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9월 3일은 필자가 헤럴드 신문에 첫 컬럼 을 연재한 날이다. 세월이 제트기보다 보다 빨리 달려 2025년 9월 3일이 되면 어느덧 스포츠칼럼을 연재 한지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필자의 스포츠칼럼을 열독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컬럼의 연재 주인공은 프로복싱 전(前) 동양 jr 웰터급 챔피언 박경현이다. 나는 그를 취재하기 위해 차원준 회원과 함께 그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거함 유종훈을 2차례 잡은 박경현챔프
거함 유종훈을 2차례 잡은 박경현챔프

박경현은 1966년 2월 경기도 평택시 청북 면 출신이다. 부지런하고 소박함이 감춰진 평택사람 들의 기질을 대표적으로 말해주는 역사적 인물은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란 참사가 일어나자 결사항전 을 외치며 적에게 목슴을 던지며 저항한 3학사중 홍익한과 오달제 2명이 바로 평택사람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으로 선정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도 이 고장 평택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동양 jr웰터급 챔피언 박경현
동양 jr웰터급 챔피언 박경현

박경현은 이경복 관장이 운영하는 송탄 체육관에서 한광고 1학년 때인 1982년 복싱에 입문한다.

그는 1983년 전국체전과 학생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합작한다. 졸업반인 1984년 8월 전국 아마복싱 선수권대회(라이트 웰터급)에서 파죽지세로 4연승(2KO)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송탄 체육관에는 박경현의 2년 선배인 전태식도 1983년 제37회 전국선수권대회에서 문성길(목포대)을 격파한 김상수(동아대)를 판정으로 잡으면서 박경현과 함께 이경복 사단의 쌍두마차(雙頭馬車)를 형성한다. 1986년 제16회 대통령배(웰터급)에 경기도 대표로 참가한 박경현은 8강에서 서울 대표 송경섭 (한국체대)와 격돌한다.

송경섭은 1985년 (방콕) 아시아선수권 1987년 (쿠웨이트)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2연 패한 국가대표이자 88서울올림픽 16강전에서 1987년 월드컵 금메달 리스트인 동독의 <메네르트>선수 에게 한차례 녹다운을 탈취하며 판정승을 거둔 역대급(歷代給) 복서였다. 

박경현 챔프와 차원준회원(우측)
박경현 챔프와 차원준회원(우측)

이 경기에서 박경현은 비록 판정패를 당했지만 매 의 눈으로 그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대학감독이 있었다. 바로 수원대 곽일선 감독이었다.

1987년 박경현은 수원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한다. 수원대학은 1981년 킹스컵 은메달 (라이트 웰터급) 리스트인 호계천(수경사) 1985년 서울 월드컵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기택을 비롯 최명현 김명곤 추경호등을 배출한 대학이다.

박경현은 1988년 12월 프로에 전향한다. 당시 그와 송탄 체육관에서 투톱을 형성한 전태식은 그해 1월 제17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 페더급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면서 8전 전승(5KO)을 기록하고 있었다. 박경현의 대뷔전 상대는 5전 4승 (4KO) 1패를 기록한 유종훈(부산 아세아) 이었다.

박원챔프와 필자(우측)
박원챔프와 필자(우측)

당시 박경현은 아마츄어 전국선수권자로 인정되어 프로 대뷔전은 파격적으로 8회전 경기로 치룬다. 이 대결에서 격렬한 타격전을 펼친 끝에 박경현은 판정승을 거둔다.

상대 유종훈은  찬스 포착이 빼어난 스마트한 선수였다, 후에 동양 챔피언에 등극 6차 방어에 성공한 유종훈은 김종길과 윤석현에 4승(1패)을 거두면서 통산 32전 28승 (11KO) 4패를 기록한 톱 복서였다.

1989년 6월 벌어진 박경현은 2차전 상대는 송성운 (태양)이었다.

당시 17승 (4KO) 2패를 기록한 송성운은 스승인 전 세계챔피언 유제두 관장과 같은 고흥군 두원면 출신으로 동양 타이틀전까지 경험한 백전노장이었다. 박경현은 송성운의 함포사격에 4회 침몰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다.

여담이지만 과거에 페더급 국가대표 전학수 선배도 1980년 2월 벌어진 프로 대뷔전 에서 13승 (2KO) 2패를 기록한 정기영 1981년 7월 벌어진 2차전에서는 5전 2승 (2KO) 2무 1패를 기록한 이오형 과 맞대결 2차례 대결 모두 패하고 링을 떠난 전력이 있다.

1979년 킹스컵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이거성 박태국 한창덕 유인봉 백종우 등 명품 복서 들을 차례로 제압했던 전학수도 프로 대뷔 전부터 박경현과 동일하게 너무 강한 상대와 싸웠던 것이다, 정기영과 이오형 은 훗날 세계정상과 국내 정상에 올랐다. 

유종훈과 타이틀전을 펼치는 도전자 박경현(우측).
유종훈과 타이틀전을 펼치는 도전자 박경현(우측).

박경현은 90년 6월 유병호 7월 유병삼에 각각 8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흩어진 전열을 정비 한후 국내 타이틀에 도전한다. 챔피언은 박경현의 대뷔전 상대였던 유종훈이었다.

박경현에 1패를 당한 유종훈은 1990년 송성운이 보유한 KBC 한국 JR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 10회 판정승을 거두는등 8연승(4KO)의 쾌속 행진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박경현은 유종훈을 판정으로 잡고 국내 정상에 오른다. 유종훈 박경현 송성운 3명의 복서는 복싱계의 전형적인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관계였다. 

이승우 지사장과 박경현 챔프(우측)
이승우 지사장과 박경현 챔프(우측)

1992년 5월 챔피언 박경현은 박재덕을 잡고 1차 방어에 성공한다. 그해 10월 박경현은 종종 파킹과 안방에서 동양 JR 웰터급 타이틀 결정전을 치룬다.

이 경기에서 묵직한 한방은 없어도 클라스가 높은 하이 테크한 연타로 상대를 압도하며 12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박경현은 대망의 동양 정상에 오른다. 필리핀 웰터급 챔피언인 파킹은 중견 복서 로드 세퀴난과 무승부를 기록한 경력이 있는 고무공처럼 탄력 있는 복서였다.

박경현은 1993년 2월 레카튜나를 상대로 1차방어전을 펼쳐 2회 KO승을 거둔다. 그해 7월 콜린스와 논타이틀전에서 판정승을 거두며 그해 11월 박원(청담체) 과의 2차방어전을 펼친다. 1970년 강원도 동해 출신의 12전 11승 (3KO) 1무를 기록한 박원 은 눈(레이더)과 주먹(요격 미사일)이 발군(拔群)인 국내 챔피언이었다.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기초체력이 탄탄한 박원은 필자가 몸담은 88 프로모션 소속의 복서였다. 이 두 선수의 전력은 난형난제의 팽팽한 전력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양 선수의 대결은 경기 장소에서 승패가 결정되었다. 

종종 파킹과 동양 타이틀전을 펼치는 박경현(우측).
종종 파킹과 동양 타이틀전을 펼치는 박경현(우측).

박경현의 2차방어전 장소가 박원 의 고향인 강원도 <동해>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곳 동해에서 박원은 지난 1992년 10월 윤석현과 타이틀전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국내 챔피언에 등극했었다.

챔피언 박경현은 박 원 과의 대결에서 접전 끝에 12회 판정패 타이틀을 상실한다, 1994년 7월 23일 박원과 2차전이 벌어졌다. 경기 장소가 전라도 <영암>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영암 독천시장 에서 떡장사를 하는 모친과 함께 살면서 아들의 나태함을 꾸짖고 학업에 정진하기 위해 촛불을 끄고 아들과 한자 쓰기와 가래떡 썰기 경연을 벌인 고장이 바로 영암이다.

바로 유서 깊은 고장 <영암>이 박원의 매니져인 유종연 관장의 고향이었다. 이 경기 역시 박경현의 눈 부상으로 6회까지 진행된 2ㅡ1 채점으로 또다시 박경현은 고배를 마셨다.

당시 난 현장에서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체 퇴장하는 박경현의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8승(4KO) 3패를 끝으로 링을 떠나는 그의 숙연한 뒷모습을,,, 선수들의 실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룰 때는 보이지 않은 힘 즉 인탠지블 파워(intanglbie power)가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현재 그가 살고 있는 화성시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올해 58세의 박경현은 차분하면서 겸손한 성품이다.

박경현은 링을 떠난 후 복싱과 인연을 끊고 사업에 투신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버티면서 나이테가 쌓이고 경륜이 축척 시나브로 개인사업이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난 그가 5년 전 매입한 건물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에게 물었다. 성공의 비결을 그는 말한다. 형님!! 산삼밭에 가야 산삼을 캡니다.

그 짧은 단어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걸 깨달았다. 부자 옆에 줄을 서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실증(實證) 해보인 그가 그래서 더욱더 자랑스럽다. 사실 남의 성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공은 안보이고 그 자체만 보이기에 부러워하고 샘이 난다. 그러나 남이 잘됨을 축복하면 그 메아리가 나에게 축복이 되어 돌아온다. 다시 한번 성공한 사업가로 입지를 구축한 박경현 챔프의 건승을 바라면서 이번 주 컬럼 을 마무리한다. 

화성시에 있는 박경현챔프 소유건물
화성시에 있는 박경현챔프 소유건물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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