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미디어의 확장성에 기반을 둔 대의민주주의의 작동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연극 <코리올라너스>가 지난 15일부터 31일까지 콘텐츠문화광장 스테이지66에서 사람들이 알지만 모른 체 하고 싶은,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의문들의 평가와 판단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주변국가와의 분쟁과 이로 인한 안보상황이 외교 정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현대의 가상 국가 로마. 빈부격차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시위를 로마방위군은 거칠게 진압하고, 활동가 브루터스는 야당 정치인 시니어스와 함께 진압을 지휘한 장교 마셔스에 대한 처벌을 의회토론회에서 요구한다. 생중계되고 있는 의회에서 거친 언사를 쏟아낸 마셔스에 대한 항의는,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볼스키에 대해 승전보를 올린 마셔스를 총리로 추대하는 언론으로 한순간에 바뀌게 된다.
셰익스피어 원작 “Coriolanus”를 재해석하여 2016년 초연되었던 작품 <코리올라너스>는 사회구조가 급변하고 가치관이 충돌하던 로마 초기 공화정 시기의 반영웅을 다룬 원작을 현재화하여 문화와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구조, 국가관, 미디어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의 현실정치와 외교는 단순한 가치판단이나 개별인물들의 일관성 있는 행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고도로 복잡하고 입체적인 현상이다. 현대사회의 시민들은 이러한 복잡한 현상을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단면만을 접하게 되고, 그 단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을 근거로 정치적・현실적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따라서 수많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실재와 미디어 사이의 간극을 어떠한 의지와 시각으로 바라볼지에 대한 판단을 항상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작품 <코리올라너스> 속 인물들을 마주하는 관객들은 팔각형으로 공중에 펼쳐진 스크린을 360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객석과 무대가 구분 없는 구조 속에서, 드라마틱하기 보다는 구조와 상황에 따라 현상적으로 흘러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바라보며 각각의 의지와 시각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 여러 생각과 해석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나온 후 많은 정치적 이슈나 쟁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거나, 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여러 해석들 중 대의민주주의와 영웅사관, 사회운동가의 정치입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또한 오롯이 객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첫째,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우리가 투쟁하여 얻어낸 결과물이기 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의거하여 받아들인 이념적 방향이다. 또 독일의 헌법 제도에서 근간한 우리나라의 헌법은 미국과 일본의 것들을 우후죽순 식으로 받아들였고, 자유경제의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로 복지에 대한 의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서 답보 중이다. 또한 경제위기를 이유로 시민과 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의 소위 ‘정치판’ 또한 작품 속 의회와 마찬가지로 과연 '누구'를 위해 위해 '정치'를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 편으로는 작품 속 양당체재 속에서는 흑백구조나 독일처럼 학생들도 자유로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이루어져, 거대 정당의 당연한 독식이 종식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
둘째,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일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사회에서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사회는 국가를, 정당을, 기업을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표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영웅적인 개인에 대한 개인적인 우대인 동시에, 비영웅들에 대한 차별 또한 당연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에 대한 이슈로 어떤 안건이나 사건에 대한 정치적 물타기로 눈이나 귀가 멀게 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처럼 '정치'가 시민과 폭도, 테러범과 영웅, 일자리에 대한 민생과 전쟁을 평화나 공존의 포장 속에 필요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한민국에서 자타공인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운동권’이라 불리던 이들의 상당수는 정치 입문 이후 ‘변절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혹자는 그들이 이론과 현실정치, 노동을 외따로 분리해서만 생각하여 제도권 정치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혹자는 색깔 노선의 피해자라고도 이야기한다. 어찌 되었건, 사리사욕보다는 사회문제를 중시하던 이들이 정치권 안에서 제대로 역량을 키워가길 바란다. 그리고 시민들을 계몽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방적 시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다수의 정치인과는 다르게 대중과의 소통과 포용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서 중심을 잡기를 희망한다.
많은 정치적 생각들을 나누게 하는 작품 <코리올라너스>는 사실 ‘연극’이다. 대다수가 어렵고 멀다고만 느끼는 '정치'라는 주제에 대하여 생각들을 쉽게 풀어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연기는 어쩌면 너무나 ‘연극’의 기본이기에, 공연을 보고 난 후 몇몇 쟁점만을 따라가 보았다. 또한 미디어에 대한 부분은 한 단락만으로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쟁점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라 여기기에 이번에는 말을 아끼려 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4월 15일은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시민’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참정권’이라는 의무를 지키는 일이다. 즉 정치와 생활은 사실 분리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 극장에서 ‘지금’과 ‘세계’를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연결시켜 감각적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극단 ‘상상만발극장’의 대표, 박해성 연출의 작품들에는 깊은 고뇌를 거친 철학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오히려 많은 고민의 과정을 통해 단순화하여 발화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들은 그가 고심한 '정수'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된다. 그것이 이번 작품 <코리올라너스>에서 나누고 있는 여러 생각들 중 ‘미디어’ 일수도, ‘정치’일 수도, 무대 위 ‘연기’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사실 그 어떤 부분이더라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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