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 말로 인간의 허다한 허물을 가려주는 방법일 것입니다. 서로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살아야 바른 관계,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이지요.

허물
우리말에 ‘허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허물은 인간이 ‘저지른 잘못’ 또는 ‘모자라는 점이나 결점’을 말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허물은 적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허물 역시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작은 허물이 남이 생각할 때에는 치명적인 큰 허물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하는 상대의 큰 허물이 상대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허물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반구제기(反求諸己):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허물을 달리 생각해보면 참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내가 허물을 가지고 있기에 허물이 있는 ‘너’ 또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허물이 없다면 허물이 있는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까 허물이 있음은 불완전함 속에서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허물을 덮어 줄 방법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야 말로 인간의 허다한 허물을 가려주는 방법일 것입니다. 서로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살아야 바른 관계,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이지요.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입니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 : BC 613~BC 591)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성어입니다.

초의 장왕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사람입니다. 불같은 성격에 심중에는 원대한 웅략(雄略)을 감추고 있는 사람으로 이름을 떨친 왕이지요. 필(邲)의 전투 당시 몸소 선두에서 북채를 잡고 진(晉)나라 군을 사정없이 몰아쳐 춘추시대 미증유의 대승을 거둔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覇者)입니다.

하루는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습니다.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한 후궁의 가슴을 만졌고, 그 후궁이 그 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이렇게 명합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신하들의 공(功)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다. 이런 일로 처벌은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끈을 모두 잘라 버리도록 하라! 지금 일은 이 자유로운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불문토록 하겠다.”

장왕은 먼저 후궁들의 마음을 다독여 연회장에서 내보냈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어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에 해당하는 불경죄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멸족을 당할 수 있는 중죄였습니다. 그렇지만 신하들의 마음을 달래는 치하의 연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로 용인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놀랍게도 그 일이 자신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왕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自尊感)이 충만한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몇 해 뒤에 장왕의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왕의 앞에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공손하게 큰 절을 올립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생명은 폐하의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오늘 이 전장에서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

《채근담(採根談)》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남의 허물을 들추지 마라/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들추어 내지 말며/ 남의 지난날 악을 마음에 두지 마라./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덕을 기를 수 있고 또 해(害)를 멀리할 수 있다.」

남의 허물을 잘 발설하는 사람은 적이 많습니다. 남이 내게 저지른 악을 잊기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새겨 두어 복수를 꾀하면 자신도 같은 유(類)의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경남 양산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통도사경내 곳곳에 걸려 있는 검은 나무판의 경구(警句)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어떻습니까? 우리 서로 이해하고, 선(善)을 서로 권장하며, 허물을 서로 용서하고, 사업을 서로 도와서 끝까지 알뜰한 덕화만발의 가족이 되면 어떨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3월 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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