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疏通]
다투지 말아야 할 장소
‘손자병법’ ‘구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병법’에 관한 주석을 모아 놓은 책 ‘십일가주손자 十一家注孫子’에서는 이를 두고 “크게 이득이 안되는 땅을 다투어 얻었다가 잃는다면 차라리 다투지 않는 쪽이 났다”고 하였다.
성 하나, 작은 땅 한 곳의 득실을 따지지 말고 적의 생산 역량을 소멸시키는 데 역점을 두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총체적인 전략목표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일부 지역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617년, 당나라를 세운 고조 이연(李淵)은 수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는 잇달아 곽읍(霍邑.-지금의 산서성 곽읍)과 용문(龍門.-지금의 산서성 하진)을 점령한 후 주력을 집중하여 하동(河東)을 포위, 공격했다. 하동의 수나라 장수 굴돌통(屈突通)은 견고하게 수비했다. 이연은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때 이연은 하동을 돌아 곧장 장안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다.
부장 배적(裵寂)은 굴돌통의 병력이 적지 않으므로 여기를 버려두고 그냥 간다면 장안을 공략하지 못했을 경우 앞뒤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몰릴 것이라며, 먼저 하동을 돌파한 다음 전진할 것을 건의했다. 그런데 배적의 의견과는 달리 이세민(李世民.-당 태종)은 ‘허점을 틈타 쳐들어가 천하를 호령한다’는 기본 전략에 따라 높은 지붕에 올라가 병에 든 물을 쏟아붓듯 일단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것을 강조했다.
즉, 지금의 기세로 곧장 장안으로 쳐들어가면 장안이 공포에 떨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혜가 있어도 제때 계략을 세울 수 없게 되고 용기가 있어도 제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쉽게 공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시간만 끌다 보면 적이 차분히 수비 태세를 가다듬게 되어 더욱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연은 아들 이세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소수 병력으로 계속 하동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몸소 주력군을 이끌고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강을 건너 장안으로 치달으니 수나라 관리들이 속속 항복하고 말았다. 이연은 전광석화처럼 장안을 공략했고, 이어서 관중을 손에 넣었다. 하동의 장수 굴돌통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하고 순순히 투항했다.
- 동중서와 준불의, 경전(經典)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다.
- 산지무전(散地無戰),산지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 경지무지(輕地無止), 경지에서는 멈추지 않는다.
- 비지무사(圮地無舍),비지에서는 머무르지 않는다.
- 교지무절(交地無絶), 교지에서는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
- 용소무애(用少務隘), 적으면 협소한 지역을 택한다.
- 용중무이(用衆務易), 많으면 평탄한 지형을 택한다.
- 고릉물향(高陵勿向), 높은 언덕은 올려다보지 않는다.
- 축영대갈(畜盈待竭),넘침으로 고갈됨을 기다린다.
- 이엄대해(以嚴待懈), 엄격함으로 해이해짐을 기다린다.
- 순수견양(順手牽羊), 남의 양을 순조롭게 끌고 간다.
- 기승약부(旣勝若否,)이긴 후에도 이기기 전과 같이 한다.
- 주위상계(走爲上計), 줄행랑이 으뜸이다.
- 지난이퇴(知難而退), 어려우면 물러난다.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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