이미지, 변형된 신체, 기계적 패턴과 유기적 질감의 혼재는 이 변화의 흔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작가는 우리가 미래를 정해진 방향이 아니라 열린 흐름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포스트휴먼적 존재는 도착점이 아니라 과정이며,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끝없이 생성되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 ‘Post-Human Drift’는 인간 이후의 풍경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진행 중인 조용한 변이의 감각을 포착해보려는 실험이다. 작가의 작품은 관객에게 당신은 지금 어떤 변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가?”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늘 인간을 확장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확장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범주는 더 이상 견고한 울타리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적·인지적 능력을 모방하고, 생명공학은 유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변형을 허용하며, 우리의 감각과 행동은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의 흐름 속에 스며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포스트 휴먼(Post-Human) 시대에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그 미끄러짐 자체가 바로 드리프트(Drift), 즉 표류다.

포스트 휴먼 드리프트란 단순히 인간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미묘하고 비가시적인 변화정체성의 느린 분해와 재조립, 인간 중심적 사고의 불안정화, 생물학적 경계의 흐릿해짐이 만들어내는 방향 없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보다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붙잡히게 되는 상태다.

표류는 길을 잃은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길이라는 개념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감각에 가깝다. 예전의 인간은 목적, 의지, 주체성을 중심으로 자신을 정의해왔다. 그러나 인간과 비인간기계, 데이터, 생명체, 인프라가 서로 얽혀 새로운 생태계를 이루는 지금, 주체는 더 이상 단일한 중심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스템들의 교차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움직이지만, 스스로 움직인다고 말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환원 불가능한 얽힘속에서 우리는 표류한다.

이 표류는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둔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우주의 기준점으로 생각해왔지만, 포스트 휴먼 드리프트는 그런 중심의 해체를 요구한다. 인간이 더 이상 정점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이 표류의 과정은 인간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재구성한다.

포스트 휴먼 드리프트는 우리가 어디에 도착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기술이 이끄는 가속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종종 미래를 특정한 방향으로 추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변화는 언제나 비선형적이며, 인간·기계·생명·환경이 얽힌 복잡계는 예측 불가능성을 잉태한다. 표류는 이 비예측성을 수용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좌절이 아니라, 규정되지 않은 미래와 함께 사는 법을 탐색하는 행위다.

포스트 휴먼 드리프트 속에서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보다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에 민감해진다. 이 과정은 정적이 아니라 흐름이며, 존재의 안정성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야 비로소 새로움이 태어난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의 조건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끝없이 형성되는 움직임 속에 있다.

우리는 지금 그 흐름의 초입에 서 있다. 인간의 경계를 지키려 하기보다, 변화의 형태를 읽어내고 새로운 윤리와 관계성을 구축해야 한다. 강영길 작가는 포스트 휴먼 드리프트 시대에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존재로 변화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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