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프로복싱 경기가 개최되어 천안에서 체육관을 경영하는 임성태 관장을 현장에서 만났다.
1972년 충남 부여 태생으로 평택 청담고를 졸업한 임성태는 1991년 1월 프로로 전향 88 체육관 에서 훈련할때 나의 지도를 받았던 복서다.
현역시절 날 다람쥐라 불릴정도로 빠르고 민첩한 복싱을 구사한 임성태는 92년 신인왕(플라이급)전 결승에서 조용인을 판정으로 잡고 백종권 양상익 박명섭등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임성태가 꺾은 조용인은 세계 적인 성악가 조용갑의 친동생으로 OPBF 슈퍼 밴텀급에서 투타임 동양 챔피언에 오른 톱 복서였다.

1994년 안용진을 7회 KO승을 거두고 KBC 정상에 오른 임성태는 1996년 11월 알퐁 나비자를 10회 판정으로 잡고 18연승 (2무 포함)을 질주하면서 WBA 플라이급 2위에 오른다.
그의 경기를 매의눈으로 유심히 지켜본 장정구를 발탁 조련한 이영래 사범이 임성태 저녀석은 제2의 장정구라고 말할정도로 복싱감각과 센스가 탁월한 복서였다.
그러나 1999년 4월 멜초 가르시아 (필리핀)전을 끝으로 21전을 싸운 임성태는 단 한차례도 패하지않은 무패복서로 링과의 작별을 고한다.
그는 현역시절 나의 조련을 받을때 사랑의매라는 미명아래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스승의날등 각종 대소사에도 빠짐없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심지가 굵은 복서다.
은퇴후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그는 견고하게 입지를 구축했다. 감동적인 사연은 임성태가 88체육관 2년 후배인 SM 체육관 홍성민 대표가 운영하는 목동체육관 본관을 견학(見學) 체육관 경영 노하우(Knowhow) 를 스펀지처럼 흡수 반복해서 학습(學習)한다는 사실이다.
잘되는 체육관은 유니크(Unique) 한 뭔가가 있는법이다. 임성태 관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지난 주말 난 서대문구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조흥전 관장을 탐방 (探訪)하기위해 발길을 옮겼다. 조흥전 관장은 1970년 11월 속리산 골짜기에 위치한 충북보은에서 태어났다.
이고장은 조선 7대임금인 세조와 인연이 많은 도시다. 이곳에서 어느날 세조가 목욕을 한후 피부병이 씻은 듯이 완치되자 속리산에 와서 피부병을 고친 그 은혜를 갚는다는뜻으로 이곳을 보은(報恩)이란 지명을 하사했다는 내용을 오래전 읽은 기억이난다.
또한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가지를 번쩍들어 어가(御駕)를 무사히 지나가도록해 감명받은 세조가 정2품벼슬을 내렸다는 내용이 학창시절 교과서에 전해지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와 첫 인연은 1984년 영등포구 88체육관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곳에서 프로복서로 활약할 때 중학생 한명이 입관을 한다. 그가 바로 오늘의 스포츠칼럼 주인공 조흥전 관장이다.
그는 두터운 커버링에 탄탄한기본기를 갖춘 복싱에 재능있는 학생이었다 그후 88체육관 최고의 히트상품 문성길과 김용강이 무관으로 전락하면서 체육관이 붕괴된 1994년 화양리에 미리노 프로모션이 심영자 회장과 염동균 프로모터가 투톱으로 설립하자.
그곳에서 사범생활을 한 나는 성인으로 성장한 건국대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중인 조흥전 과 또다시 운명처럼 해후했다. 1996년 그는 프로테스트에 합격을한다.
그리고 그해 8월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벌어진 백종권의 세계타이틀전 전초전게임 언더카드로 프로대뷔전을 펼쳐 판정승을 기록했다. 그의 공식 첫 경기이자 마지막인 의미있는 경기였다. 선수(選手)란 뜻은 직역하면 선택받은 손이란 뜻이다.
비록 표본(標本)은 작지만 그는 선수(選手) 출신의 체육관 관장이다. 그후 그는 내가 주최하는 각종 기념행사에 얼굴을 비추면서 인연의 깊이를 한결 두텁게 승화시켰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손윗동서가 2018년 제18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감독으로 발탁되어 여자복서 오연지가 금메달(라이트급)을 획득하는데 수훈을 세웠던 나동길(한국체대)선배여서 친밀감이 더했다.
군산출신의 오연지의 금메달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때 여자복싱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이후 탄생한 최초의 여자복서 금메달이었다.
1961년 전남 나주출신의 나동길은 전남체고를 재학시절 박기철 이남의 송중석 이현주와 함께 독수리 5형재를 구축 전국 무 대를 평정한 홤금멤버의 한축을 담당한 복서다. 조흥전은 대학을 졸업한 1997년 양재동에 소재한 농협에 입사한다.

그리고 2014년 그는 농협 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다. 2015년 년 조흥전은 서대문구 영천동에 위치한 체육관을 차린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서대문 사자로 명성을 날리던 임현호관장이 운영하던 극동 중앙 체육관이 경영난으로 폐업을 한 상태로 공실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던 체육관을 인수한것이다.
그가 아내의 불같은 반대를 무릎쓰고 체육관을 차린건 가야할 때 가지않으면 가고싶을 때 갈수업다는 영화대사같은 낭만적인 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영입한 트레이너가 홍자린이다. 홍자린은 홍수환챔프의 조카로 홍수철 목사의 아들이다. 홍수철목사는 전직가수로 1986년 그가부른 철없던 사랑이란 곡이 공전을 히트를 치면서 가요톱텐에서 5주연속 1위를 차지했었다.
왼솝잡이인 홍자린은 배재고 재학시절 내가 운영하는 강동구 성내동 체육관에서 복싱을 익힌 수강생이었다. 홍자린 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친이 있었다.
그의 여친이 은행입사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조흥전은 은행 계약직 지원을 추천하면서 전격적으로 채용시키주었다.
조관장의 인간적인 따스한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다. 2021년 그는 현직에서 명퇴를 결심하고 실행한다. 당시 그의 연봉은 꼭지점인 1억 5천만원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가 왜 25년간 근무한 안정된 직장을 퇴직하는 이런 돌발행동을 펼쳤을까. 그리스신화에 시지프스 란 인물이 등장한다. 시지프스는 산 밑자락부터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돌을 올려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돌을 산 정상까지 힘겹게 밀어올리지만 올린돌은 정상에 다다르자마자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산밑에 내려와 반복적으로 들어올리고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내용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그는 끊임없는 가치상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평소 복싱 못지않게 관심이 증폭된 상하수도 설비업을 탐구하여 그분야 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어 에너지가 충만할 때 발상의 전환을 통해 또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결심이 서자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6년전 폐업된 체육관을 인수 반듯하게 일으켜 세워 억대 연봉을 창출하는 관장으로 변신한 조흥전은 퇴직을 한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한국배관공사 회사를 설립 건설면허 상하수도 자격증을 획득 투잡(Two jap)으로 전방위에서 활동한다.
현재 그는 체육관에서 벌어들인 소득보다 설비업(設備業)에서 더많은 수익을 올리면서 투잡을 통해 연 평균수익 2억을 걷어올리는 사업가로 탈바꿈에 성공한다.
지천명(知天命)을 전환점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복싱에 대한 열정은 끝이없다.
인근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체육관을 오픈한 홍자린 관장이 운영하는 JR복싱 체육관에 그의 백부(伯父)인 홍수환챔프가 방문을 하면 홍챔프의 복싱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가 끊임없이 복싱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있다.
억 (億)이라는 단어는 사람 (人)의 마음 (心) 이 서있는(立) 날(日)이 합해져 탄생한 문자다. 쉽게 설명하면 억이란 돈을 벌기 위해선 우선 마음자세가 올곧게 서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조흥전 관장은 투잡으로 활동하면서 억대연봉을 창출 온가족이 인근의 32평 APT에서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다.
사내 남(男)자는 열식구(田)를 먹여살릴 능력(力)이 있어아한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조관장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서대문구 응암동에 사는 동양 챔피언을 지낸 최재원 챔프였다.
최재원은 서강일 홍수환 이승훈으로 연결한 한국 프로복싱 테크니션 계보에 한축을 담당한 톱 복서였다.

그의 집에 우수관이 막혀 역류(逆流)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조관장은 긴급히 출동한다기에 담화를 접고 서둘러 퇴장을 했다.
인생은 실전(實戰)이다를 몸소실천하면서 모든 복싱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귀감을 몸소 보여준 서대문 복싱클럽 조흥전관장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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