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그때의 사람들..

지난 9월 2일(토요일) 올림픽파크텔에서 복싱인들과 평소 두터운 친분관계를 형성한 사업가 최병재 형님의 장남 결혼식이 열려 참석을 했다.

공교롭게도 9월 2일 이날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3남 매 중 장남으로 탄생한 안중근 의사의 탄신 144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날이었다.

장정구 챔프 박치순 호텔 인스라다 이천 대표. 백인철 챔프(우측)
장정구 챔프 박치순 호텔 인스라다 이천 대표. 백인철 챔프(우측)

이 말을 형님께 전하자 흐믓한 미소로 화답한다. 이에 난 이어진 9월 3일은 임진왜란때 촉석루에서 몸을 던진 논개 탄신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주말은 의미 있는 날이라 첨부(添附)했다.

최 병재 형님은 투타임 동양 J 페더급 챔피언 정순현과 절친이고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국가대표 출신의 동양 미들급 챔피언 이금택 챔프와 호형호제하는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1942년 1월 서울 태생의 이금택은 1965년 제2회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한 중량급(미들급)에서 명성이 높은 복서였다. 1967년 3월 프로로 전향한 이금택 은 1970년 1월 최성갑이 보유한 동양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 12회 판정승을 거두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1차방어전에서 1971년 1월 케시어스 나이또에게 판정패를 당한 이금택은 1972년 10월 유제두의 동양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3회 KO패를 당하고 링을 떠났다.

백인철 챔프 박치순회장 최병재회장 부부 장정구챔프(우측)
백인철 챔프 박치순회장 최병재회장 부부 장정구챔프(우측)

이날 식장에는 구순(九旬)이 넘으신 전설의 원로 주먹 신상사(본명 신상현) 어르신을 비롯 인기 개그맨 김학래. 호텔 인트라다 이천 박치순 회장.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 챔프를 비롯한 3백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현장에서 백인철 장정구 신인왕 출신의 두 챔프를 지켜보면서 문득 한국복싱 부활을 위해선 해체된 수경사 재창단과 함께 신인왕전 부활이 급선무(急先務)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전국신인왕전은 1962년 10월 28일 거인체육관을 설립한 정석제 선생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때 라이트급 신인왕 출신이 김철호 유명우 지인진을 배출한 대원체육관 김진길 관장이다.

1964년엔 웰터급에서 임병모라는 샛별이 탄생했고 1974년 제6회 신인왕전 LW 급에서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 김상현이 탄생했지만 또다시 중단되고 만다.

그러던 신인왕전이 본격적으로 부활 된 해가 1977년이다. 1977년 이해는 최초로 수출 백억불 의 금자탑(金字塔)을 달성한 해였다. 

개그맨 김학래(좌측)와 최병재부부
개그맨 김학래(좌측)와 최병재부부

또한 1977년은 제주 산악인 고상돈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해이자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 대표팀이 니카라과에서 벌어진 제27회 슈퍼 월드컵 야구대회에서 아시아 울타리를 벗어나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해였다.

더불어 복싱에 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 5기의 신화를 창출 국내 최초로 2체급 석권의 대업을 이룩한 기념비적인 해였다. 이런 의미 있는 해에 재탄생한 제7회 신인왕전에서 플라이급에 출전한 김태식과 미들급에 출전한 박종팔이 최우수신인왕과 우수신인왕에 올라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복서로 한 뼘씩 성장하였다.

1978년에는 플라이급에서 김철호가 1979년에는 정기영 1980년에는 장정구 권순천 백인철 신인왕 트로이카가 세계정상에 올랐고 1981년엔 신희섭(최우수상) 1982년에 유명우 정비원(장려상) 1985년엔 이경연 최창호(우수상) 1986년엔 박영균(감투상) 1989년 이형철(우수상) 1993년 백종권 1994년 최요삼 (우수상)등이 16명이 세계 챔피언에 등극 신인왕전은 세계 챔피언 탄생의 등용문(登龍門)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WBA 밴텀급 챔피언 박찬영(좌측)과 장정구챔프.
WBA 밴텀급 챔피언 박찬영(좌측)과 장정구챔프.

그리고 신인왕전에 출전했지만 중간에 탈락한 선수중 세계정상에 오른 복서도 박찬영 최용수 전주도 지인진 등 4명이나 된다.

프로복싱 14대 세계 챔피언이자 WBA 밴텀급 챔피언 박찬영은 신인왕전과는 인연이 없는 대표적인 복서다.

1980년 서울 신인대회 플라이급에 출전한 박찬영은 결승에서 판정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해 11월 MBC 신인왕전(밴텀급)에 출전 파죽의 4연승(1KO)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7전 전승을 기록한 유제두 관장의 조련을 받은 해태체육관 이경수에 판정패 또다시 준우승을 차지한다. 박찬영은 1987년 5월 WBA 밴텀급 챔피언 무구루마 다쿠야의 타이틀에 도전 적지에서 11회 KO을 거두면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뤘다.

WBC 페더급 투타임 챔피언 지인진도 프로 대뷔전이자 신인왕전 첫 경기인 1991년 11월 20일 벌어진 MBC 신인왕전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아마츄어 시절 밴텀급에서 활약했던 지인진(당곡고) 을 내가 88 프로모션(회장 심영자)으로 스카웃 하면서 그의 트레이닝을 담당했다.

신인왕전을 앞둔 어느날 나와 인진이는 문화체육관에서 프로복싱 밴텀급 신인들의 경기를 관전을 했다.

그때 발군(拔群)의 기량을 보인 선수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남체육관 곽영철이란 복서였다. 

WBC 페더급 투타임 챔피언 지인진
WBC 페더급 투타임 챔피언 지인진

그 자리에서 인진아 상대가 너무 잘한다. 이번 신인왕전에 저 선수가 밴텀급으로 출전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체급을 내려 j 밴텀급으로 출전하자고 말했자 그는 받아 들였다.. 1991년 11월 20일 지인진은 그날 당일 계체량에서 1Kg 체중이 오버 사우탕을 들락거리면서 감량을 겨우 통과했다.

그날 인진이는 한계체중에서 170g 미달된 51.9Kg을 기록했다. 첫 경기 상대는 부천 강산체육관의 왼손잡이 복서 박태선 이었다. 인진이는 두차례 다운을 당하고 판정패를 당했다.

그 경기후 인진 이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대원체육관으로 복귀(復歸) 명장 김진길 관장의 조련을 받으며 일취월장 기량이 급성장했다.

특히 2001년 7월 LA 스태플스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톱 클라스 복서인 에릭 모랄레스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치열한 사투를 벌인 12회전은 승패를 초월 복싱 팬들의 극찬을 받았다.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 모랄레스는 WBO 세계 슈퍼 밴텀급 챔피언 안토니오 바레라와 통합 타이틀전을 펼쳐 승리하는 등 3체급을 석권한 멕시칸 복서였다.

강남근과 신인왕 결승전을 펼치는 장정구(우측)
강남근과 신인왕 결승전을 펼치는 장정구(우측)

IBF J 밴텀급 챔피언 전주도 는 1981년 5월 8일 KBS 신인왕전에 출전 2회전에서 최영길에게 판정패를 당해 탈락한다.

이후 2차례 경기를 더 가졌지만 사실상 패한 경기를 펼치고도 극동 프로모션 주최인 관계로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4전 1승 1패 2 무승부를 기록한 전주도 는 장래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평범한 복서였다.

그러나 5차전부터 발동(發動)이 걸리기 시작한 전주도는 인도네시아에 원정 에디 피컬에게 KO패 당하며 IBF J 밴텀급 타이틀을 6차방어전에서 상실할 때까지 3년 8개월간 1무 포함 기록적인 18연승(10KO)을 질주하며 하늘을 나는 용처럼 링 위에서 마음껏 꿈을 펼친다.

이 기간 에는 세계타이틀전 6연속 KO승을 기록하면서 비록 표본(標本)은 적지만 연속 KO 국내기록으로 등재되어있다. 초창기 빛이 보이지않는 암흑같은 터널을 질주했던 전주도 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투쟁으로 반전(反轉)에 성공한 대표적인 복서다.

김춘석 관장과 최용수챔프
김춘석 관장과 최용수챔프

WBA J.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도 1990년 11월 개최된 신인왕전에 출전 3회전에서 판정패를 당한다.

그리고 8차전에서 장성관에 2회 52초만에 KO패를 당한다.

그러나 전주도 처럼 뒤늦게 시동(始動)이 걸린 최용수는 1998년 9월 다카노리 하다케야마에게 8차 방어에서 벨트를 풀 때가지 무려 6년 4개월에 걸쳐 전주도와 동일(同一)한 1무 포함 18연승(10KO)을 질주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뽐냈다.

특히 이역만리 알젠틴에 원정 홈링의 빅토르 우고 파스와 맞대결에서 화염방사기처럼 품어내는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2차례 다운을 탈취하며 10회 KO승을 거두며 WBA 주니어 라이트급 정상에 오른 경기는 압권이었다.

마(魔)의 체급이라 불리는 주니어 라이트급은 그동안 서강일을 시작으로 김현치 김태호 오영호 최충일 문태진 등이 7차례에 걸쳐 정상을 노크 했지만 최용수가 7전 8기의 신화를 창조 하기 까지는 입성을 허락하지 않은 견고한 난공불락의 체급이었다.

인철 챔프(좌측)와 안상우 탄다타 대표
인철 챔프(좌측)와 안상우 탄다타 대표

1965년 12월 서강일의 첫 세계타이틀전이 벌어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43명의 세계 챔피언이 탄생 했다.

중요한 사실은 그중 21명이 신인왕전 출전자란 사실은 신인왕전의 위력을 함축시켜 표출(表出) 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신인왕전에 출전한 이후에 세계정상을 향해 완성을 향한 가속 패달을 쉼없이 밟았다.

세계타이틀전 6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친 전주도 챔프
세계타이틀전 6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친 전주도 챔프

그러한 숙련과정을 통과 한후 이들은 퇴색한 빛깔을 떼어내고 황금빛으로 무장한 진검(眞檢)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렇게 복서들에게 동기부여(動機附輿)를 제공한 중요한 신인왕전이 중단 된지 6년 만인 2022년 3월 제39회 대회가 개최되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신인왕전 준결승전에서 신희섭을 다운시키는 장정구
신인왕전 준결승전에서 신희섭을 다운시키는 장정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그 이름 프로복싱 전국 신인왕 전 이여.

부디 긴 잠에서 깨어나 나의 조국 한국복싱 소생(甦生)하게 하소서...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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