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이면에 숨겨진 삶의 기록...12월20일 북콘서트

화가 하태임이 작업 30년 만에 첫 에세이집 ‘색채 환상곡’(도서출판 프로방스)을 펴냈다. 빛과 색의 조형미를 넘어, 한 예술가이자 한 여성의 삶과 감정, 그리고 작업의 기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작업의 기원과 내면의 언어를 처음으로 글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1999년 첫아이를 낳던 시기, 2000·2010년대의 색채 실험기, 2020년대 작업실의 고요한 기록까지 40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색을 덧입히고 지워온 25년의 예술적 여정이 작업노트와 에세이로 교차하며, ‘색 이전에 존재하던 하태임’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안현정 평론가(예술철학박사)는 하태임의 작업을 “눈부신 빛보다 마음에 스며드는 색, 감정의 흔적이자 시간의 물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번 책을 “한 화가의 생이 색으로 번지는 자서전이자, 회화가 감정의 언어로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회화적 기록”이라 평가했다.

출간기념 북콘서트로 열린다. 12월 20일(오후 3시~5시) 교보문고 강남점(드림홀)에서 한석준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작가와의 대화,첼리스트 김영한 공연, 사인회 등이 진행된다.

하태임 작품의 미덕은 우리가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어느새 색의 흐름 속에 잠긴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곡선의 띠들이 화면을 따라 유영하고, 그들은 마치 바람, 음악, 온도처럼 세상에 존재하지만 만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의 은유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하태임의 회화는 이처럼 단색의 덩어리와 기하학적 구성 사이를 오가며, 색채를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호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의 그림은 무엇을 재현하지 않지만, 대신 색 자체가 세계가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하태임의 ‘컬러 밴드’는 단순한 패턴이나 규칙적 장식이 아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줄의 색띠는 여러 층의 색이 누적된 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곡선은 손의 호흡과 시간의 흔적을 따라 미세한 떨림을 품는다. 이 반복적 행위는 어쩌면 예불이나 명상과도 같은 수행적 노동이다. 단색의 선이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낸 흔적은 결과적으로 화면 전체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색의 띠는 정적이지만, 그 층위는 조용한 파동을 만들어내며 관람자에게 시각적 리듬을 경험하게 한다.

색채를 중심에 둔 그의 태도는 색을 감정의 언어로 다루는 오래된 회화 전통과도 연결되지만, 동시에 동시대의 미디어적 감수성과도 자연스럽게 접속한다. 디지털 화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라데이션의 흐름, 디자인과 그래픽의 감각, 부드럽게 전환되는 색의 스펙트럼은 오늘날의 시각적 문화 속에서 이미 일상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하태임은 이러한 색채의 세계를 기계적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의 신체와 붓의 호흡으로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그의 회화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경계, 기계적 매끄러움과 손의 미세한 진동이 병존하는 독특한 공간을 만든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관람자에게 건네는 감각은 부드러운 안정감과 긍정적 에너지이다. 밝고 투명한 색들이 부드럽게 겹치는 그의 화면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온도감을 지니며, 보는 이가 그림에 빠져들 만한 작은 틈을 마련한다. 그 틈에서 우리는 색을 감각한다는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경험을 회복한다. 이것은 여러 의미에서 치유적이다. 색채의 흐름은 우리에게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감정의 굴곡을 조용히 바라보게 하는 시간을 준다.

하태임의 회화는 결국 ‘색채의 운동성’에 대한 탐구이며, 색이 만들어내는 감정적·공간적 세계를 열어 보이는 과정이다. 그의 작품에서 색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이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언어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언어를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색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눈을 옮기다 보면, 색채가 우리 안의 시간을 부드럽게 흔드는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

하태임의 작품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색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 그의 회화는 이 질문에 선명한 답을 주기보다는, 색 그 자체가 삶의 리듬이자 감정의 파동임을 조용히 일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의 문을 다시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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