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도 대작 느낌’...29일~11월30일 서보아트스페이스
내면 깊은 곳서 조용히 피어나는 묵색지광의 미학

달리는 말 그림으로 유명한 쉬 베이홍(徐悲鴻 1895–1953)은 중국 근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사람이다. 전통 수묵화와 서양 사실주의 기법(서양 해부학을 배워 말의 근육과 동세를 정확하게 표현)을 융합해 그렸다. 쉬 베이홍의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민족의 정신, 강인함, 자유, 재건의 희망을 상징했다. 1930~40년대 일제 침략과 국민 혼란의 시기, 그의 말 그림은 중국인의 자긍심과 의지를 고양하는 매체였다. 후대 많은 화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말 그림은 지금도 중국 회화의 대명사, 중국 정신의 상징물로 평가받고 있다. 쉬 베이홍의 말그림은 왕농(王農 (1926‑2013), 쉬 러이(徐累 ) 작가 등이 뒤를 잇고 있다. 29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보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갖는 첸스(陳石) 작가도 그 중에 한사람이다. ‘墨色之光 – 중국 수묵의 현대적 해석’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먹색에 대해 다시금 생각게 하는 자리다.

'작은 작품도 대작이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압도감 있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첸스 작가
'작은 작품도 대작이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압도감 있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첸스 작가

“한없이 검고, 고요하며, 때로는 무거운 침묵처럼 느껴지는 색이 먹색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빛이 있다고 믿는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고, 소리 없이 스며들며,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나는 그것을 ‘묵색지광(墨色之光)’, 즉 먹빛의 빛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보통 ‘빛’ 하면 찬란하고 밝은 것을 떠올린다. 흰색, 노란색, 금빛처럼 눈에 띄는 색들 말이다. 그러나 먹빛, 검은색은 반대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밝음을 삼키며, 때로는 슬픔과 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첸스 작가는 동양의 수묵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거기엔 선명한 색이 없다. 오직 먹과 물, 그리고 그 사이의 농담(濃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묵화는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과 깊은 감성의 결을 만들어낸다. 적막한 산수화 속 물안개, 흐릿한 능선의 경계, 텅 빈 여백에서 조차 그윽한 빛이 느껴진다. 색채 없이도 빛나는 그것이 바로 묵색지광이다.

군마도
군마도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찬란한 순간을 꿈꾸지만, 인생은 대부분 회색빛의 날들, 혹은 검은 터널 같은 시기로 채워져 있다. 실패, 상실, 고독, 그리고 침묵. 그 어두운 순간들 속에서도, 우리는 배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언가를 내려놓으며, 더 단단한 자신으로 자라난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빛이 있다. 오히려 눈부신 빛보다 오래 가고, 깊게 스며드는 내면의 광채다.”

초원
초원

작가는  밝은 색만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먹색 같은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빛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조용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흑과 백 사이, 말과 말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백 속에서 피어나는 그 빛. 그것이 바로 그를 위로하고, 세상을 이해하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동채추운  (侗寨秋韻(
동채추운  (侗寨秋韻(

“묵색지광.... 그것은 어둠을 뚫고 나오는 찬란함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머물 줄 아는 깊이 있는 빛이다.”

중국 서남부의 구이저우(贵州) 출신의 첸스 작가는 전통 수묵의 정제된 기법 위에 현대적 색감과 감성을 융합한 작품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회화는 ‘격정적이지만 방황하지 않는 선’, ‘운필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수묵화의 현대적 해석은 단순한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다. 정체성과 시대성을 고민하는 예술적 실천이다, 전통 매체가 어떻게 새 시대에 살아남고 새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아운근천도 ( 雅韻根泉圖)
 아운근천도 ( 雅韻根泉圖)

“수묵은 단순한 회화 기법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이며, 시간을 담는 매체이다. 붓과 먹이 종이 위에서 번지고 스며드는 그 찰나의 순간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느림, 침묵, 사색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사실 먹의 농담과 붓의 결, 여백의 숨결은 오랜 훈련과 집중, 그리고 내면의 응시 없이는 담아낼 수 없다. 먹을 갈고, 붓을 들고 화폭을 마주하는 느린 과정은 ‘지금-여기의 감각’을 회복하는 수행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고 사유할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첸스 작가는 수묵이라는 오래된 언어를 통해 지극히 느린 방식으로,  오늘의  삶을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증경파락  (曾經怕樂)
 증경파락  (曾經怕樂)
 소계 ( 小溪)
 소계 ( 小溪)

29일 개막식에는 다이빙(邸炳) 주한 중국대사, 이학영 국회부의장, 이용선 국회의원, 이종걸 한중문화협회 회장을 비롯해 한중 양국의 경제인과 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한중 수교 33주년을 맞아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를 한층 심화시키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학영 국회 부의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인전을 넘어, 예술을 통해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이해를 넓혀가는 소중한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의 대표적 추상화가 박서보의 이름을 딴 공간에서 열려 더욱 뜻깊은 전시” 라며 “한국의 단색화 정신과 중국의 수묵 전통이 이처럼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아시아 예술이 세계 미술사 속에서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소중한 시도이자 문화적 대화의 장”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이종걸 한중문화협회 회장은 “첸스 작가의 역동적인 작품들은 단순히 말을 그리는 것을 넘어, 시대의 활력과 생명력을 담아내는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며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용선 국회의원은 “첸스 작가의 작품에는 중국의 깊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애정과, 오늘의 생생한 시각이 조화롭게 담겨 있다. 한국과 중국이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문화와 정서를 나누며 이해를 넓혀가는 뜻깊은 자리”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재)서보미술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사)케이메세나네트워크와 성산아트컬쳐가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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