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 전, 원불교 문인협회장

빛나는 내 인생

무술년 새 해가 솟았습니다. 살만큼 산몸입니다. 그래도 여생을 그냥 사는 대로 살다가 추하게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 남지는 안았을망정 내 인생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빛을 내다가 돌아가고 싶은 것이 설마 과욕은 아니겠지요.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인생이라 합니다. 인생 문제를 알고 싶어 하는 어떤 동방의 왕이 신하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고 합니다. 그 신하는 500권의 책을 권하면서 “이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인생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지요.

그러자 왕은 500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없으니 다시 요약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시 그 신하가 그 500권의 책을 50권으로 요약해 왔으나, 왕은 그것도 많으니 다시 요약해 오라고 했습니다. 그 신하가 20년이 지난 후 한 권의 책으로 간추려 가지고 와서 “왕이시여! 이 한 권의 책만 읽으시면 인생이 무엇인가를 아실 것입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임종이 가까운 왕이 그 한 권의 책도 읽을 수 없으니 인생을 한마디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 신하가 말하기를 “인생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죽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한마디 철학적인 용어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듯 합니다. 사르트르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B는 Birth 즉, 태어남을 말하고, D는 Death 즉, 죽음을 말하며, 그 사이에는 C 즉, Choice 선택이 있다는 뜻이지요.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그 사람의 선택 여하에 따라 고생이 되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희망을 품은 군대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국민도 희망으로 무장된 국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희망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이 땅에 살지만, 영원과 연결된 삶이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요? 인생이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존재가 아닙니다. 다 타고난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세상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죽어 다시 윤회(輪廻)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다시 와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다시 오느냐 입니다. 또다시 이생처럼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고난의 인생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생과 같은 고난의 역사를 내생에 또 펼칠 수는 없습니다. 내생에는 우리 인생이 이생보다는 빛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지금까지 지어온 우리의 업(業)에다가 나머지 우리 생애 동안 쌓아온 공덕(功德)이 더해져 우리의 내생을 결정지을 것입니다.

인과의 이치를 확연히 아는 우리입니다. 그러니까 내생의 찬란한 삶은 전적으로 나머지 인생에서 쌓을 공덕에 비례하여 빛나는 내 인생이 결정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젊어서처럼 허겁지겁 무모하게 우리 인생을 빛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느릿느릿 그저 힘이 닿는데 까지 묵묵히 공덕을 쌓아가며 살아 갈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거북의 수명은 보통 2백년이라고 합니다. 거북은 초조함을 모른다고 하지요. 소나기가 쏟아지면 머리를 몸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햇볕이 따가우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이와 같이 유순하고 한가로운 동물은 장수합니다.

그러나 맹수는 단명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들 중 장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갱내에 갇혔습니다.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1주일 만에 구조되었는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 시계를 찬 광부였다고 합니다.불안과 초조가 그를 숨지게 한 것이지요.

이제 새 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새해라고 해본들 별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태양은 어제와 같이 지고 또 어제 떠오르던 그 모습 그대로 떠오릅니다. ‘송구영신’은 태양의 이야기도 아니고 세월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우리들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시제는 늘 현재이어야 하고, 삶의 중심은 언제나 오늘이어야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온다고 굳게 믿으면서 추운 겨울을 견뎌나가는 것과 같이 남은 인생 빛을 내야 내생의 우리 인생이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오히려 언짢고 궂은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순간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것이 미덕입니다. 반대로 불우하고 불행한 때를 잘 이겨내는 인내가 지혜입니다. 이런 시(詩)가 있습니다. “마음아! 무엇을 머뭇대느냐? 가시나무에 조차 장미꽃이 피는 이 좋은 계절에.....”  ‘가시나무에 조차 장미꽃이 핀다.’ 라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사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과 처지에서도 긍정적 가치관을 가진 이와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진 이와 그 삶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마음이 자석(磁石)과 같아서 내부에 두려움 이 있으면 온갖 두려움의 대상들이 몰려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 적으로 뛰면 부정적이고 두려움은 올 틈이 없는 것입니다.

비관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낙관과 희망은 빛나는 인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하는데 까지 남은여생 세상을 위하여 맑고 밝고 훈훈한 공덕을 한껏 쌓아야 합니다. 범상(凡常)한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크게 알지마는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크게 아는 법입니다.

그것은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죽는 사람이라야 다시 잘 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生)은 사(死)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행할 바 도가 많으나 그것을 요약하면 생과 사의 도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 때에 생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생의 가치를 발하지 못할 것이요, 죽을 때에 사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악도를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생사의 도를 아는 우리입니다. 우리 내생에 빛나는 내 인생을 꾸리려면 마음껏 공덕을 쌓고 가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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