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당 오간 사우디전 승리, 선수들의 간절함이 원동력

벼랑끝에 몰리는 위기를 맞았던 한국 축구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한국 축구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하 클린스만호)은 31일 새벽(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맞대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4-2 승리를 거뒀다.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조규성이 종료직전 동점골을 넣자 팀 동료들이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조규성이 종료직전 동점골을 넣자 팀 동료들이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

이로써 클린스만 감독과 특정 선수에게 쏟아졌던 비난도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즉흥적인 수비 스리백 시스템 선택 실패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한국 축구에 굳어져 있던 수비 포백 시스템을 스리백 시스템으로 전환, 이를 정착시킨 감독은 다름 아닌 거스 히딩크(78.네덜란드)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이 스리백 시스템으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다.

이후 한국 축구에서 스리백 시스템은 한동안 대세였다. 그러나 2006년 7월 대표팀(2006.7~2008.8)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벡(사망.네덜란드) 감독은 세계 축구 흐름인 포백 시스템으로 회귀했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취임후 1년여 동안 수비 포백 시스템을 유지하며 대표팀을 운영해 왔다. 이런 클린스만 감독이 운명이 걸려있는 승부에 뜬금없이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고 사우디아라비를 상대했다. 문제는 이 스리백 카드가 클린스만호의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는 사실이다.

이의 영향으로 클린스만호는 전반전 경기력 미흡으로 중원 주도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겨주고 공격은 단순하게 수비에서 공격으로 이어지는 플레이에 그쳤다. 

결국 수비는 전반 40분 알리 알라우자미에 이어 살렘 알 다우사이에게 절체절명의 실점 위기를 맞는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그야말로 두 번의 골대 행운과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의 호수비가 클린스만호를 살린 전반전이었다.

한편으로 클린스만 감독의 스리백 선택의 효과도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전반 조별리그에서 맹위를 떨친 사우리아라비아 양쪽 측면 공격을 책임졌던, 압둘 하미드, 알 부라이크의 빠른 역습과 다양한 공격 전개 플레이의 파괴력을 설영우(26.울산 현대)와 김태환(35.전북 현대)이 무력화시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스리백 수비는 후반 시작과 함께 사우디의 교체 선수인 압둘라흐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얻어 맞으며 실패했다. 사실 선제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사한 3번의 절묘한 논스톱 패스는 대응하기 불가능한 측면이 있어 스리백 전술은 빨리 잊어야만 했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9분 조규성(26.미트윌란) 투입과 동시에 스리백 시스템을 포백으로 전환, 끌려가는 경기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로써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과 이강인(22.파리 생제르맹) 을 비롯, 설영우까지 가담하는 파상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손흥민, 이강인을 상대로 한 반칙 작전과 수비적인 전술로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은 채 후반 막판까지 끌려갔다.

특히 후반 42분 이강인의 왼발 택배 크로스에 의한 헤더 슈팅의 크로스바 '불운'은 급기야 한국에게 패배의 그림자를 덧씌우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경기종료 추가시간 10분이 부여된 9분 클린스만호에게 '천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 골문 오른쪽 측면 부근에서 김태환의 왼발 크로스를 받은 설영우가 헤더로 조규성에게 연결, 조규성은 텅빈 사우디아라비아 골문 앞에서 헤더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며 연장전으로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전연 예측하지 못한 클린스만호 양쪽 윙백의 공격 가담에 의한 '크로스->헤더' 합작품이었다. 동점골로 분위기와 흐름을 완전히 거머쥔 클린스만호는 연장전에서 체력저하를 노출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도하는 공격 축구를 펼쳤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골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고 120분 경기에 마침표를 찍으며 러시안 룰렛(승부 차기)에 들어갔다.

분명 정규 경기 종료 시까지 패색이 짙던 클린스만의 축구는 전술, 전략에 의한 팀의 특징적인 색깔이 묻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선수들의 역량과 열정에 경기 결과가 좌우되는 승부였다. 이에 시스템 실패라는 결과도 낳았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한판 승부는 선수 역량과 열정에 의한 간절함이,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는 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이며 클린스만호는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승부차기 전 선수 미팅에서 캡틴 손흥민이 동료 선수들에게 토한 열변은 승리에 큰 자극제가 되었을 것은 틀림없고, 한편으로 승부차기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조현우(33.울산 현대) 역시 신들린 '선방쇼'로 클린스만호를 구한 일등공신으로 부족함이 없다.

조현우는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부터 20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까지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는 독일 격파(2-0)와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앞장섰던 '영웅' 골키퍼다. 이에 2일 8강전 호주를 상대로도 과연 '빛현우'라는 애칭에 걸맞는 활약을 펼쳐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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