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9일 가나아트 포럼 스페이스(평창동) 초대전
노란 모과 통해 ” 어떤 색과 향기로 기억될까“ 환기

“세상은 색으로 기억되고, 향기로 그리워진다는 말이 있다. 어린시절 봄날 동네 골목마다 피어 있던 목련과 개나리는 노란색과 흰색보다 따스한 감성으로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그 시절엔 이름조차 몰랐던 꽃들의 향기가, 문득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그리움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색이 되고, 향기가 된다. 강렬한 색으로 처음부터 존재를 각인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며드는 듯 은은하게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간 뒤에도 유독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는 대개 향기처럼 조용히 마음속에 자리했던 사람들이다.”
부대끼는 세상사에도 그리운 사람과 향기 나는 이들이 있다. 가을철 노란 모과를 통해 이를 형상화 해 온 김광한 작가의 31번째 개인전이 가나아트 초대로 23일부터 29일까지 가나아트 포럼 스페이스(평창동)에서 개최 된다.

“색은 눈으로 보이고,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향기에 더 깊은 기억을 맡긴다. 꽃이 지고 시들면 향기만 남듯이 말이다.” 김광한 작가는 모과의 노란색으로 아련한 향기를 불러내고 있다. 물론 어떤 기억은 색으로, 어떤 기억은 향기로 양수겹장을 한다. “봄날의 기억은 연분홍이다. 학교 앞 벚꽃길을 걸을 때면 어김없이 코끝을 간질이던 달콤한 꽃향기. 그때는 왜 아이들이 그렇게 웃을 일이 많았는지, 벚꽃잎이 날리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한없이 가볍고 반짝이는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바삐 삶속에 달려가다보면 색과 향기는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점점 감각을 무디게 살아간다.”

하지만 작가는 낙엽 진 가을길을 걷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을 건져 올린다. 붉게 물든 단풍 아래서 마셨던 따뜻한 모과차의 향기,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가 잊고 지냈던 그의 색, 그의 향기. 그는 다시 색과 향기를 회복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원색이 아니라, 삶을 물들이는 그의 온도와 채도. 그리고 다시 향기를 맡는다.

“사람과의 거리 속에서, 계절의 변화 속에서 피어나는 작고 진한 향기들. 색과 향기는 삶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그리운 색과 향기가 될 거야.”

인간은 오감을 지닌 존재지만, 그중에서도 색과 향기는 가장 은밀하고, 가장 깊숙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색은 빛의 언어로 말하고, 향기는 공기 속에 숨어드는 감정이다.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어떤 색에 끌리고, 지나가던 바람 속의 향기에 오래된 기억을 맡긴다. 작가는 그 깊숙한 곳의 향기를 색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색은 감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슬플 때는 회색을 입고, 기쁠 때는 노란색을 걸친다. 어떤 이는 새벽 하늘처럼 푸른 톤에 위안을 느낀다. 색은 우리 감정의 거울이며, 말하지 않아도 우리를 대변해주는 언어다. 향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향수는 사랑을 기억하게 만들고, 어떤 음식 냄새는 오래전 가족의 식탁을 소환한다. 향은 시간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 채, 갑작스레 우리를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향은 종종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색과 향기는 감각의 예술이자 기억의 조각이다. 그것은 순간을 채우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스쳐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삶 속의 수많은 감정들처럼, 색과 향기는 말없이 존재하며, 우리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진다. 삶이란 결국 어떤 색으로 물들고, 어떤 향기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국 향기는 '스쳐가는 것'이면서도, '깊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 어떤 목소리보다 조용하고, 어떤 색보다 흐릿하지만, 사람의 기억을 붙잡고 흔드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 정교하고, 강력하다. 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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