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단히 발끈하는 수구언론들, 그들의 적은 역시 그들?
2011년 시사인의 나경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 보도 관련, '조선일보' 등은 경찰 발표만 받아 '허위사실' 단정짓기
시사인의 구체적 반박은 무시하고 "나경원법 제정하라" 목청 높였던 조선·동아·문화일보, 그 직후 바로 발의된 '나경원법'
'가짜뉴스' 구설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매체의 자승자박? 수십~수백억원대 소송 가능케 하는 최강욱 법안과 일맥상통?
[ 서울 = 뉴스프리존 ] 고승은 기자 = "징벌적 손해배상은 알 권리와 언론 자유 침해 논란 때문에 미국에서도 형사처벌 대신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배상 대상인 가짜 뉴스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악의적·의도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일반 언론의 오보와 차원이 다르다. 여당은 무엇이 가짜 뉴스인지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 뉴스로 몰려는 것 아닌가. (이하 중략) 그런데도 극성 친문의 요구로 언론을 포함시켰다. 극성 친문의 요구가 무엇이겠나.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보도에 재갈을 물리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2월 10일자 사설, '가짜뉴스 제조기 정권이 비판 언론 징벌하겠다는 적반하장' 중)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에선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 중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통과시키려는 법안은 총 6개가 있는데, 우선 고의성 있는 거짓·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윤영찬 의원 발의)이 대표적이다. 당초 해당 법안엔 유튜브와 SNS만 대상이었으나, 여론의 질타에 기존 언론들도 대상에 포함시켰고 포털(사이트)에도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밖에도 ▲정정보도를 할 경우 최초 보도 대비 최소 2분의 1 크기로 시간과 분량을 할애해 보도(김영호 의원안) ▲댓글 기능 중단을 가짜뉴스 피해자가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양기대 의원안) ▲언론조정단계에서 열람차단 청구권을 부여할 것(신현영 의원안) ▲ 언론중재위원을 늘리는 것(김영주 의원안) ▲출판물·명예훼손 규정에 방송도 포함하는 것(이원욱 의원안) 등이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대표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열린민주당 2명, 더불어민주당 9명 공동발의)은 이보다 더 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보방지를 위해 정정보도가 원보도의 규모와 질에 비례해 개제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게다가 언론사가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왜곡 보도를 하는 경우 그로 인해 취득한 유‧무형의 이익에 상응하는 징벌적 배상액을 부과토록 한 것이 개정안의 대표 특징이다.
배상액 산정시 언론사가 실제로 취득한 이득을 연간 매출액 기준으로 산정, 해당 언론보도 등이 있은 날부터 삭제된 날까지 총 일수에 해당 언론사 등의 1일 평균 매출액을 곱한 금액으로 정하도록 했다. 최강욱 대표의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하루 매출액이 지난 2019년 기준으로 8억원대에 달하는 <조선일보>와 같은 거대 언론사의 경우엔 수십~수백억원대의 소송도 가능해질 수 있다. 매체들 중 '가짜뉴스' 구설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조선일보>로서는 매우 기분 나쁠 법안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같은 법안에 역시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극성 친문의 요구로 언론을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포함시켰다"라며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보도에 재갈을 물리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9년전 사설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흑색선전에 대해서도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선 벌금형 자체를 없애 유죄가 확정되면 무조건 실형을 살게 한다든지, 허위사실의 근원지 역할을 한 언론 매체에 대해선 징벌적 벌금을 부과해 회사가 망하도록 하거나 사이트를 강제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당 내용은 <조선일보>의 2012년 2월 2일자 사설 <'나경원法', 선거 흑색선전 신세 망치도록 해야>에 나온 부분이다. 이처럼 9년전에는 정반대 입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만약 언론매체가 선거를 앞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경우, 회사가 망할 정도의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거나 사이트를 강제 폐쇄조치해야할 것이라며 목청을 높인 것이었다. 이들이 지금 내놓고 있는 입장과 정반대되는 부분이며, 최강욱 대표가 대표발의한 법안과 거의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이 외쳤던 '나경원법'은 매체 <시사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시사인>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연 회원가가 1억원에 이르는 피부클리닉에 다닌다'는 제보를 받아 그의 '1억원 피부클리닉 출입' 의혹을 구체적으로 보도([단독] 나경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한 바 있다.
당시 <시사인> 기자들이 직접 해당 클리닉 원장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등을 확인해 기사를 작성했으며, 클리닉을 다니는 이들의 증언도 넣었다. 여기에 나경원 당시 후보의 해명("해당 클리닉에 다녔고, 클리닉 원장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다. 그러나 나에겐 실비만 받아서 낸 돈이 1억원과는 거리가 멀다")도 넣었다.
당시 <시사인> 보도 직후 뜨거운 반응이 터지자, 이에 반발한 나경원 후보 캠프 측은 선거 직전 <시사인>을 비롯한 공개 브리핑한 야당 대변인 등을 연이어 고소했다. 나경원 후보가 낙선한 지 한 달여가 지나서야 경찰은 해당 피부클리닉을 압수수색했고 <시사인> 측도 조사했다. 그런데 돌연 경찰은 최종수사결과 발표가 나기 전인 2012년 1월 30일 언론에 갑작스레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은 "병원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진료 기록을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한 결과 나 전 후보가 지난해 해당 병원을 15차례 찾아 자신과 딸의 피부관리 비용으로 550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마치 <시사인>이 내놓은 기사가 허위인 것처럼 결론짓는 발표를 한 것이었다.
그러자 <시사인> 측은 즉각 <경찰이 나경원 선거운동원인가>라는 제목의 반박기사를 통해 “연간 회비는 1억원이다”라고 해당 피부과 원장이 확인해 준 발언 녹취록을 공개하며, 당시 해당 클리닉 원장이 “항노화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나이 든) 여성은 1장(1억원)을 받지만 20대 여성에게는 항노화 치료가 필요없으니 반 장만 받겠다. 반 장은 1년에 5천만원이다”라고 전한 부분을 짚었다. 상담 후 간호사도 관리비용을 확인해주면서, 5천만원을 준비해오라고 했음도 짚었다.
<시사인>은 ‘1억 피부클리닉’ 건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당황한 클리닉의 원장이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이를 토대로 경찰이 중간수사결론을 내린 것이라 지적했다. 경찰이 해당 클리닉을 압수수색한 시점도 고소 시기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인 만큼, 클리닉으로선 충분히 경찰 조사를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던 상황이었던 점도 지적하며 공정성·신뢰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 공교롭게도 나경원 전 의원이 경찰의 중간수사발표 이틀 전(2012년 1월 28일) 총선 출마 선언을 한 점을 들며, 발표 시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은 경찰의 중간수사발표를 일제히 기정사실화하며 '나경원은 희생자' 여론을 앞장서 만들어 나갔다. 같은 날 동시에 사설을 쏟아낸 것이다. 여기서 <문화일보>는 소위 '나경원법' 제정을 처음으로 꺼내들었다.
[사설] 선거 휘젓고 거짓 드러난 '나경원 1억 피부숍 출입' (2012년 1월 31일자 조선일보)
[사설] 허위과대 선동으로 드러난 나경원 '1억 피부과' (2012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
[사설] '1억 피부숍', 사실이 아니라는데 .. (2012년 1월 31일자 중앙일보)
<사설>'정봉주法' 아니라 '나경원法'이 시급하다 (2012년 1월 31일자 문화일보)
이는 <시사인>의 녹취록 공개 등 반박은 그대로 묵살하고, <시사인>의 보도를 허위로 단정지은 것이었다. 이같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공격에 <시사인>은 피부클리닉 원장의 육성발언이 담긴 동영상 일부를 유튜브 등에 공개했다.
당시 <시사인>이 공개한 해당 원장의 육성발언을 보면 "(회원들은)다 10년 이상씩 된 사람들이다" "난 1년씩 한다. 오든 안 오든 100번을 오든 똑같다"며 연회원제를 강조하고 있으며, '항노화 피부관리' 등을 받을 경우 연회비가 1장(1억)이라는 취지로 답한다. 그러면서 "얘는 젊어서 그럴 필요 없다. 반 정도(5천만원)면 된다"는 발언도 담겨 있었다.
그렇게 구체적 취재내용을 <시사인>이 공개하면서 경찰 발표의 신뢰성에 큰 문제가 일었음에도, <조선일보> 등은 이를 무시하며 '나경원법' 제정해야 한다고 목청을 적극 높였다.
<조선일보>는 더 나아가 그로부터 이틀 뒤인 2월 2일엔 <'나경원法', 선거 흑색선전 신세 망치도록 해야> 사설을 냈고, <동아일보>도 같은 날 <[단독] 나경원 울린 흑색선전, 이젠 나경원법으로.. >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냈다. <동아일보>는 그 전날에도 <허위사실 유포 가중처벌.. "나경원法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사까지 내는 등, 당시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 의원들을 향해 '나경원법' 제정에 나설 것을 적극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경원법'을 며칠 뒤 발의했다. 정옥임 당시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선거에서 후보 및 그의 가족에 대한 허위사실을 언론이나 SNS 등을 통해 유포할 경우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정옥임 전 의원은 "나경원 후보가 연회비 1억원의 초호화 피부관리실을 다녔다는 보도가 한 시사주간지를 통해 보도됐고, 관련 사실이 팟캐스트 등에서 재생산돼 나 후보가 패배했다"는 점을 입법 취지라고 설명한 뒤, "나경원 후보가 악의적 흑색 보도의 희생양이 되었음이 증명되었다"라며 <시사인>의 보도를 허위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악의적 흑색보도·선전의 불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 확산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옥임 전 의원이 당시 동료의원 10명과 함께 발의한 '나경원법'을 보면,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에 대해 방송·신문·통신(인터넷, SNS, 모바일메신저) 등의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공표·배포하는 자에 대해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를 비방한 자에 대하여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공직선거법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 등을 비방할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으나 여기서 '벌금' 조항을 빼고 무조건 징역형으로만 처벌토록 하겠다는 매우 강도높은 법안이었다.
정옥임 당시 의원이 <시사인> 보도를 허위로 몰아간 데 대해 <시사인> 측은 그해 2월 6일자 <동영상엔 눈감고 '나경원법'에 올인> 기사를 통해 "허위 주장으로 <시사IN>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반발했고, <시사인> 기자협회 회원들도 당시 성명에서 그가 대표발의한 '나경원법'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으로 시대를 거꾸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강력 반발한 바 있다.
9년전 그렇게 <시사인>의 보도를 허위로 몰아가며 "회사가 망할 정도의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거나, 사이트를 강제 폐쇄조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던 <조선일보> 그리고 "나경원법 제정하라"며 현 국민의힘에 적극적인 시그널을 보냈던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은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해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지 주목된다.
“권력자가 법 이용해 비판 억압”… 野·기자협회·시민단체 일제히 반발 (2월 10일자 조선일보)
[사설]민형사 이중징벌에 3배 배상..비판언론 족쇄 채우려는 巨與 (2월 10일자 동아일보)
“형법에 더해 징벌적 손배까지… 언론의 비판 기능 위축시킬 것” (2월 10일자 동아일보)
與내부서도 ‘징벌적 손배, 언론 포함’ 이견… 미디어TF, 지지층 반발 의식해 밀어붙여 (2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자 형사처벌에 징벌적 손배까지.. 유례없는 과잉입법" (2월 9일자 문화일보)
<포럼>5共 보도지침 뺨치는 與 언론 악법案 (2월 5일자 문화일보)
<사설>이젠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與, 反헌법 폭거 단념하라 (2월 4일자 문화일보)
"與언론법안, 권력비판에 가짜뉴스 프레임 씌울 것" (2월 4일자 문화일보)
檢·법원 이어 언론 손보기.. 권력견제장치 죄다 장악하려는 與 (2월 9일자 문화일보)
만약 현 여당에서 '나경원법'과 같은 법안을 추진한다면 언론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낼까? 언론(TV포함)에도 분명 직간접적인 영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만큼, 사뭇 긍금해지는 대목이다. 한편 <시사인>의 해당 보도 건에 대해선, 그해 4월 검찰이 불기소(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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